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포(呂布)의 출병(出兵) -
이튿날, 여포는 상군부를 모아 놓고 명한다.
"유비가 조조와 내통하여 서주를 노리고 있다. 따라서 후환을 없애기 위해 유비가 있는 소패를 치기 위해 출병을 하겠다. 그러니 장요(張遼)와 고순(高順)은 일만 기병으로 관우 진영을 기습하고, 송헌(宋憲)과 위속(魏續)은 일만 군사로 퇴로를 끊어라. 나는 대군을 인솔해 소패를 취하고 내 손으로 장비란 놈을 없앨 것이다! 그리고 대군이 출정하면 진규와 진등이 서주를 지킨다. 모두 명 대로 거행하라!"
"옛! 알겠습니다!"
상군부의 장수들은 두 손을 모아 읍하며 여포의 명령에 한결같이 대답하였다. 그러자 여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모두 군을 정비하고 날이 어두워지면, 남문에 집결해 대기하도록 하라!" 하고 명하였다.
그러자 장수들은 다시 대답을 하고 뒤로 돌아서 뿔뿔이 흩어졌다.
물론 이 자리에는 진규, 진등 부자를 비롯하여 진궁도 있었다.
그러나 여포가 진규, 진등이 서주를 지킨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진궁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고 상군부가 흩어지자 여포에게 다가가 자신의 염려를 말한다.
"봉선! 서주에는 내가 남아있도록 하겠소." 하고 말하자,
여포가 곧바로,
"아닙니다. 선생은 병법에 능하시니 적과 대치할 때에 선생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진궁이,
"하나, 서주의 크고 작은 성 모두를 진규 부자에게 맡겨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여포가 진궁의 곁으로 다가와,
"선생! 아직도 진규 부자를 못 믿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진궁은 바로,
"못 믿겠소." 하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여포가 한숨을 쉬며,
"선생! 선생도 진가, 그들도 진가인데, 같은 종친끼리 어째 융화를 못하십니까? 하!...
저들은 선생을 공경하는데 오히려 선생은 저들을 배척하고 모략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진궁이,
"이보시오 봉선! 당장 진 씨 부자의 진실 여부를 가릴 수는 없더라도 서주를 생각하시오. 서주는 우리의 근거지이며 명맥이 달려있으니 잃어서는 절대 안 되오. 하니,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시켜서 지키게 해야 하오. 내가 볼 때에는 장요(張遙)와 고순(高順) 장군 중에 한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는 것이 좋겠소."
"선생, 유비의 군사가 적다해도 관우와 장비, 조자룡 같은 맹장이 있습니다. 내가 셋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소. 그러니 장요와 고순은 필히 데려가야 합니다."
"정 그렇다면, 진 씨 부자를 갈라놓으시오. 하나는 남기고 하나는 데려가시오."
"음, 좋습니다. 그럼, 아버지 진규를 남겨두고 아들 진등은 데려가지요. 선생은 진등을 더 싫어하시니 제가 데려가지요. 이제 됐습니까?"
그러자 진궁이 고개를 끄덕이며
"좋소." 하고 대답하였다.
이윽고 날이 저물고 한밤중이 되자 남문 앞에 군사들이 속속 집결하기 시작했다.
진등이 진규에게 말한다.
"아버님, 진궁이 우리들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는 행동에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진규가,
"음.... 진궁이 우리를 의심한다고 해도 여포가 우리를 신임하고 있으니 괜찮다!"
"출정한 뒤에는 성 밖의 일은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성안의 일은 아버님께서 잘 처리해 주세요."
"그래 수비를 맡은 장수 두 명과 교위 여섯은 벌써 구워삶아놔서 모두 조정에 귀순하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잘 됐군요. 여포가 패하고 나면 미친 듯이 서주로 돌아올 것이니 절대 성문을 열어주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라 다리와 성문을 지키는 위병들도 모두 내가 직접 뽑은 자들이다."
"네, 그러면 몸조심하세요."
"그래 너도 조심해라." 진규와 진등 부자는 이 말을 끝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편, 출전 준비를 끝낸 여포가 방천화극을 높이 치켜들며 병사들에게 명한다.
"출발하라!"
여포를 선두로 상군부 장수들이 선두를 형성하며 어둠을 뚫고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서주 성에서 소패 성까지는 40여 리 새벽에 동이 터 올 무렵에 여포의 대군은 소패 성에 다다랐다.
그러나 첩자로부터 여포가 대군을 이끌고 소패를 치러 출발했다는 소식을 미리 알게 된 유비는 장비를 비롯 미방 등 장수와 함께 성루에 올라 성 밖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포가 공격해 온다니 성문을 단단히 잠그고 수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유비가 뒤따르는 장수들에게 당부하니,
장비가,
"걱정 마시오. 내가 삼천 철기를 이끌고 나가 여포 놈을 없애버리겠소." 하고 말한다.
그러자 유비가,
"여포의 세력이 막강해 맞서서는 불리하다! 미방 있느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미방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한다.
"예, 여기 있습니다."
"저들이 공격하기 전에 우리 성은 여포 군에게 포위될 것이다. 지금 편지를 쓸 시간이 없으니 자네가 속히 성을 빠져나가, 조조에게 원군을 요청해라. 또, 관우 진영을 지날 때 내 명이 있을 때만 군사를 움직이라고 전하고, 조조 군이 도착할 때까지 절대 출병하지 말라고 전해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미방은 대답과 함께 성을 빠져나가 허창으로 말을 달려갔다.
잠시 후, 소패 성을 포위한 여포가 선두로 나와 성루를 올려다보며 외친다.
"귀 큰놈 어디 있나?"
그러자 남문 성루에 서있던 유비가 대답한다.
