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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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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역사참여마당 스크랩 명성황후 최후의날, 러시아 비밀문서로 밝혀진 새로운 사실.
호두까기 추천 1 조회 551 11.11.24 09:03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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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1.24 09:54

    첫댓글 명성황후 비극의 여인 그 당시에 러시아 일본 중국 등과 등거리 외교속에 실리 챙기는 황후 활제의 일급참모 이지요 그러니 일본이 눈에 가시 같으니 그런 사건 일으켜지요

  • 작성자 11.11.24 18:16

    민비란 비하명칭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더군요. 혼이 없는자들 입니다.

  • 11.11.24 14:40

    일본은 당시 국운을 걸고 대청전쟁을 일으키고 이겼다..전리품은 어마어마 했다..요동반도 대만 여순철도부설권..만약 명성황후님이 3국간섭을 유도시키지 않았더라면..일본의 만주진출은 역사적으로 50년이나 당겨졌고..한일합방은 1910년이 아니라 1800년대 후반에 당했는지 모른다...조선유교사회에서 드물게 여성차별을 이겨내고 국권을 수호하기위한 여걸...
    아시아 최초 신식교육기관 이화학당을 만들고..여성교육에 남달이 공을 들인분..시아버지 간섭에서 고개숙인 남편을 군왕으로 만든 여인..철의 여인이랄까

  • 작성자 11.11.24 18:19

    납치해서 가둬두거나 고종처럼 암살한것도 아니고 저리 급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시해한것은 그만큼 증오스럽고 위협을 느꼈다는 반증입니다. 아직까지도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가 부족하단 느낌입니다.

  • 11.11.25 09:19

    당시 일본입장에선 다된밥에 완전히 재를 뿌린격이고 청나라는 어차피 패전해서 변상할 이권이라면 일본보다 더 센넘들한테 주자고 할것이고 이권들을 3국들이 공평히 나눠가져갔으니..당시 일본내각에서 이토랑 일본대신들이 원색적인 용어를 쓰면서 명성황후를 욕하였다고 하더군요..솔직이 일본입장도 이해되지요..,다 된밥에 재를 뿌렸으니..명성황후도 자기 죽음을 예감하였고..당시 궁궐수비대를 신속히 미군장교한테 맡기는등 했지만 역부족..

  • 11.11.24 18:08

    그때나 지금이나 힘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작성자 11.11.24 18:20

    그러게 말입니다.

  • 11.11.24 19:07

    이조 가부장 철권시대가 극악을 달리며 죽기전에 마지막 발악을 할 때, 역사의 장난인지 홀연히 나타나 꺼져가는 나라를 건지려고 당시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을 그녀의 입장에서는 다 했다고 봅니다. 이조패거리속에서 피어난 연꽃같은 존재... 그래서 '명성황후'라고 충분히 불릴만한 여걸입니다. 그러나 고종이라는 늠은 절대로 황제라고 불릴 수 없구요.

  • 작성자 11.11.24 19:30

    명성황후를 재발견 하는데 명성황후를 몸주로 모신 무당의 숨은 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무당의 주장으론 고종과 김씨성을 가진 궁녀가 배신을 했다라고 하는데 이는 현재 증명할 길이 없죠. 이야기 출처도 정확히 모르겟고...
    고종에 관한것은 앞으로 적극적인 연구로 높여야 할것은 높이고 아닌것은 철저히 비판해야 하겠습니다.

  • 11.11.25 08:38

    참으로 언제나 진실이 밝혀질찌.. 그런데 아무리 궁력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내부의 동조 없이는 불가능한일이라 생각됨니다..

  • 11.11.25 15:17

    저 칼의 이름은 히젠도 입니다.

  • 작성자 11.11.25 20:20

    그렇군요....찾아보니 기증된 곳은 쿠시다 신사. 16세기 명인이 만든 유서깊은 살상용 칼.

    http://blog.daum.net/nosookja/17057867 에 직접 신사에 취재한 자료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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