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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의 격차가 가장 벌어진 분야로 무엇이 있을까?
여러 분야가 있겠지만 건축도 그 중 하나로 꼽히는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물론 두 나라 건축이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 수상 기록으로 보면 그 격차는 엄청나며,
지금까지 스코어는 5-0. 그건, 한국 건축이 뒤처졌다기보다는 일본 건축이 너무 앞서가는 탓도 있다.
프리츠커상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상은 아니다.
그러나 건축계에서 이 상은 노벨상 같은 대접을 받는다.
세계적 건축가에게 주는 가장 유명한 상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호텔체인 하얏트를 만든 재벌 프리츠커 가문은 1979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만듭니다.
상의 취지는 “건축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을 보여주어 사람들과 건축 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한 건축가”에게 수여한다는 것.
그러니까 특정 건축물 하나가 아니라 한 건축가의 건축세계 전체를 평가하는 상입니다.
이 상에서 일본이 거둔 성과는 놀랍다.
지금까지 31년 동안, 이 상을 받은 건축가는 모두 35명(공동수상 포함)리다.
그 중에서 일본은 무려 5명이 받았으며, 미국에 이어 2위다.
건축에 관한 한 자기네가 최고라고 굳게 믿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훨씬 많고 디자인 강국 스위스와
현대건축에 가장 잘 나가는 네덜란드보다도 훨씬 앞선다.
또한, 흥미로운 건, 프리츠커상 역사에서 독특하고 예외적인 수상자들
거의 대부분이 일본 건축가들이었다.
프리츠커 최초의 서양이 아닌 수상자가 단게 겐조였고,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유일한 수상자,
그러니까 고졸 건축가로 유일한 수상자가 안도 다다오이고, 역대 최연소 수상자가 44살로 이 상을 받은
니시자와 류에이고, 단 두 명 뿐인 여성수상자 중 한 명이 세지마 가즈요이다.
나머지 한 명은 이라크 출신인 자하 하디드지요.
그럼 도대체 일본 건축가들은 얼마나 건축을 잘했기에 이 상들을 받았나 간단히 소개하여본다.
서양의 시각에 치우친 외국상을 너무 숭배하는 것 아니냐, 또는 일본 건축가들을 너무 띄워주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다시 한번 건축과 문화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지금 일본 건축은 분명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다.
그냥 건축가가 아니라 20세기 건축과 디자인 문화의 슈퍼스타들이고, 또 새로운 담론과 개념의
개척자들이었기에 이 상을 받은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 건축도 일본 못잖은 평가를 받으려면 우리 대중들이 건축과 문화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우리 건축계에
더욱 많은 관심과 압박(이게 아주 중요하다)을 가해줘야 한다.
프리츠커 상을 받은 일본의 5대 건축 거장들의 건축 세계를 보시겠습니다.
1. 일본 건축계의 좌장 - 단게 겐조
전형적인 일본 아저씨스러운 단게 겐조(1913~2005)는 일본 현대건축 최고의 스타이자 20세기
일본 건축가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 건축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단게 겐조의 작품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건물은 아무래도 이 건물일듯 합니다.
파리 노트르담 사원의 형태가 모티브가 된 도쿄도청사, 그러니까 도쿄 시청입니다.
저 건물은 웅장하고 현대적이지만 너무나 거대하고 압도적이어서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런 점에서 단게 겐조 최고의 작품은 이 건물을 꼽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저 사진만으로는 도저히 그 아름다움을 알기 어려운 저 건물은 도쿄에 있는 요요기 경기장이다.
요요기 경기장은 건물이 2개인데, 1964년 도쿄올림픽이 열린 곳이며, 우아한 곡선과 경쾌한 기둥이
조화를 이루는 저 천장은 위에서 보면 실로 아름답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란 측면이며, 저 경기장은 딱 보기만 해도
일본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러면서도 그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현대 모더니즘 건축의 특징이 또렷하게 살아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이라고 생각하며, 지은 지 벌써 46년, 그러니 반세기가 지난 건물이지만
그 구조적 아름다움은 전혀 시들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건축 전공자들에겐 아마 이 건물이 더 감동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히로시마 평화센터입니다.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떨어져 초토화된 히로시마의 아픔을 기념하는 기념관입니다.
저 건물은 1955년 작이니 55년 전의 건물입니다.
