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몇 년 전 여름휴가 때 아내와 대학생인 큰딸과 함께 중국 장가계로 여행을 다녀왔다.
카페 '자유게시판'에 올려놓은 황산 산행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장가계가 생각나서 그 기행기를 소개한다.
(첫째날과 둘째날)
인천공항을 떠나 낮 11:20 (중국시간) 중국 천진공항에 도착하여 이틀간 북경, 팔달령(八達嶺) 만리장성을 관광한 후
다시 천진으로 이동하여, 천진공항에서 18:30 출발 장가계(張家界)행 중국 민항기에 탑승했다.
중국에는 각 성(省)마다 국내선 민항기 회사가 있는데, 영세한 규모의 항공사인 것이 분명해서 비행기 타기가 좀 불안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310인승 규모의 보잉기였는데 비행기가 낡아 보였다.
기내식도 부실했지만, 중국여자 스튜어디스들은 늘씬한 미인들만 뽑았는지 청순한 자태가 인상적이었다.
장가계까지는 2시간 비행기를 탓는데 대기의 흐름이 좋지 않아 비행기가 많이 흔들렸고,
그럴 때면 위험하니 통로로 다니지 말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기내 방송이 나오곤 했다.
비행도중 어느 곳에 이르다 보니 멀리서 번개가 치기 시작했는데 번개는 30-40분간이나 계속되었다.
번쩍이는 번개불을 바라 보면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2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20:30 장가계 공항에 도착했다.
장가계(張家界)는 장(張)씨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장가계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에는 중국 소수민족인 토가족(土家族)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 외 백족(白族), 묘족(苗族) 들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소했다.
공항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숙소로 이동했는데,
버스를 거의 1시간 타고 칠흑같이 어두운 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서 숙소인 호텔에 도착했다.
3성급 호텔인 이 호텔은 정원이 넓고 아름다웠지만 냉장고가 없어서 시원한 음료를 마실 수 없었다.
(셋째날)
아침 06:30에 기상을 하여 식사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약 50분간 장가계 입구로 이동 했다.
가다 보니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비경(秘境)이라는 장가계 입구 들어가는 도로가 비포장이 많아 먼지가 많이 날렸다.
(*지금은 도로 포장 다 했을 것임)
길옆에 있는 나무 수종은 가시 없는 아카시아 나무가 많았고 플라타나스, 메타세퀘이어가 간간이 있었다.
장가계 입구에 접어 들면서부터는 산세가 달랐다.
금강산이 1만2천 봉우리라고 하지만 장가계는 10만 8천 봉우리라고 한다.
조선족 현지 가이드 말이 중국사람 앞에서는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텔레콤 자랑은 해도,
금강산이나 경주 불국사 자랑을 하지 말라고 했다.
금강산이나 경주 불국사 보다는 더 수준 높은 관광지가 중국에 많이 있다는 뜻이다.
100m도 넘게 수직으로 선 기암기석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백장협을 지나 장가계로 들어갔다.
장가계 국립공원 내에서는 주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곳곳에 서 있는 수백m의 수직 기암기석들은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신비스런 경관이었다.
한 가지 좀 의아한 것은 계곡에 물이 별로 없었고 물이 흐르는 곳에도 한국의 계곡수처럼 그리 맑지 않고 약간 흐린 물이었다.
중국에는 물에 석회질이 많이 섞여 있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추측만 할 뿐이다.
오전에 장가계 산행 관광을 하고 오후에는 원가개(袁家界)로 넘어 갔다.
원가계는 원씨들이 많이 사는 곳이어서 그렇게 불리는데,
행정구역상 장가계市가 광역 개념이고 원가계는 장가계의 일부 지역을 지칭한다고 한다.
하지만 관광을 할 때는 원가계 지역은 원가계로, 원가계가 아닌 지역은 장가계로 부른다고 하는데
관광비중은 원가계가 약 70% 차지한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약 10분간 천자산(天子山)으로 올라가서 원가계를 돌아 나왔는데
산행관광로는 오르막 내리막 길은 없고 대부분이 평탄한 길 이었다.
