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관 선생에게서 전화가 온건 한 달 전쯤이다.
커피 전문점을 오픈한다며 천년약속 수업을 그곳에서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예전 장소에서 설계사무소를 지금의 장소로 옮기면서 건물 1~2층에 커피 전문점을 새로 낸 것이라 했다.
천년약속 4월 수업을 여기서 하기로 했고 나는 사전답사를 이유로 오픈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는 <에피소드 인 커피>를 찾았다.
선생의 건축대상 수상 경력을 아는 나는 유명 건축가로서 솜씨에 잔뜩 기대를 걸었다. 그것이 겉모양이 되었든 단박에 눈길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란 믿음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카페 근처 길에서 먼저 온 손님을 배웅하기위해 밖으로 나온 선생과 마주쳤다. 혼자였다면 분명 불쑥 실내로 들어가고 말았을 테지만 선생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자연스럽게 건물 외관부터 찬찬히 살피게 되었다. 건물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선생이 내게 던진 말이 있었다. '음양오행의 원리를 도입한 건축물' 이라는 것이다. 균형을 맞추면 건강한 육체와 온전한 인격을 갖게 되는 것이 음양오행이라는데 그를 두고 하는 말인가.
감탄사와 함께 내 눈길을 끈 것은 건물 외벽이었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현무암으로 된 돌담이었는데 실내에서 통유리 너머로 빤히 보이는 옆 건물의 밋밋한 시멘트벽을 가리는 장치로써 시각적 아름다움을 계산에 넣은 배치로 보였다.
여긴 뒤뜰이다. 일, 이층 베란다와 사진에서 보이는 정원이 선생의 주장에 따른다면 오행의 赤에 해당되는 공간이다.
주 출입구는 건물을 돌아가야 나오게 되어 있어서 저기에 과연 누가 앉아 있기나 할까 싶은 장소인데도 소홀함이 없었다.
근처에서 가장 낡고 못난 건물에 속했다는데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보기에는 낡고 초라했다는 고치기 전의 건물 모습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눈에 덜 띄는 실내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도 세심한 배려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계단실의 저 날렵한 난간대를 보고 있자니 덩달아 이층으로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워 질 것 같다.
벽에는 선생의 친구라는 중년작가 한승구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상설 갤러리의
역활과 예술의 정서를 담아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획된 것이라 한다.
통화를 하는 이가 선생의 따님이다. 현재 아버지 같이 건축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일층은 중앙을 뜻하는 黃에 속한단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 중에 한 분이 선생의 부인이다.
선생의 따님을 가까이서 잡아 보았다.
여자 코앞에 카메라를 들이댈 때 내가 잘 써먹는 말이 있다.
'뽀샵은 걱정 마시라'
그 한마디에 표정이 훨씬 부드러워 졌다.
비록 일부만 보이지만 이층의 서쪽인 이곳이 오행의 白에 속하며 고정된 좌석의 動中靜의 공간이라고 한다.
커피 볶는 저 기계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이층의 동쪽 공간으로 북카페로 꾸며진 곳이다.
靑에 해당되며 靜中動의 모임이 마련된다. 책장 중앙, 로얄석 주인공은 에세이스트였다.
여긴 주 출입구를 들어서면 나타나는 현관문이다.
이층에 있는 유리 칸막이로 된 독립된 방이다. 소규모 세미나 등을 할 수 있으며 12명~3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하다.
넉 장의 사진은 같은 장소로써 黑을 상징한다.
이곳도 완전 독립되어 있어서 다양한 모임의 장소로 활용 가능하며 8명~ 1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다.
커피 전문점 내의 차실로 다른 커피 전문점에는 없는 특별한 공간이다.
일 인당 10.000원이면 녹차에서 보이차까지 무한제공 되며 그윽한 차향을 음미하며 품격있는 모임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선생과 나는 커피로 시작해서 보이차로 이어지는 다담을 나누었다.
차에 대한 이야기에서 결국 문학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는데 주로 선생이 말하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다도 모임에 나가면 선생을 차 전도사라고 부른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녹차와 보이차의 장점과 음용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초보들 중에는 싼 차가 입에 더 맞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며 두 개의 포트에 각각의 차를 채워 주었다. 잔을 바꾸어 가며 연거푸 몇 잔 마시고는 꼴똘히 음미하는 척 하다가 생각난 듯 '비싼 차에선 혀에 스며들어 애무하는 듯한 맛이 나고 싼 차에서는 혀 위에서 제 맘대로 날뛰는 것 같은 맛이 난다' 라는 되지도 않은 소릴 지끌였는데도 선생은
'그만하면 됐어요, 이 선생은 차맛을 제대로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라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첨에는 맛에 탐착하다가 점점 무미無味의 맛을 알아가는 것이 다도의 즐거움 중 하나" 라는 말로 차에 대한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문학에 대해 말문이 열리자 선생은 목소리가 커지고 열의로 눈빛이 반짝거렸다.
어디에서 시작하든 결국 귀결점은
불교 사상에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장실이 가히 예술이다.
세면대의 돌 받침은 선생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누구든 저 곳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노라면 감탄이 안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에피소드 인 커피> 는 커피를 마시는 특별한 시간은 아름다운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줄 것 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란다.
인테리어 설계 단계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삶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편안한 공간이 되기를
희망했고 그러기에 의자 하나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세심하게 배려를 했다고 한다.
부산 지하철 1호선 토성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진행 방향으로 계속가다 보면 임시수도 기념로 입구가 나온다.