그 디자인은 지금 봐도 현대적이며, 건축 전문가들은 이 센터를 비롯한 평화공원의 건축에 대해
“지금 무엇이 이곳에 있느냐보다는 무엇이 사라졌느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단게는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가장 일본적인 건축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건축가들은 그 누구도 전통과 현대의 관계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단게는 이 전통이란 풀리지 않는 화두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통이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촉매이지만 그 결과물에서는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
단순히 기와지붕을 올리고 목구조 디자인을 카피해서 집어넣는 전통 재현이 아니라 전통의 정신으로
뽑아낸 새로운 생각이 중요하다.
저 평화센터는 일본의 전통 누각을 연상시키지만 모양 그 자체로 보면 그 어떤 닮은 점도 없다.
그런데도 많은 일본 사람들은 이 건물에서 오래된 미래인 전통을 느끼고 동시에 새로운 전통으로 마주친다.
그 전통은 지금 일본 건축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 건물도 1955년작 이지만 지금 봐도 감탄스럽다.
일본 전통을 현대 건축에 담는다는 것, 그 모범적인 해답을 보여줬던 작품이라고 하겠다.
단게 겐조는 전통을 담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을 보여줬다.
그가 일본 최초의 프리츠커 수상자가 된 것은 일본 건축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2. 소리없이 강한 건축 - 마키 후미히코
고고한 학자처럼 보이는 후미히코 마키는 일본의 다른 프리츠커 수상자들이 건축계를 넘어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것과 달리 건축 비전공자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이다.
그러나 건축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고, 현대 건축의 새로운 실험을 앞장선 점에서 그는 일본 건축계에서
단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건축에서 시작되어 세계 건축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메타볼리즘 운동이나 메가스트럭처 같은
흐름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전공자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겠고, 그의 건축이 남다른 것은 그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대라는 사회가 어떤 세상이고, 뭐가 새로우며 뭐가 고민거리인지, 도시와 건축에서 맥락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성찰해 새로운 건축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의 대표작은 이 `스파이럴 빌딩‘이다.
스파이럴 빌딩은 다양한 예술 장르들을 공연, 전시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자세히 보시면 그 구성요소와 형태가 첫인상과 달리 무척이나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을 알수 있다.
직선과 곡선이 공존하고, 벽 한쪽은 기울어져 튀어나왔고, 건물 위에는 웬 원뿔 하나가 솟아있다.
언뜻 보면 온갖 요소들을 마구잡이로 다 끌어다가 짬뽕해놓은 것 같지만 나름 조화를 이루는 그 느낌이 묘하다.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그러모은 것은 이 건물이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을 다 담는다는 취지와도 연결된다.
그리고 이 건물의 진짜 독특한 점은 내부에 있다.
나선형 복도가 펼쳐지면서 부드럽고 고상하게 이어지고 올라가고 내려간다.
그러면서도 정신없지 않고 평화로운 안정감을 연출해내는 점을 건축전문가들은 최고의 매력으로 평가한다.
화끈한 볼거리로 압도하는 문화공간이 아니라 평화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자, 그게 건축가의 철학이다.
그래서 이 건물은 디자인이나 크기 같은 겉으로 보이는 것들로는 판단할 수 없다.
그럼 마키 후미히코의 다른 주요 작품들을 보자.
현대성(모더니티)이란 것은 마키 후미히코의 오랜 화두였고,
그는 정갈하면서도 독특한 현대성을 선보였다.
현대성에 강한 작가였으니 모던 아트 뮤지엄은 그에게 잘 어울리는 주제였다.
이런 체육관도 같은 이미지,
근현대의 산물인 박람회장, 역시 마키에게 맞춤한 건축물이며,
세련된 정제, 거기에 더해지는 파격. 마키 후미히코는 이론과 실제에서 모두 도드라진 작가였다.
1993년 그는 일본에서 두번째로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3. 건축계의 돌연변이 - 안도 다다오
권투선수 출신이란 희한한 이력, 고졸 학력을 극복하고 일본 건축 최고 스타가 되어
도쿄대 교수까지 된 건축가.
개를 무척 사랑한 건축가, 자기가 기르는 개에게 그가 가장 존경했던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제의 이름을 붙여줬다는(진짜 존경한 것이 맞나 싶지만)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빛의 교회.
그리고 이 빛의 교회와 세트를 이루는 물의 교회.
이 교회는 안에서 바깥을 보면 더 예쁘기로 소문났다.
‘저오같은 교회라면 건물 구경하러 라도 다니고 싶다’고 많은 분이 감탄한 사진.
