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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ne 9th, 2007
그래도 정 들었는데 막상 떠나려니 아쉽군, 숲 속의 유스호스텔.
더욱더 놀라웠던 건,
체크아웃을 하고 가려는데 첫날 울며 겨자먹기로 낸 9유로의 추가요금을 돌려주는 거다.
리셉션 데스크에 앉아있는 언니 왈, "I don't need this money."
안그래도 어제 두 번의 출금시도가 결국 두 번의 눈물겨운 실패로 끝이나
수중엔 단돈 3.23유로 뿐이었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왜 주는데요?"라고 묻는 말에
"나 오늘 여기 그만 둘거거든~그러니까 가져가~ 그냥 내가 주는거야~"라고 농담으로 받아친다.
엥?? 첫날 너무 기분 나쁜 티를 내며 생쇼를 벌였던 탓에 주인장이
"한국에서 온 미스 김 체크아웃할 때 추가요금 돌려줄 것"이라고 메모라도 남겨놓았던 걸까??
-_ -?? 온통 의문 투성이였지만 돈 준다는데 거저할 이유가 전혀 없쥐!
"have a nice day!" 기분 좋게 한 마디 인사를 남기고 유스호스텔을 떠났다.
사흘 밤낮을 내리 걸어다녔던 숲길, 이것도 오늘로 마지막.
취리히행 야간열차를 미리 예약해뒀기 망정이지 돈도 없는데 이탈리아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절로 머리가 설레설레 헤드뱅잉을 해댄다.
오늘은 시에나로 가자~
유인락커에 배낭을 맡겼는데 허억- 8유로, 그리하여 수중의 돈은 4.23유로.
추가요금도 돌려받지 못했으면 낑낑대며 배낭을 매고 다녀야 했을 상상에, 오~ 마이 갓-ㅠ -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피렌체에서만 되지 않는 것일지도 몰라. 시에나에 기대를 걸어보자고.
Firenze in Italy (10:10) → Siena
역에서 중심 시가지로 가는 왕복 버스 티켓, 1.80유로, 그리하여 수중의 돈 2.43유로.
1 센트에도 심각하게 날카로워지는 예민한 눈빛-_ -+
마테오티 광장에서 캄포광장까지 길게 이어진 시에나의 중심, 소프라 거리는
그야말로 다양한 명품매장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돈 없는 처량한 내 신세를 철저하게 대비시켜주는 이 골목을 지나가기가 어찌나 가슴이 메어졌던가!
캄포광장의 푸블리코 궁전
정확히 12시를 알리고 있는 만자의 탑 시계.
이 때로부터 오후 6시 반 종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까지
거의 다섯시간을 캄포광장에서 보내리란 것을 이 땐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
부채꼴 모양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캄포광장.
그래서 그런지 대(大)자로 누워 한낮의 달콤한 낮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여기저기 앉아 간단히 점심을 떼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에나의 중심이라고 하더니 꼬맹이, 어른,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시에나 주민들이 한데 광장에 몰려나와 평화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광장 정면에 있는 가이가 분수의 언발란스 커플?!
따가운 태양을 피하는 최고의 방법!
푸블리코 궁전 앞 계단에 죽치고 앉아있기.
따가운 태양에 광장 바닥이 뜨겁게 달구어져 있어 차마 앉아있을 수가 없는지라
어딘가 이 미천한 몸뚱이 하나를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그러다 발견한 푸블리코 궁전 앞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하호호 수다를 떨고 있는
다섯명의 할머니들! 그리고 그 옆에 살짝 비어있는 가생이의 틈!!
살금살금 옆으로 다가가 가생이에 엉덩이를 살짝 들이밀었다.
"이상하게 생긴 얘는 누구야?" 하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뭐,, "이해해주셔요, 전 돈이 없어효"로 무마.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할머니들의 수다소리는 리듬감있는 자장가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꾸벅꾸벅 졸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도 구경하다, 책도 읽다 두 시간이 후울쩍 지나갔다.
어느새 자리를 떠버린 할머니들.
에라, 모르겠다, 대놓고 다리도 쫙 펴고 니은(ㄴ) 자로 앉아 본격적으로 잠을 청하려는데
1 미터 전방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_ -;; 저 노숙자 아니여요.
슬슬 다가오는 이 남자, 살짝 긴장하고 있는데 냅다 "혹시 지금 몇 신지 아세요?"
