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규(陳珪)와 진등(陳登) 부자(父子)의 모략(謀略) -
한편, 서주(徐州)에서는 진규와 진등 부자가 여포와 함께 술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등이 여포에게 말한다
"상장군, 지금의 대세는 누구든 상장군의 도움을 받는 자가 천하를 얻게 될 겁니다. 원술이 조조에게 대패한 것도 따지고 보면 상장군의 도움을 받지 못 한 것이니 지금쯤 천추의 한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진등의 아버지 진규가 아들을 향해 손을 저어 보이며 말한다.
"아들아 그건 아니다. 상장군의 능력이면 서주는 물론 중원까지도 얻을 수가 있다. 더구나 중원을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인데 원술 같은 자를 어디다 비교하느냐?"
그러자 진등이,
"맞습니다. 아버님, 상장군 휘하에 팔천 철기는 천하의 무적이고, 상장군의 애마 적토마와 방천화극은 가히 천하제일이니 다른 사람이 아닌 상장군께서 대업을 이루셔야지요."
여포는 진규 부자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진규와 진등 부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 두 사람은 부자지간으로 진규는 서주 태수인 도겸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도겸이 죽고 유비가 그 뒤를 잇자 두 사람은 유비의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게 되자 서주에 남아있던 자신들의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에 조조의 모사 곽가에게 포섭되어 겉으로는 여포를 위하여 충성을 다 하는 듯이 보이고는 있으나 실상은 조조를 위하여 모략을 꾸미고 있었다.
여포가 진등의 말에 기뻐하면서, 자신 있는 어조로 이렇게 대꾸한다.
"대업? 내가?... 그야 당연하지, 허나, 현명한 두 사람이 도와줘야 가능한 일이오."
하면서 진규, 진등 부자를 추켜세웠다.
그러자 진규가 여포를 향하여 두 손을 모아 읍하며,
"예! 저희 부자가 상장군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당연히 은혜에 보답해야지요." 하고 말하자 진등이 바로 맞장구를 친다.
"아버님과 제가 상장군의 대업 달성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력을 다해 보필하겠사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여포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하하하... 좋소, 좋아! 자, 자! 함께 한잔합시다!" 하며 손을 들어 두 부자에게 술을 권했다.
그 순간, 진등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것은 술상이 벌어진 단하에 어느새 여포의 책사 진궁이 다가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들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등이 단하로 달려내려가 말한다.
"공대 선생, 어서 앉으십시오." 하며 예를 갖춰 보이며 진궁에게 단상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그러자 진궁은 쌀살 한 어조로 말한다.
"두 사람은 물러들 가시오. 봉선과 할 이야기가 있소."
그러나 불쑥 나타난 진궁의 태도가 불쾌하기는 여포도 마찬가지로,
"멀리들 가지 말고 정자 밖에 계시오." 하고 말하자, 진규 부자가 예 하고 절하며 물러갔다.
두 사람이 물러나는 것을 보자 비로소 진궁이 여포 앞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예의 불만스러운 어조로 여포에게 묻는다.
"봉선, 저 두 사람을 안채에 기거하라고 말했다지요?"
"그렇소."
여포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진궁의 추궁하는 듯한 질문이 이어졌다.
"게다가 좌우 상 군(上軍)에 봉했다고요?"
"맞습니다."
"아이고! 봉선! 저 두 사람은 아첨만을 일삼는 소인배들이오. 과거 도겸에 밑에 있을 때 원소와 내통해서 인마(人馬)를 노리고 주군을 배신하려다 도겸에 발각되어 죽을 뻔한 전력이 있는 자들이오. 다만 도겸이 모질지 못하여 참형을 면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인데 어쩌자고 저들을 가까이 두려고 하는 거요? 게다가 저들과 의기투합까지 하다니!"
진궁은 흥분해서 손짓을 해가면서 여포의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여포의 두 눈이 계집처럼 샐쭉해지더니,
"선생, 진규와 진등은 충심이 깊습니다. 왜 질투를 하십니까?" 하면서 진궁의 말을 질투로 돌려 대는 것이었다.
그러자 두 눈이 동그래진 진궁이 사라진 진규와 진등의 방향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뭐요? 내가 저런 인간들을 질투한다고요?" 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낙담한 표정의 여포가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이자,
"아이고, 봉선! 전쟁터에선 무적 일진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아직 한참 멀었소. 저들이 장군에게 아첨을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요. 절대로 저들의 감언이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오!"
