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무렵 엄마 산소 옆에서 주워 온 가래 몇 알
하도 만지작거려 모서리는 닳고 깊은 주름만 남았다
때 타고 시간 타고 사람도 타고
그 숱한 기척에도 몸을 열지 않는 단단한 고집이
살아생전 엄마의 속내 같기도 하여
양손에 넣고 서로의 몸을 비벼 본다
그 소리가 맑고 경쾌하여
저간의 침묵을 깨고도 남을 법한데
주름이 주름을 비비며 닳는 몸과
또 한 주름진 몸이 하는 골똘한 생각은
어디쯤 가 닿고 있는지
병을 대물림하는 혈육의 맥박처럼 간헐적인
서러움을 밀며 또 당기며
모서리가 많던 집을 돌이켜 생각해 보는
캄캄한 저녁이다
-『불교신문/문태준의 詩 이야기』2023.12.01. -
가래는 가래나무의 열매이다. 호두와 비슷한 모양새이지만 좀 더 갸름하다. 시인은 어머니의 산소에 들렀다 가래를 몇 알 주워 와서는 그것을 손안에 넣고 만지작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많이 만진 탓에 가래의 모서리는 사라지고 둥그렇고 매끄럽게 되었는데, 그 가래를 보면서 시인은 또 어머니의 생전 삶을 생각한다. 늙은 주름의 몸, 몸이 앓던 병환, 그리고 곤궁했던 옛집을 생각한다.
김창균 시인이 최근에 펴낸 시집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의 기도가 있는데, 시인은 “돌아가신 엄마가 막막하고 재미없고/ 슬픈 노래를 거둬 갔으면 하는 생각/ 헐벗은 나를 곧 쓰러질/ 가을 꽃대에 기대 놓고/ 다시 마음 한쪽으로 모셔오는 간절/ 나의 팔목을 감고 있는 염주가 들여다보는/ 나의 안쪽”이라고 썼다. 김창균 시인의 시는 “바다 쪽으로 이마를 댄 어떤 집들은/ 처마에 가지런히 미역을 널어 말리며/ 서걱서걱 마른 몸으로 겨울을 난다”라고 노래했듯이 아프고 서럽고 노쇠한 것의 울음에 예민하고 큰 귀를 갖다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