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 외 1편
이 숨
올리브 나무 몸속에는 수천 년 묵은 시간이 산다 죽은 나무인 듯 살아있는 나무가 겹겹이 쌓인 옹이를 껴안았다 울음주머니에 담긴 사막의 표정들 건조한 바람 사이로 따가운 햇살의 흔적 속에서 잘려나간 수많은 팔들 나무는 그 피의 울음을 먹고 몸을 부풀렸다 견디는 것이 일상인 가지들 울퉁불퉁한 몸으로 2천 년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과거와 그 전의 과거로 덧대어진 몸의 기억에 숨구멍은 사라졌다 아름드리 나무는 돌을 껴안는 듯 냉기가 흐른다 올리브 잎은 여전히 바람에 흔들린다
나무의 냉기에 온풍을 달아준 뿌리의 표정을 상상한다 나는 나무 밑동에서 멀리까지 가려 하고 너는 가까이 있으려 한다 나는 심근성일까? 천근성일까?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직을 포기한 올리브 나무 키는 중요하지 않아 고집이라는 말은 올리브 나무의 신념일지도 모르지 2천여 년을 견디게 한 뿌리의 욕구가 근육이 되어 밖으로 튀어나왔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이 가득하다
씨앗 호떡
호주머니에 씨앗을 가지고 다닌 언니 심한 열병을 앓은 후 가끔씩 단어와 단어 사이, 행간과 행간 사이를 무단횡단할 때가 있어 뇌에 좋다는 씨앗만 잔뜩 먹었는데, 언니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언어가 자꾸 늘어났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난 씨앗의 언어라고 믿었어 몸속에 들어간 씨앗이 발아한 것이라고
언니는 스물두 해를 살다가 떠났고 은행나무 아래 묻혔지 꼼지락거렸던 씨앗으로 다시 돌아간 듯 가을이면 노란 열매가 식탁 위에 올려지고 우리는 언니의 열병을 애도했지 해거리로 풍성하게 씨앗을 품은 화석 같은 언니
아파트 단지 내에 목요일 장터에서 씨앗 호떡을 파는 사람이 있었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언니의 과거를 씹듯 나는 씨앗 호떡을 한입 베어 물었지 꿀처럼 주르르 흐르는 설탕의 맛이 언제나 내겐 쓴맛이었지
「모던포엠」 2022. 7월호
이숨 시인
「착각의 시학」 으로 등단
시집 『구름 아나키스트』
시치료전문가
백석대 기독교전문대학원 상담학박사
경희사이버대학원 미디어문창과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