<에피소드 인 커피> 는 그곳에서 동아대학교 부민 캠퍼스 방향으로 좌회전 하여 걷다 보면 나온다. 사진 우측으로 보이는 평생교육원 건물과 마주하고 있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계속해서 다리를 외로 꼬아야 했다. 승차 전에 볼일을 마쳤건만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소식이 왔기 때문이었다. 보이차를 우려 주는 대로 비워 낸 것이 화근이었다. 비웠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면 병은 어느새 비어 있었고 선생이 다시 채워 놓으면 쉼 없이 홀짝거린 탓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김정관 선생의 말에 너무 몰두했거나 아니면 뭔가에 취해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커다란 머그컵 하나 가득 마신 커피 값에 우려내는 족족 받아 마신 보이차 까지, 나중에 보니 230ml 짜리 유리포트로 세병 정도를 마신 셈이었고 왕호떡 크기 한편에 백만 원 이상 한다는 귀한 차를 갈증 난 놈 물마시듯 하고서 깜빡하고 값도 치루지 않았으니 돌아오는 길에 뒤통수가 뜨끔거릴 만도 했다.
더군다나 가장 중요한 일도 놓쳐 버렸다. 식당이 아닌 그곳에서의 수업 중 식사문제를 해결하고 왔어야 했는데 그 이야기는 까마득히 잊고 꺼내 보지도 못한 것이다.
나 이제 우야꼬!
|
첫댓글 이글을 읽으면 누구든 가고싶어질듯합니다. 알뜰한 글 안내가 서둘러 그곳으로 가자합니다. 좋은곳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산 천년약속에 손님은 사절입니까?
아입니다. 미리 연락만 주시면 누구든 참석 가능합니다.
에세이스트면 누구나 됩니까? 천년약속 모임은 언제인지요? 미리 기별은 어느분께요?
일단 천년약속 회장님이신 김종길 박사님께 쪽지를 보내 보시지요.
저는 에세이스트 회원이라면 누구든 대환영입니다.
네, 그러겠습니다.감사합니다.
캬~! 에피소드 인 커피에 어서 가 보고 싶습니다. 어디 잡지사의 전문 취재 기자 같은 솜씨로 안내했군요. 정해균
ㅎㅎㅎ 정말 기대되지요. 선생님!
참으로 천년약속의 전도 창창합니다. ㅎㅎㅎㅎㅎㅎ
천년약속 입회 동기에, 김병기 선생님을 같이 멘토로 모시고...등단은 선배님이시지만 문우에다 다우가 될 것 같은 이영민 선생님, 이렇게 우리 카페를 맘에 꼭 들게 소개해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ㅎㅎㅎ^^
우리 에세이스트 문인들께도 환영받는 좋은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아...저녁은 인근에 괜찮은 한식당-호구정이 있으니 모이는 장소는 그곳으로 예약을 하고 식사 후에 카페로 옮기면 될 것 같습니다. 그곳 메뉴는 삼계탕, 전골 등인데 맛이 괜찮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저는 샘의 <에피소드 인 커피> 에 홀딱 반했습니다. ㅎㅎㅎ
다른 쌤들도 그러셔야 할텐데요 ㅎㅎㅎ^^
부산의 '천년약속'이 부럽습니다. 분위기 좋고 인심 좋고 커피맛 좋고, 거기에 장소를 제공해주신 무설자님의 공간작품들과 마음씨도 좋아서요.
선생님도 오셔유~
무설자 샘 꼬시면? 수백마넌짜리 보이차를 맛볼 수 있답니다. 소문 듣기로는 여자 샘들께 무척 약하다네요. ㅎㅎㅎㅎ
분위기가 좋아 샘께 집중 안하고 흐르는 음악따라 흥얼거리다 야단맞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만나는 사람도 좋은데 장소까지 좋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맬 가질랑은 마셔유~
잘 정돈된 개방감있는 공간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하며 깔끔한 실내와 적절한 공간배치가 건축가의 고심을 느끼게 합니다.
천년약속 땡 잡았습니다. ㅎㅎㅎㅎ...^^
4월 수업에 형님도 오셔요.
같은 건축가로서 서로 끌리는데가 있을 틴디유~ㅋㅋ
허유~ 저는 게임도 안되요. ^^
아...안 선생님도 건축가 셨군요
선배님께 부끄러운 작업을 보여 드리기가 걱정이 됩니다 ^^;;
나도 가고프당~
날개짓을 16배속으로 가동해 보세요. 어느새 부산항과 영도다리가 보이고 이어 커피 인 에피소드에 도착해 있을테니깐요. 하하하~~
밥은 한 끼 안 먹어도(나는 요즘 배에 기름이 끼었다.)저 멋진 곳에서 20년 어린 예쁜 내 친구와 함께 밥보다 비싼 커피를 폼내고 마시고 싶다.
에피소드인...의 blue zone에 선생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ㅎㅎㅎ^^
선생님 오셔유~제가 다른건 몰라도 폼 나게 커피는 같이 마셔 드릴 수는 있습니다. ㅎㅎ
에구 그새 대단한 사업을 ....보이차 애호가가 원두커피점이라....ㅎㅎㅎ 그 또한 서양과 동양의 만남인가요 암튼 축하합니다.
건축가의 손길을 느끼며 보는 재미,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가득한 곳입니다.
가족들과 자갈치를 거쳐 한 번 둘러 보심도 좋을 듯....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