교회는 그냥 명목이고 실제로는 예식장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세계 건축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 물의 교회는 단순함을
무척 좋아하는 안도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건물은 극도로 간단한 대신 주변 환경을 계절에 따라 전혀 달라져 보이게 꾸몄다.
이 건물은 연출 효과를 잘해서 유명해졌으며, 벽을 따라가는 동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연못이 입구에
이르면 ‘짠’하고 나타난다.
안도 다다오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하도소개해서(☞관련글: ‘이런 회사, 당신이라면 다닐 수 있습니까?’)를
참고하시길 바라며, 그때 이야기 못한 이 대표작 하나 더 보시겠습니다.
물의 교회 이후 꼭 4년 만에, 서울올림픽 다음 바르셀로나올림픽이 열리던 1992년에
선보인 나오시마 현대미술관입니다.
이 미술관은 이후 지어진 옆 건물, 건물이 땅속으로 들어간 지중미술관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더 유명해졌습니다.
이 미술관도 돌 안으로 들어가 있는데, 자연에 대한 경외를 표현한 것입니다.
안도는 늘 가장 몰인간적인 노출 콘크리트를 고집하면서 주변 환경과 맞추는 이런 조화를 시도하는데
이 건물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람 홀리는 이런 재주로 안도는 이 건물 짓고 3년 뒤인 1995년에 일본 세 번째 프리츠커상을 따냈습니다.
4. 연상연하 건축가 콤비 세지마 가즈요 & 니시자와 류에
엄마와 아들?
아닙니다. 건축가 듀엣입니다.
이 두 사람은 안도 다다오가 프리츠커상을 타던 그해 SANAA(Sejima and Nishizawa and Associates)란
이름으로 동반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오른쪽이 세지마 가즈요(54), 왼쪽이 니시자와 류에(45)입니다.
9살 차이라는데 보기에는 19살 이상 차이가 나 보입니다.
지난해인 2010년 이 두 사람이 동시에 프리츠커상을 타면서 일본은 단숨에 수상자가 5명으로 뛰어올랐다.
이 둘이 보여준 재주와 솜씨로 보면 이의를 달기 어려운 수상이었다고 하겠다.
이 상당히 언밸런스해보이는 두 사람은 늘 건축과 공간에 대해 반기를 들어왔으며, 좀 다른 형태는?
좀 다른 동선은? 좀 다른 구조는?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인 건물로 세계 건축계를 놀라게 했죠.
그들을 진짜 선수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했던 히트 건물이 바로 이 건물입니다.
첫인상은 빈대떡이나 피자 같은 이 건물, 일본 최고의 건물로 꼽힌다.
일본의 오래되고 낙후된 도시 가나자와의 랜드마크가 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은 ‘21세기미술관’이다.
미술관이라고 하면 하얀 네모상자 건물을 떠올리는데 이 건물은 쟁반처럼 동그랗고 얇다.
그리고 투명하다. 그러나 건축계가 주목했던 것은 그 모양이 아니라 컨셉이었다.
건물은 가장자리 벽이 모두 유리로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며, 어느 방향이나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보시면 알겠지만 사람들은 잔디밭 사방에서 이 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
입구가 따로 없고, 앞뒤가 없는 독특한 미술관이다.
내부도 독특, 모든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정해진 동선을 따라 관람하게 된다. 관객들을 지시하는 거죠.
고정관념 깨기에 목숨 건 이 두 사람, 그런 관행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내부에 여러 전시실을 배치하고 관람객이 맘대로 골라서 볼 수 있게 공간을 꾸몄다.
이방 저방 돌아다니다가 가장자리로 가면 도시 풍경이 360도로 펼쳐지며 장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 동그란 미술관이라니. 건축계는 당연 감탄했다.
그리고 이 건물, 역시 화끈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두 사람의 명성을 높여줬다.
SANAA의 최신 히트작, 2009년 스위스 로잔에 들어선 롤렉스 교육 센터 겸 연방폴리테크닉학교다.
세지마와 니시자와는 얇은 건축이 장기다.
이 건물 역시 얇고 부드러운 시루떡처럼 네모나게 펼쳐지며 자연스럽게 솟아나고 들어간다.
그렇다고 이 콤비가 얇은 건축물만 한 것은 아니었다.
네모도 무지하게 좋아했으며, 가장 유명한 건물이다.
