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왕릉원
시대 : 백제 후기
사적 지정(등록)일 : 1963-01-21
분류 : 유적 건조물-무덤-고분군
수량/면적 : 328,793㎡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능산리 산16-2)
관리자(관리 단체) : 부여군
부여 왕릉원은 사비(지금의 부여) 도성의 동쪽 경계인 부여 나성에서 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고분군으로 백제 왕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부여 왕릉원이 위치한 일대에는 백제시대의 고분이 3개의 군집을 이루며 모여 있는데, 위치에 따라 중앙고분군과 서고분군, 동고분군으로 구분한다. 부여 왕릉원은 중앙고분군에 위치한 7기의 고분을 말한다. 부여 왕릉원의 총 7기의 고분 중 6기는 3기씩 2열을 이루고 1기는 북쪽으로 50m 떨어져 있다. 현재의 위치는 1960~70년대에 실시한 유적 정비 공사로 이루어진 것인데, 정비 공사 중 발견되었으나 복원되지 않은 고분 1기까지 포함하면 본래 총 8기 이상의 고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봉분 하단부에는 백제 사비기 왕릉급 고분의 특징 중 하나인 호석(護石:무덤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이 설치되었다. 고분은 벽을 돌로 쌓아올리고 출입구를 만든 뒤 흙으로 덮은 백제의 대표적 무덤(굴식돌방무덤)이다. 특히 1호분에서는 사신도와 연꽃무늬, 구름무늬를 그린 벽화가 발견되어 백제 회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부여 왕릉원은 일찍이 도굴되어 목관편 일부와 금동 관못, 금동제 장신구 등 약간의 유물만 수습되었고 고분의 피장자를 알 수 있는 단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분의 서쪽에는 국보 백제금동대향로와 석조사리감이 출토된 능산리 사찰이 위치하고, 동쪽과 남쪽에는 백제 사비기 귀족의 무덤군인 능안골 고분군과 염창리 고분군 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 고분의 규모와 구조·축조 방법·내부 장식 등으로 보아 부여 왕릉원이 백제 왕과 왕족의 무덤임을 유추할 수 있다.
2021년에는 고분의 역사적 가치와 위상을 고려하여 1963년에 사적으로 지정될 당시의 명칭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부여 왕릉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지구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부여 왕릉원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문의처 : 매표소 041-830-2890
지정현황 : 사적 제14호(1963.01.21 지정)
세계적 걸작인 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부여 왕릉원(扶餘王陵園)
관광지 소개
사비시대(538~660)의 백제왕릉묘역이다.
동쪽 나성(羅城)의 바로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 7기(基)의 고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도 각기 고분이 분포하고 있어 크게 3개의 무덤군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가운데 중앙구역에 위치한 무덤들이 그 크기나 위치로 보아 사비시대 역대 왕들의 왕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 고분군의 입지는 전통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지세(地勢)와 잘 일치되고 있어 백제 당시에 이미 풍수지리사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엿보이고 있다.
7기 고분중 동하총(東下塚)인 1호분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교류를 증명해 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이래 여러 차례 조사되었으나 부장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옻칠과 금박(金箔)으로 장식된 관(棺)의 파편만 남아있었다.
최근 나성과 능산리 왕릉묘역 사이의 계곡에서 이곳에 안장된 역대 왕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절터가 조사되었는데, 그곳에서 백제 금속공예의 진수(眞髓)를 말해주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제287호)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제288호)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여왕릉원 아트뮤지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사비 시기 고분군인 부여 왕릉원 안에 위치한 아트 뮤지엄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를 통해 백제 왕실의 무덤을 가상 체험해 볼 수 있다.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6-2
운영일 :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휴무일 : 수요일, 목요일
운영시간 : 10:00 ~ 15:00 (점심 12:00 ~ 13:00)
이용안내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부여 왕릉원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