원가계, 깍아 지른 수직(200m - 300m) 기암기석과 그 틈새에 자리잡고 있는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이
한폭의 장엄한 동양화를 그리고 있었다.
깍아 지른 수직암 밑을 내려 보니 현기증이 났다.
그곳은 무릉도원의 선계(仙界)가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환상적인 경관이었고,
보지 않고는 사람의 머리로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선경(仙境) 이었다.
산행 도중 비가 뿌렸다.
아내는 미리 준비해 간 우산을 쓰고, 나와 큰딸애는 매점에서 1회용 우의 2개를 사서 하나씩 입었다.
깍아 지른 수직암 위에 난간을 해 놓았는데 난간 높이가 내 허리에도 못 미치는 것을 보니 채 1m도 안되나 보다.
비에 젖어 바닥이 미끄러워 난간 가까이 가기가 공포스러웠다.
사진을 찍었지만 날씨가 흐려서 제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원가계 산행을 마치고는 내려오는 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 하강하여 내려왔다.
산중에 326m 높이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여 이용하고 있었는데 편하기는 했지만 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원가계를 내려와서 30분쯤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곳 물은 그래도 비교적 맑았다.
냇물 위쪽을 바라보니 한쪽에서는 중국인 한사람이 비누질해서 머리를 감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국인 한사람이 생선을 잔뜩 가져다 놓고 비늘을 벗기고 생선 배를 따서 헹구고 있었다.
발 담그기가 망서려 졌지만 머리 감는 쪽을 선택해 발을 담그고 한참 쉬었다.
우리나라의 산과 계곡물은 예로부터 산자수명(山紫水明)의 산수가 아닌가.
장가계 원가계가 아름답고 기기묘묘하다고 하나 아열대 지방이어서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의 단풍과 겨울 눈 내리는 은세계의 모습이 없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명산은 산도 아름답지만 계곡에 흐르는 물이 맑고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장가계 원가계는 계곡물이 맑지도 않고 흐르는 물도 별로 없이 기암 기석의 그 몸매만 뛰어 난 곳이었다.
하여, 장가계 원가계의 자태가 뛰어나지만
나는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우리 나라의 산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내가 산과 백년가약을 맺어야 한다면 일순의 망서림도 없이 금강과 설악, 오대산....을 택하리라.
(네째 날 이후)
아침 식사후 다시 장가계로 이동하여 산중 인공호수인 보봉호(寶峰湖)에 올라갔다.
올라가다 보니 계단 길옆으로 아름다운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나는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와 풀을 다른 나라에 갖다 놓으면 중국제라고 홀대를 받을게 아닌가.
나무와 풀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이 구획해 놓은 국경에 따라 홀대 받고 하니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제 홀대 내용에 대해 중국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세계적으로 이미지가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표현했다.)
보봉호는 둘레가 약 2.5 km로 경관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물은 녹조 현상이 좀 있어 맑지 않았다.
배를 타고 약 10여분간 유람한 후 산 밑으로 내려왔다.
다음 날 귀국하여 인천공항에서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중국 고전문학과 역사, 문화를 좋아해도 중국보다는 한국에서 살고싶다는 것과
역시 사람에겐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정들고 좋은 나라이라고...
첫댓글 님의 글로 잘가계견문 잘읽었습니다. 언제 기회되면 한번 그곳에 관광가고싶습니다
장가계 기행문 아주거운 마음으로 잘보았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좋은 기행문으로 행복함도 주셨으니까요 좋은글도 기대해 봄니다 3월시작하는 한주 행복하길 바람니다
장가계 기행을 함께 하는 기분입니다.즐감하였습니다
재밋게 엮은글 즐감하였어요
잼있게 적으셨네요 장가계둘러본 느낌입니다
장가계 구경 잘하고 갑니다. 애국심이 대단한 분이구만요.ㅎㅎㅎ
애국심은 누구에게나 다 있지요..ㅎㅎㅎ. 이 글에서는 대단한 애국심보다는 느낀대로 글을 쓴 것 같은데..身土不二(신토불이 : 사람의 몸과 그 태어난 땅은 같다. 즉. 궁합이 잘 맞는다)와 같은 것이지요..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좋지요.
기행문 잘 감상 .아니 장가계구경 잘했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