그러자 여포가 갑자기 탁자를 치며 소리를 지른다.
"이보시오 진궁! 저런 호인을 이렇게나 헐뜯어서 되겠소?"
"호인? 이보시오, 봉선! 저들은 때에 따라 자신의 주군을 수시로 바꿔온 간신들이오! 절대 호인이라 할 수 없소!"
하고 단언하였다.
그러자 여포가 핏대를 올리며 말한다.
"간신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것이오. 그러니 멋대로 지껄이지 마시오!" 하고 진궁이 서운해할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이어서,
"잊었나 본데 서주 성 내에서는 내가 주군이오! 아시겠소?"
하고 말하면서 진궁의 시선을 피하면서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그러자 진궁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쓸쓸한 어조로 말한다.
"보아하니 상장군에게 진 씨 부자가 있어 난 쓸모가 없어졌나 보군요." 하고 말하자,
여포가 매몰찬 어조로,
"그렇게 섭섭하게 느껴졌다면 편할 대로 하시오!" 하고 일갈한다.
여포의 대꾸에 갑자기 멍 한 표정이 된 진궁,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좋소! 가지요. 그러나 명심하시오. 저 두 사람을 가까이한다면 불원간 서주 성에 큰 화가 닥칠 것이니 두고 봅시다!"
하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단하로 내려섰다.
그러자 여포가 진궁의 등 뒤에서 한마디 한다.
"가는 길에 정자 밖에 두 사람을 불러주시오. 같이 술 좀 마시게..."
진궁이 정자 밖으로 나오니 진규 부자가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 보였다.
진규가 진궁이 들으라는 듯이 아들에게 말한다.
"신하란 자가 어찌 주공에게 훈계를 할 수가 있겠냐?"
그러자 진등이,
"어디 훈계뿐이겠습니까 주공을 손에 넣고 주무르려고 하니 도가 넘는 행동이죠."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두 부자 앞을 지나려는 진궁은 이들의 말을 듣자 그 자리에서 발끈한다.
"내가 두 사람을 두고 보겠다.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진규가 빈정대는 어투로,
"선생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나..." 하며 대꾸하였다.
그러자 진궁은 불쾌한 표정을 역력히 지으며 양손에 소매를 털고 휑하니 돌아서 간다.
그러자 두 부자는 약을 올리는 듯한 어투로,
"살펴 가십시오. 공대 선생!..." 하고 진궁의 뒤에다 대고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진궁은 혼자 술잔을 들이키며 생각한다.
("하 ~... 이대로 가면 서주는 물론이려니와 나까지도 큰 화를 입게 생기지 않았는가? 이제 여포를 떠나 다른 명군을 찾아야 하나?... 한데, 이 넓은 천하에 명군은 어디 있는지... 내가 몸 둘 곳은 과연 어디인가?... 여포가 어리석긴 해도 나에게 후대를 했고, 성격이 괴팍하긴 해도 아직 철모르는 어린애가 아닌가?....)
마음이 산란한 진궁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술잔을 거푸 들이켰다. 그러면서 곧 시종을 불렀다.
"여봐라! 거기 있느냐?"
그러자 젊은 시종이 달려와 대답한다.
"네, 선생!"
"말을 준비해라! 사냥이나 다녀오겠다."
진궁은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사냥을 다녀올 결심을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성 밖으로 나와 호위 무사 등 십여 명과 함께 말을 달려 사냥터로 향했다.
그런데 사냥터로 가는 길 숲속에서 거동이 수상한 자가 일행의 달리는 말 앞을 가로질러 건너편 숲속으로 황급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를 수상히 여긴 진궁이 말을 멈추고 숲속으로 사라진 자의 뒤를 쳐다보며 말한다.
"행동이 수상한 자다. 잡아와라!"
"넷!"
명령을 받은 호위 무사들이 즉시 사내를 잡아왔다. 그리하여 그 자의 몸수색을 시키니 유비가 조조에게 보내는 밀서가 발견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진궁은 사냥을 포기하고 성으로 돌아와 여포에게 밀서를 내보였다. 밀서를 살펴 본 여포가 불같이 화를 내었다.
"유비란 놈이 조조와 결탁하여 서주를 노린다고?"
그러자 진등이 읍하며 품한다.