하- 이 사람, 또또또, 이탈리아노 작업 방식에 도가 트인 나를 몰라보고,, 시간을 묻는구나.
두 시간이 넘도록 혼자 있는 걸 유심히 지켜보다 다가온 남자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어
제 머리 위로 보이는 탑에 큼지막한 시계 달려있거든요?? 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귀찮아져 속는 셈치고 시간을 알려주었더랬다.
"아~ 고마워요, 전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네요~"하면서 슝- 자리를 뜨는 것이 아닌가?
엥??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대로라면 "차나 한 잔 하실래요? 얘기나 하죠~"라는 멘트가 나와야하는 것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이 사람은 정말로 시간이 알고 싶었던게구나,, 헛헛, 괜히 무안-_ -;
자려던 잠이나 자자, 할머니들이 놓고간 신문지를 쫙쫙 펴서 잠자리를 마련하는데
"차나 한 잔 할래요?"
약속 있다며 쌩-하니 가버린 이 남자, 머뭇머뭇 다가와 자기 주제도 모르고 본색을 드러냈다.
그럼 그렇지, 너~ 딱 걸렸으!
사실 할 일도 없고, 배고 고팠지만;;
단발머리에 뒷통수만 머리가 벗겨진 가히 소화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은;; 너무 아니었던거다.
그냥 내쪽에서 자리를 뜨고 말았다.
화려함이 극에 달했던 시에나 두오모
ATM기를 이용한 첫 출금시도가 이루어졌다.
되라되라되라되라, 수십번도 더 되뇌었지만 "삐-"소리와 함께 카드를 도로 뱉어내는 몹쓸 기계ㅠ
슬슬 배도 고파지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어야되는데 대체 왜 이러는거야!!
다른 은행에서 제 2차 도전!
내 카드에 똥이라도 묻은거니? 왜 다들 다시 토해내는거야ㅠㅠㅠㅠㅠㅠㅠ
이젠 매력적인 골목길이고 뭐고 다 없다.
미친 듯이 은행 ATM기들을 찾아 구석구석을 헤맸다.
또 다시 발견한 새로운 은행의 ATM기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전지전능하신 신이여, 이번 딱 한 번만 저를 딱히 여겨 자애로이 살펴주시옵소서,,,
"삐-" -_ -ㅗ 됐다, 됐어! 오늘 하루쯤 못 굶을까봐!
각기 다른 세 개의 은행에서 출금시도를 했지만 번번히 허사.
오늘 밤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간다고 하지만 심각한 걱정에 빠졌다.
아빠가 계좌를 꽁꽁 묶어뒀나?? 아닌데, 확실한 자금줄이 되주신다고 도장까지 꽝꽝 받아왔는데;;
주말이라 그런가?? 그럼 어젠 금요일인데 피렌체에선 왜 안된거지??
은행간 결연이 되어있지 않은가?? 다섯 개의 은행씩이나?? 아냐아냐;;;
답이 나오지 않는 수많은 생각들이 난무했지만 딱히 알 방법도 없는지라
결국 어젯밤 사둔 비스켓 하나로 허기를 채우며 터벅터벅 캄포 광장으로 향했다.
캄포 광장에서의 결혼식
푸블리코 궁전이 시청사로 쓰이다보니 이 날만 해도 자그마치 6번의 결혼식이 있었다.
혼인신고를 마치고 나온 부부를 향해 박수를 치고 쌀알을 던지고 종이조각을 뿌려대는 하객들.
살랑살랑 향긋한 바람을 타고 나에게까지 날라온 하트와 장미꽃 모양의 빨간 종이조각들을 바라보며
"아- 나도 결혼하고 싶어" 란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아니다, 미스 김.
배고픈 하이애나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광장을 가득 메우고,,
어느 순간 내 옆으로 다가온 한 무리의 가족이 있었으니 내 눈을 거슬리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다.
한 손에 하나씩 든 아이스크림 콘.
하루에 최소한 한 번은 먹어줘야하는 아이스크림홀릭 김양의 속을 사정없이 후벼파는 이들.
어무이, 아부지~ 보고 싶어예~ 지 목소리, 들리십니꺼~ ㅇㅁ ㅇ!!
간신히 맘을 비우고 우울한 걱정은 관두기로 하고 광장 끄트머리에 앉아 책을 펴들었다.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여유있게 즐겨야지 싶었다.