여기 있소! 한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군사를 이끌고 소패에 오셨습니까?"
그러자 여포가,
"조조와 결탁하여 서주를 취하려고 도모했나?" 하고 물었다.
유비는 낙담하며,
"뭔가 오해가 있나 봅니다. 나는 장군과 협력하여 서주를 지키려 했을 뿐 조조와 결탁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서주가 함락되면 소패 성도 위험해지는데 어찌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겠습니까?"
그러자 여포가 뒤에 있는 호위 병사에게 손짓을 했고 그가 가져온 밀서를 화살에 매달아 유비가 서 있는 소패 성 성루로 쏘아 갈기는 것이었다. 물론 그 밀서는 진궁이 사냥을 가다가 입수한 거짓 밀서였다.
이것을 본 유비가 낙담한 어조로 성 밖에 여포에게 소리쳤다.
"장군! 이 밀서는 조작된 것이오!"
그러자 여포는 어림없다는 어조로,
"보았는가? 그것은 조조가 너에게 보낸 밀서인데 잡아뗀다고 내가 속을 줄 아는가? 귀 큰놈! 내가 그동안 후대했거늘, 이렇게 나를 배신할 수 있느냐? 겉으론 후덕한 척, 속으론 간신 같은 네 놈을 용서할 수 없다! 성문을 열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그렇지 않으면 성을 함락시켜 모두 몰살시키겠다!"
그러자 유비가 주위를 돌아보며 말한다.
"조조의 소행이 아니라 이건 진궁이 조작한 짓 같군 우리 병사가 수적으로 절대 열세이니 여포 군과 맞서 싸우지 말고, 방어에만 치중하도록 하라!" 하고 명하였다.
어쨌거나 여포 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적장 고순이 맨 먼저 유비가 있는 남문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유비는 성문을 굳게 닫은 채 응전하지 않으니 아무리 용맹한 고순이라도 싸울 수가 없었다.
다음날은 적장 장요가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서문을 친다.
장비가 성문을 열고 내달아 싸우려 하자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비가 말린다.
"형님은 어쩌자고 싸움을 못 하게 하오?"
"장요는 의표(儀表)가 밝은 사람이니 우리가 대항하지 않는다면 그냥 돌아갈 것이니 두고 보아라!"
잠시 후에 성 밖을 살펴보니 과연 장요는 싸울 생각을 접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간다.
싸움이란 서로 맞서야 승패를 가릴 수가 있는 것인데, 유비는 성문을 굳게 잠그고 지키기만 할 뿐 전혀 대항치 않으니 시간만 흘러가고 공격하는 군사들은 지쳐가기만 하였다.
더구나 여포 군은 넓은 들판과 개활지(開豁地) 싸움에 능한 기마대(騎馬隊) 편성인지라 공성(攻城) 장비가 전혀 없었다. 그러려니 조조 군과는 달리 가파른 성벽을 타고 오를 전투 마차와 포환 투척기 긴 사다리 등의 장비가 전혀 없었으니 높은 성벽으로 갖춰진 소패 성을 공략하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한편, 여포의 군막에서는 여포와 진궁이 이런 문제로 논의하고 있었다.
여포가 진궁에게 말한다.
"선생, 벌써 사흘째 병사들이 성문 앞에서 무슨 욕을 해도 유비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있고 성벽까지 더 높여서 공격하기도 쉽지 않고, 앞으로 어떡하면 좋겠소?"
여포의 앞을 서성이다 왔다 갔다 하던 진궁이 대답한다.
"유비는 원군을 기다리고 있는 거요."
"원군? 아니 누가 돕는다고?"
"벌써 잊으셨소? 유비가 조조와 결탁하지 않았소?"
"아!... 그랬지요?"
여포는 새삼스럽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이내 냉정을 찾으며 말한다.
"하!...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오게 되면 이거 복잡해지는데.... 그럼 일단 서주로 돌아갈까요?"
여포는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은 소년처럼 반짝했다가 진궁의 말대로 조조의 대군이 밀려올 것을 생각하니 이내 허탈한 심정이 되어 진궁의 의견에 의존하듯이 물었다.
그러자 진궁이,
"출정하기 전부터 이번 정벌은 원치 않았소. 장군이 굳이 공격을 고집한 거요. 하지만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유비를 정면 공격하겠다는 것인데 성 밖에서 욕만 퍼붓다가 철수하면 되겠소? 그리고 계산해 보니까 조조가 지금 허창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빨라도 닷새는 걸려야 도착할 수 있소. 그 말은 곧 나흘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그 나흘 안에 우리가 소패 성을 함락시킬 수만 있다면 설사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오더라도 그때는 한발 늦을 것이오." 하고 말하자,
여포가 눈을 반짝이며 진궁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선생! 그러면 공략을 어찌할까요?"
"소패 성은 공략이 쉽지 않소. 성 안쪽에서 성문을 열면 모를까...."
"좋습니다 그러면 밖으로 유인하면 되겠군요."
그러자 진궁이 가소로운 미소를 지으며 여포에게서 돌아서며 말한다.
"보시오. 상장군! 왜 모든 것을 나에게만 묻는 게요?" 하고 여포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러자 여포가 급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진궁의 등 뒤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보이며 사정 조로 진궁에게,
"상황이 예사롭지 않으니 선생께 의지해야지요. 가르쳐 주십시오.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하고 애원하듯 말했다.
그러자 진궁이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여포에게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준 여포에게 그동안 들려주지 않았던 따뜻한 음성으로,
"봉선...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그러면서 진궁은 여포의 귀에다 입을 갖다 대고,
"우리가....." 하고, 속삭였다.
삼국지 - 97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