"상장군! 유비가 서주를 빼앗겨 앙심을 품고 있었으나 감히 상장군께 대적하지 못하고 근래에 들어 조조와 내통하고 그의 힘을 빌려서 서주를 빼앗으려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유비는 충신을 가장한 간신입니다. 겉으로는 착한 척해도 속으로는 욕심이 가득 찬 위선자일 뿐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진궁이 가소로운 웃음을 웃으며,
"하하핫, 말은 잘 하는군 아주 좋아! 그중에서도 충신을 가장한 간신이라는 표현은 아주 설득력이 있는 표현이야.
허나... 그런 위선자가 어디 유비 하나뿐일까?" 하고 말하면서 날카로운 눈으로 진등을 쏘아보았다.
"간신이 또 있다니 누구요?" 여포가 새삼스러이 진궁에게 물었다.
그러자 진궁의 시선이 진등을 향했다.
그러자 진궁의 눈치를 알아챈 진등이 여포를 행해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히며 말한다.
"선생께서는 저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자,
진궁이 탁자를 치며,
"잘 봤다! 너희 부자 둘을 두고 한 말이었다! 나 진궁이 잘 못 본 게 아니라 너희 부자는 겉으로는 충신인 척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하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진등이 애처로운 어조로 말한다.
"선생, 어찌 그러십니까?"
그러자 진궁의 추궁하는 말이 이어진다.
"너희 부자가 여기 상군부에 들어오기 전에는 서주 성은 태평스러웠다. 한데, 너희 부자가 상군부에 온 후에는 서주 성엔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천자께서 장군을 서주목에 봉한 후 서주 성에는 수상한 연주 상인들이 대거 출현하기 시작했고 오늘도 이런 밀서가 발견되었다. 말해보라! 너희 부자는 조조의 첩자냐? 아니면 유비의 첩자냐? 그것도 아니면 양쪽 모두의 첩자냐?" 진궁의 추궁은 서릿발 같았다.
그러자 잠시 아무런 말도 없던 진등이 허리춤에서 요도(腰刀)를 풀어 여포 앞에 바치며,
"상장군. 이 칼로 제 목을 베어 공대 선생의 의심을 풀어 주십시오!" 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이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던 여포가,
"이보시오 진궁! 진등이 첩자라는 사실이 확실한 거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진궁은 확신에 찬 어조로,
"증거는 없지만 난, 나의 안목을 믿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꿇어앉은 진등이,
"상장군! 들으셨습니까? 제게 죄를 씌우려는데 무슨 구실이 필요하겠습니까? 으흐흑!..."
진등의 흐느끼는 모습을 본 여포가 진궁을 향하여 말한다.
"진궁! 이제 그만 미워하실 수는 없겠소? 선생은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하질 않소? 솔직히 진등이 여기 온 이래 선생 칭찬만 해왔소. 선생은 학식이 풍부하고 지략이 뛰어난 천하제일의 모사라고 말이오. 한데, 선생은?..."
진궁이 여포의 말을 끊고 대답한다.
"그래요?... 당연히 장군 앞에서는 내 칭찬을 했겠지요. 아니면 충신을 가장한 간신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겠소?"
그러자 여포가 진궁의 고집을 꺾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단언하듯이 말했다.
"어서 진등에게 사과하시오. 오해를 풀고 의심도 거두시오."
그러자 진궁은 뒤로 돌아서며,
"그렇게는 못하오!" 하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단단히 약이 오른 여포가 진궁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며 외친다.
"들으시오! 이건 명이니 사죄하시오!"
그러자 진궁이 격렬한 어조로 대꾸한다.
그러자 진궁이 격렬한 어조로 대꾸한다.
장군! 진등의 목을 베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나, 진궁의 목을 베시오! 저 간신에게 사죄하라니... 그렇게는 못 하겠소!"
"상장군, 제가 어찌 공대 선생께 사죄를 받겠습니까? 오리려 제가 공대 선생께 사죄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진등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진궁 쪽으로 돌아서며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히며,
"공대 선생 안심하십시오. 저희 부자는 상장군을 성심성의껏 보좌할 뿐 영원히 선생의 군사 지위는 넘보지 않을 것이고, 저희 부자는 선생을 스승으로 섬기고 상장군께 목숨을 바칠 것이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진궁이 격렬한 어조로 대꾸한다.
장군! 진등의 목을 베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나, 진궁의 목을 베시오! 저 간신에게 사죄하라니... 그렇게는 못 하겠소!"
이 말을 듣고 여포가 진궁에게,
"선생, 들으셨소? 얼마나 속이 깊고 도량이 넓은지?...."
그러자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진궁이,
"좋소! 이들이 간신인지 아닌지는 두고 봅시다!" 하는 말을 끝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삼국지 - 96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