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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말기의 영웅, 장헌중의 군대인 대서군이 중원을 휩쓸고 넓은 영토를 차지하여 대서국을 세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장헌중의 탁월한 유격전술이었다.
대서군에서는 기병과 보병의 비율이 각각 70%와 30%였고, 주력은 "누구나 훌륭한 기수 또는 한 쌍의 말을 가지고 있다", "말은 바람처럼 왕래하며 수백 마리가 움직인다"고 했다. 밤낮으로 하루에 몇 리씩, " 어디를 가든지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새와 말이었다."
대서군은 강력한 기병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도착은 비바람처럼 갑작스럽고 출발은 유령처럼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몇 달 동안 북쪽으로 질주했습니다. 장강(長江)으로 가거나 초(楚)와 하남 (河南)으로 향하여 이 지역들을 휩쓸고 명나라 병사들이 애써 뒤쫓게 하였다.
이러한 전술을 손자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가고, 기대하지 않는 곳으로 가라. 강한 곳을 피하고 약한 곳을 공격하라." 장군은 자신도 모르게 함정에 빠지게 된다." 속도는 주도권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주도권"이 승리의 열쇠입니다.
장헌중은 평생 방어전을 벌인 적이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궁지에 몰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기동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그의 전략 원칙이었습니다. 그들은 고정된 거점이나 공격 대상이 없었고, 도시를 공격한 적도 없었으며, 그들이 공격한 지역은 명군의 방어가 취약한 빈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대서군은 위험한 지역을 피하고 약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전투를 거듭할수록 승리해갔다.
이에 비해 명나라 군대는 훨씬 더 거대했습니다. 그들은 개방되어 있고 모든 요새에 군대가 주둔하고 항상 방어적이며 전선이 매우 길고 거대한 병참으로 인해 제한되고 반군에 의해 전투를 강요받는 수동적인 입장에 놓여 있어서 설령 반군이 패배하여 달아나더라도 그들을 쫓아갈 수 없었다.
군사체계 측면에서 대서 정권은 5군 총독부를 설치하였고, 군대는 약 수십만 명으로 구성된 120개 대대로 조직되었다. 장헌충의 명령은 엄격하여 "허가 없이 군대를 모집하는 것", "허가 없이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 "허가 없이 지역 여성을 아내로 삼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는 법에 위배되었다. 장헌충은 정규군(제국군)과 지방군(리군)을 분리하여 '제국군 파견, 내군은 성을 지킨다'라는 군사제도를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