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프레시안이라는 곳에서 한 교수님께서 연재하신 글을 몇회 본적이 있는데요...
좀 색다른 견해라서 한번 요약해 옮겨봅니다.
이 교수님은 말갈이란 용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라 보입니다.
특히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의 이원체계로 보는것을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그 논거로서,
첫째, 당나라에 유학했던 영충스님이 쓰신 유취국사(類聚國史)에 보면...
“발해국은 고구려의 옛 땅이다. … 주현과 관역이 없고 곳곳에 마을이 있는데 모두 말갈인의 부락이다. 백성들은 말갈인이 많고 원주민(土人)들은 적다. 모두 원주민으로 촌장을 삼는다. 큰 마을은 도독, 그 보다 작은 규모는 자사ㆍ수령으로 부른다. 날씨가 극히 추워 수전 농사가 안 된다.(渤海國者 高麗之故地 … 無州縣舘驛 處處有村里 皆靺鞨 其百姓靺鞨多 土人少 皆以土人爲村長 大村曰都督 次曰刺史 其下百姓 皆曰 首領 土地極寒 不宜水田 : 『類聚國史』卷193)”
영충스님이 다녀가신 곳은 옛 고구려 땅이고 지금 발해가 된 곳인데 고구려 유민이란 말은 어디가고 말갈인과 토착민으로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동일할게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둘째, 발해는 5경 15부 62주가 있었을 뿐 다른 이민족을 위한 행정체제가 따로이 있지 않았습니다. 즉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의 이원체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은 풍습이라든가 생활방식의 차이가 거의 없어 그러한 수단이 필요 없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말갈은 주로 7개 부로 구분되어 있으며 이에 관한 견해가 복잡하나 결국 예맥계냐 숙신계냐 하는 문제로 국한되는데 이는 무의미한 논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맥계든 숙신계든 중국 사가들 입장에선 만주에서 한반도 북부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 민족으로서 말갈이라고 부른 것이기 때문입니다.(근데 이 교수님은 말갈이란 용어 자체도 중국사람들이 욕으로서 붙인 이름이라네요. 우리가 짱께, 떼놈, 양키, 쪽발이 이런식으로 부르듯)
더욱이 중요한 부분은 말갈이란 명칭이 나타나는 시점에서 예맥이라는 명칭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말갈족이 나타나자 예맥이 한순간에 증발한 것도 아닐텐데요.
넷째, 삼국시대를 보면 고구려가 말갈족을 동원해 백제를 공격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오히려 고구려가 백제신라와 한창 전쟁중이던 100년간은 말갈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시기에 말갈을 동원하면 전투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요.
이 분야 전문가인 한규철 교수님의 견해는 아래와 같습니다.
“고구려지배층들은 평소에는 변경의 피지배 주민들을 ‘촌사람’의 뜻을 갖는 ‘말갈’로 생각하다가, 삼국 항쟁의 위기 아래에서는 ‘고구려국인(高句麗國人)’에 그들을 포함하여 편제하였다는 것이다. … 고구려는 지방에 대한 통치력을 많이 상실하게 되어 지방 세력가의 발생을 초래하게 되었으며,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당과의 관계에 있어 반독립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말갈’이라는 이름을 남기었고, 대내적으로는 도시의 지배층으로부터 다시금 ‘말갈’의 변방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삼국사기』 편찬자는 598년부터 고구려 피지배 주민의 비칭이자 범칭인 ‘말갈’을 『수서』, 『구당서』등에서 다시 차용하여 썼다고 생각한다.[한규철, 『발해의 대외관계사』(신서원 : 1994) 제1장]”
즉 말갈이라는 것이 고구려의 주류 민족과 다른 민족이 아니라 고구려의 지방민들을 두루 일컬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래 전에는 역사 서술이 왕조 중심적이고 도시 중심적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또 도시 사람과 시골(지방) 사람 및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차별하였기 때문에 고구려의 지방민을 그저‘말갈’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발해는 지배층을 '국인'이라고 표현한다고 하네요. 흔히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인이란 표현은 당사자인 발해는 사용하지 않았다는군요.
저두 이 글을 읽어 보고 기존 학설을 비판하는 견해 중에 논거라든지 가장 타당해 보이기에 옮겨온 것이라(아예 퍼온건 아닙니다. 따라서 논거를 다 옮긴 것도 아니고 이 교수님께서 몇회에 걸쳐 쓰신거라 이거만 보고는 좀 빈약해보일수도...)
결론이랍시고 쓰리도 모하고 능력도 없고
단지 전문가님들 입장에서 어떻게 보시는지...
사실 그 교수님 견해가 워낙에 색다른 것들이 많아서 다른것도 여쭙고 싶네요. 제가 볼땐 그동안 봐왔던 다른 견해들보다 논거가 충실해 보여서(비단 이 문제 말고도)
이왕이면 프레시안에서 직접 보셨음 하는 바램이...
'이건 말도 안되고 논할 가치도 없다'라고 말씀하시면 나머지 논점사항도 굳이 질문할 필요 없겠죠~
첫댓글말갈을 이원적으로 보는 경향은 이제 학계에서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위의 글이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죠. 말갈은 단지 다민족으로 구성된 고구려의 일부분을 구성한 집단으로서 중국측 혹은 타집단의 관점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면 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댓글 말갈을 이원적으로 보는 경향은 이제 학계에서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위의 글이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죠. 말갈은 단지 다민족으로 구성된 고구려의 일부분을 구성한 집단으로서 중국측 혹은 타집단의 관점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면 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갈족이라....말갈족들은 고구려..부터조선시대까지 국경지대에마을을일구어 살정도로많앗다고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때 세종대왕때 다중국대륙의로 뿔뿔이 흣어졌다고합니다
말갈이 여진이되고 여진이 금이되고 나중에 청나라 되는거 아닌가요?근데 왜 흩어지죠?
고구려의 지배층만이 한민족의 선조가 아니기에 말갈이 한민족과 여진이 되었지, 말갈이 여진만 된것은 아닐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