평범한 동네 길 한가운데 저혼자 허옇게 솟아오른 저 건물은 새 현대미술관이다.
새로 지어서가 아니라 이름 자체가 `뉴 뮤지엄 오브 콘템포러리 아트’다.
뉴욕 변두리에, 미술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곳에 미술관 맞나 싶은 묘한 형태로 들어선
저 미술관은 이 콤비의 가장 호평받는 작품이다.
낙후된 지역에 미술관이 들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뉴욕의 새 명물로 대성공을 거뒀다.
별명은 `각설탕 빌딩‘. 더 화끈한 네모 빌딩은 바로 이것.
이 왕각설탕 같은 건물은 독일 에센에 있는 촐퍼라인 경영디자인학교다.
이 두 사람의 작품은 서울 한남동에 있는 현대카드 콘서트홀 등이 있으며,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동녘출판사 사옥이 가장 유명하다.
동녁출판사 사옥에서 세지마 콤비는 네모난 콘트리트 결정체같은 건물을 시도한 뒤 이 건물에서 한층 더
무르익은 솜씨를 보여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조금 독특해 보이지만 그 실험정신은 실로 강력한 이 두 사람은 지난해 함께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세지마 가즈요는 역대 두 번째 여성 건축가, 그리고 니시자와 류에는 당시 44살로 역대 최연소 수상자였다.
일본은 왜 이렇게 프리츠커상에 강한가?
역대 프리츠커 명단을 보면 실로 쟁쟁한 최고 스타건축가들뿐이다.
그 중에 일본 건축가가 5명이란 것, 그건 정말 눈에 띄는 현상이다.
일본건축전문가인 미국 버클리대의 다나 번트록 교수는 최근 한중일 건축학회 교류회에서 왜 일본이
프리츠커 강국이 되었는지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건축전문지 월간 <와이드>에서 이 논물을 2월호 특집으로 소개했는데, 번트록 교수가 꼽은
일본 건축의 강점은 4가지다.
△국제적인 보편 의식,
△문화 교류를 위한 국가적 지원,
△외부인이 건축 작업을 평가할있는 맥락
△활발한 출판활동이 수 있는 지적인 맥락, 그 네 가지이다.
일본 건축가들은 애초부터 프리츠커상에서 유리했다.
원년인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심사위원 중에 일본 건축의 중진인 아라타 이소자키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총 31년 동안 9년을 뺀 나머지 22년 동안 심사위원에는 반드시 일본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네트워크를 만들어낸 것은 일본 정부가 건축의 국제교류를 강력하게 지원했으며, 일본재단과
일본협회라는 두 정부단체가 일본 건축을 세계, 특히 건축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 알리는 전시회를
재정 지원했고, 외국의 유명인들이 전시회 조직에 참여하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1978년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는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이 조직을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전문가들이 일본을 직접 방문하도록 정부에서 지원해 일본 건축물들을
널리 알리도록 했습으며, 이런 기반 다지기로 일본은 현대 건축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로 자리 잡았다.
선배 건축가들이 후배를 끌어주는 문화도 일본의 신예들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는 시스템으로
정착되었으며, 일본의 대표급 건축가들은 독창적인 프로젝트나 전시회에 괜찮은 젊은 건축가들을 참여시켰다.
젊은 건축가들 혼자서는 잡기 어려운 기회를 선배들이 제공하고, 유명 건축가와 협업을 한 후배는 주목을
받는 계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축과 다른 분야와의 친밀성, 그리고 건축 저널리즘의 발달이다.
건축이 건축 전공자들만의 테두리 안에 갇히면 그 바깥으로 존재와 의미를 알리기 어렵다.
건축 외의 시각으로도 건축을 활발하게 접하고 분석해 일본 건축의 특징을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가 건축 저널리즘을 통해 알려지면서 대중성을 얻는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일본은 자국 건축의 성과를 해외 지성계에 전파해왔다.
그 성과가 나타난 것이 바로 저 프리츠커상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약진은 우리 건축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서울대 전봉희 교수는 “국제적인 상의 수상이 우리의 건축 목표는 될 수 없지만 국제적인 평가와 이벤트가
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과 수준,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하고
미래의 프리츠커 수상자가 한국에서 나오는 것이 한국 건축의 발전에 중요한 보탬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그런 건축가를 배출하기 위해선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정부가 지원하고 출판이 전파하고 작가들이 성장해
세계 건축계의 지성들과 연결되는 토대가 먼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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