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에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옛말로는 독자이지요. 옛말로는 참 귀한 자식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독자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아들과 대화 중에 결혼 문제가 나왔습니다. 아들은 결혼에 회의적이었습니다. 저도 이른바 ‘꼰대’가 되어 며느리도 보고 싶고, 손주도 보고 싶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결혼은 무의미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손주라는 말을 끔찍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들은 그의 미래 세대에게 인류 멸종시대를 맞게 할 수는 없다는 굳은 의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매일 아침 대화를 통해 결혼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미래세대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렵게 거기까지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삼척에서 만난 '꽁치작가' 최아숙 선생은 친절했고, 자기 작업에 대한 성찰과 애정으로 무척이나 정열적이었다. ⓒ장영식
안해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울진과 삼척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울진 백암온천에서 2박3일간 휴양을 보냈습니다. 삼척에서는 삼척 바다 앞에 소담한 집이 있는 벗의 권유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삼척에서 ‘꽁치작가’로 알려진 최아숙 선생을 만났습니다. 그이는 꽁치를 그리기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최아숙 선생이 미국에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코로나에 감염되어 집에서 격리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냉장고 문을 여니 냉동 꽁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꽁치를 즐겨 먹기에 하루는 마트에 꽁치를 사러 갔다고 합니다. 그때 마트 주인이 “이 꽁치가 마지막 꽁치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이는 약간은 당황한 듯이 마트 주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마트 주인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이제 바다에서 꽁치가 잡히질 않아 그 꽁치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라는 충격적인 대답이었습니다. 바다에 꽁치가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아숙 작가는 마트 직원의 말을 듣고, 꽁치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놀라웠던 사실은 꽁치가 지표종으로 특정 지역의 환경 상태를 측정하는 척도로 이용되는 어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최아숙 선생은 그때부터 꽁치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삼척의 소담한 집을 방문한 벗들에게 꽁치 그림을 그려 주고 함께한 모습. ⓒ장영식
최아숙 선생은 미국에서 시작하여 광화문과 명동 성당 앞에서 시민들에게 꽁치를 그려서 선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이는 자기 자신도 꽁치가 기후변화로 사라져 가는 어종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자신처럼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물감과 붓을 들고 길 위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길을 지나는 시민들의 옷과 가방에 꽁치를 그려 주며 사라져 가는 꽁치와 기후위기를 말했습니다. 바다 온도 상승이 어떤 의미인지를 말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들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기후행동 회원들의 초대로 광화문에서 집회를 여는 날에 최아숙 선생은 꽁치를 그렸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가톨릭기후행동 회원들과 깊은 연대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탈핵과 탈석탄, 탈송전탑 운동의 중심지인 삼척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삼척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최아숙 선생은 삼척의 바다에서 버려진 통발 등의 어구들과 폐플라스틱 등을 재료로 삼아서 그림을 그리며 재활용하는 아트사이클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것들이 말을 하는 생명의 문화를 실천하고, 살림의 문화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진기 후드에도 꽁치를 담았다. 셔터를 끊을 때마다 꽁치의 정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장영식
고 김종철 선생은 <녹색평론> 창간호에서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라는 창간사를 썼습니다. 그이는 창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이 생태학적 재난은 결국 인간이 진보와 발전의 이름의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사회적, 인간적, 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진실로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아숙 선생은 자신의 그림들의 재료를 버려진 어구들과 폐플라스틱 등을 사용하고 있다. ⓒ최아숙
고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 창간사에서 말했던 이야기들이 20년이 지났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지구의 생태학적 위기는 더 심화되었습니다. 후쿠시마 핵사고에 피폭된 핵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감기가 지나도록 육지에 보관해야 할 핵 물질들을 어머니이신 바다에 버리겠다는 것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악마 같은 모습입니다. 자본주의와 결합한 과학기술이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리라는 것은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해방의 대상인 아닌 억압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가톨릭기후행동 회원들과 함께한 모습. ⓒ최아숙
최아숙 선생이 삼척으로 이주한 것은 꽁치가 태어나고 자란 삼척 바다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그이는 꽁치를 그리면서 죽은 냉동 꽁치가 살아서 돌아오는 경험을 합니다. 꽁치가 돌아오는 날, 인류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구가 회복될 것임을 믿습니다. 꽁치가 돌아오는 날, 아들이 결혼을 선택하고 아들 사람의 미래세대가 선물이 되어 저의 두 팔에 안길 것을 믿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남고, 살아남을 뿐 아니라 진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전 세계가 대규모 멸종에 직면해 있지만, 저도 최아숙 선생처럼 인류의 희망이 꽁치에게 있음을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꽁치 작가는 말합니다. “바다를 차갑게, 숲을 시원하게”라고.
김수환 추기경 님과 지학순 주교 님이 명상을 하며 즐겨 걸었던 맹방해변은 석탄화력발전소를 위한 항만 공사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였다. 금빛 모래는 사라졌고, 유명했던 명주 조개도 사라졌다. 이미 맹방해변은 해변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불과 30년을 사용하기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때문에 아름다웠던 맹방해변의 모습은 사라졌다. 누구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