푸른잔디가 폭신하게 깔린 공원도 아닌 벽돌 바닥의 광장일 뿐이었지만
다들 디비 누워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잠을 자는 분위기 속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허기지고 무료한 시간을 떼울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계속된 세 시간여의 책 여행.
딩~딩~딩~딩~
오후 6시 반 만자탑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툴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있던 캄포광장은 이제 안녕.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거지, 뭐.
항상 부드럽게 포장된 길만을 달릴 수만도 없는 걸.
가끔씩은 비포장도로도 달려보고, 울퉁불퉁 시골길도 거닐어보고
그런 맛에 인생도 깊은 맛이 우러나는 걸테지.
하루종일 쫄쫄 굶고 불쌍하게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만 멀뚱멀뚱 쳐다보았지만
덕분에 오히려 더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시에나.
시에나의 배고픈 하이애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또 다시 길을 떠난다.
아흐~~~~~~~~~~~~~~
Siena (19:41) → Empoli (21:02) → Firenze (23:00) → Zurich (EN)
시에나, 정신없는 그 뒷 이야기.
여유부리다 버스 정류장 못 찾아 시간 허비하고 겨우겨우 정류장을 찾았을 땐 막차는 이미 떠난 상태.
시내중심가 버스 정류장까지 되돌아가 친절한 아줌마의 도움으로 다른 버스를 타고
역까지 무사히 갔지만 원래 타려던 7시 20분 피렌체행 직행열차는 떠나 버린지 오래.
죽으란 법은 없는건지 엠폴리를 거쳐 피렌체로 가는 기차가 있어 순간적 환희에 차올라 정신없이 탑승,
그리고 피렌체. 유인라커에서 짐을 찾고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캄포 디 마르테 역으로 가야하는데
국철을 타고 충분히 이동 가능할 줄 알았던 열차가 주말이라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휴,,,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버스를 타고 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버스를 어디서 타야하는지? 휴,,,
무작정 버스티켓 파는 곳으로가서 물어보는데 마침 주인아저씨가 내 옆을 가리킨다.
"이 분이 기사아저씬데 그 역까지 가는 버스를 몰고 계시죠~ 저 아저씨만 따라가요~"
사정을 들은 맘씨 좋은 기사아저씨가 피우던 담배를 오른발로 짓이겨 끄더니 버스로 데려간다.
시간표를 보여주며 앞으로 정확히 38분후면 도착할테니 걱정말라고 위로까지, 오홋.
조금만 더 늑장부리고 늦었으면 야간열차도 못 탈뻔 했겠구나,하고 등줄기 사이로 땀방울 하나가 송글.
기사아저씨가 바로 맨 앞자리에 앉으라고 자리까지 마련해 주시더니만
"피렌체 시내 관광하는 기분으로 타고 있으슈~ 역에 도착하면 내리라고 알려줄테니까!" 그라찌에~
그 누가 이탈리아 사람들은 불친절하다고 그랬는가, 다 나와!
늦은 밤인데도 심각한 교통체증에 정확히 38분후면 도착한다던 역은 40분이 넘어도 뵈질 않고,
살짝 걱정을 하고 있는데 눈치라도 챈 걸까, 기사아저씨가 힘차게 팍팍 밟아주신다.
다행히 45분이 조금 넘어 캄포 디 마르테역에 무사 도착이닷.
야간열차~야간열차~ 드디어 야간열차타고 스위스로 고고~고고~
그러나 로마에서부터 출발한 야간열차,
그 중에서도 내가 타야할 칸엔 이미 5명 모두가 문도 잠그고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쾅쾅쾅!! 자는 데 깨우기 미안하지만 들어가지 못하면 난 오늘 밤 복도에서 잘 수 밖에 없다구요ㅠ
눈을 비비며 일어난 한 여자가 문을 열어주긴 했는데 또 3층-;; 내 침대 위엔 누가 캐리어도 올려놨다.
끝까지 편칠 않구나, 피렌체. 그리하야 김양, 9시간 반을 달려 스위스로 넘어가신다.
참, 역으로 오는 버스 티켓 1.20유로 지출로 수중의 돈, 1.23유로 되주시겠다.
내일 스위스에선 되야할텐데,,, 자면서도 출금 걱정.
첫댓글 캄포광장...^^ 시에나의 하이라이트 보고 싶네요~~~~~
시에나, 아직도 굶주림의 쓰라림이 남아있는 곳;; ㅎㅁㅎ 그래도 또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