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가득한 계절이다. 숲속에서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에 가면 마음까지도 초록빛으로 물든다. 마을 전체가 도서관이자 놀이터인 이곳은 건물의 복도와 계단은 물론 숲길과 정원, 근사한 한옥의 대청마루까지 넉넉한 독서의 공간과 시간을 허락한다.
이야기를 품은 건물에서 즐기는 독서
글을 몰라도, 지식이 부족해도, 나이가 적거나 많아도 그림책을 즐길 수 있다. 아이에게는 상상의 세계를, 어른에게는 위로의 시간을 선물하는 그림책은 세대를 묶는다. 아이와 함께 책을 보다 숲길을 산책하는 가족, 손주를 무릎에 앉히고 책 읽어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는 건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에서는 일상이다. '0세에서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마을'이란 소개가 설득력 있는 이유다.
금산지구별그림책 마을 입구인 '살림대문'. 전북 고창군에 있던 재실의 대문을 옮겨왔다.
입장권을 구매하는 '살림대문'부터 마을 구경을 시작해보자. 110년의 세월을 품은 살림대문은 전북 고창군에 있던 종갓집 재실의 실제 대문을 옮겨온 것이다. 기둥에 남은 무늬가 새삼스럽게 보인다. '살림대문'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오는 이들을 위해 '살리는 기운을 크게 얻으라'는 의미를 담아 지었다고 한다.
도서관이 있는 본관 건물과 마주본 위치에 재실이 자리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을 온전한 형태로 보는 기회다. 주말에만 개방하는 이 재실은 '책과 노닌다'라는 뜻을 담아 '서유당'이라 부른다. 이름처럼 책 몇 권 곁에 두고 며칠 머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집이다. 실내로 들어가면 대청마루 앞뒤로 설치한 통유리를 통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책을 보면서 음악을 듣고 싶다면 마루 구석에 있는 오디오를 이용하면 된다. 본관에서 영업 중인 레스토랑에서 음료를 구입해와 마실 수도 있다.
왼쪽 한옥이 서유당. 주말에 대청마루에 들어가 책을 볼 수 있다.
3대가 함께 읽는 그림책
본관 건물 1층 복도에 설치한 작품. 인생을 시계로 표현했다.
다음은 본관으로 들어갈 차례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완만한 경사의 복도다. 복도의 양쪽 벽은 작은 전시공간이다. 오른쪽 콘크리트 색깔의 벽에는 임신과 출산, 성장, 죽음 등을 시계로 표현한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시침이 가리키는 자리에는 각각 인생의 한 장면을 상징하는 12권의 책을 붙여 놓았다. 왼쪽 노란색 벽에는 이영경 작가의 그림책 <넉점반>의 아트 프린트를 전시 중이다. <넉점반>은 아동문학가 윤석중 작가의 동시를 그림으로 옮긴 책으로 시계가 귀하던 시절 단발머리 꼬마가 동네 가게에 시간을 물으러 간 하루를 담았다.
본관 건물 1층 복도에서는 이영경 작가의 <넉점반> 아트 프린트도 볼 수 있다.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복도 오른쪽에 있는 '넉점반도서관'으로 가자.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자유롭게 책을 보는 공간이다.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에서 선정한 그림책 100권이 주제별로 전시 중이다. 도서관 이름의 모티프가 된 <넉점반>도 있다.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에서 선정한 그림책 100권이 전시 중인 넉점반도서관.
넉점반도서관을 지나면 서점이다. 그림책과 인문학 도서 등을 갖췄다. 서점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살펴볼 수도 있다. 책을 읽다 정면의 통유리로 시선을 옮기면 창밖 경치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서점 안 두 개의 벽면은 작은 갤러리로 이용 중이다. 주로 그림책 원화를 전시하는데 작품이 마음에 든다면 구입도 가능하다.
서점에는 책도 읽고 풍경도 감상할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서점을 나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2층 천장 높이까지 올라간 책장이 있다. 빼곡하게 들어찬 수천 권의 책 모습에 탄성이 나온다. 책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할 책장이다.
1층에서 2층 천장까지 설치한 책장. 누구나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다.
영유아 자녀와 함께 방문했다면 지하에 있는 '행복한도서관'을 이용하면 된다. 놀이터처럼 꾸민 공간에서 아이와 함께 책을 볼 수 있다. 아이가 놀다가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안전하게 바닥을 처리했다. 실내를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눈 벽면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서현 작가의 작품이 그려져 있다. 벽면 중간은 뚫려 있어 부모가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도록 했다. 도서관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는 수유실도 갖추었다.
행복한도서관을 방문해 할아버지와 함께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에서 하룻밤 머물고 싶다면 2층 북스테이를 이용하면 된다. 성인 기준 2명이 잘 수 있는 방이다. 방에는 아이들을 위해 색연필도 준비해 놓았다. 북스테이 방문객을 위해 넉점반도서관은 오후 9시 30분까지, 행복한도서관은 오후 8시까지 개방한다. 좋아하는 음악 CD를 가지고 가면 북스테이 맞은편 음악감상실에서 들을 수도 있다.
[왼쪽]북스테이에는 아이와 함께 머물기에도 좋다. 아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색연필을 준비해두었다.
[오른쪽]한 번 들어가면 오래 머물며 음악을 듣고 싶어지는 음악감상실. 은은한 조명이 음악 감상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마을 어디에서든 책을 읽는 자연 속 도서관
본관에서 나와 정면으로 걸어가면 노란색 그림책버스와 정원이 나온다. 학생들의 등하교를 돕던 버스가 숲으로 들어가 도서관이 되었다. 그림책버스는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아이는 좌석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도 버스를 타고 여행 가는 상상을 한다. 놀고 싶으면 당장 일어나 숲으로 뛰어가도 된다. 그림책버스 주변에 조성된 '미로정원'과 '아하정원'이 아이들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숲속을 걷다 만나는 그림책버스. 노란색 버스가 반가워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미로정원은 이름처럼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미로 모양의 정원이다. 가운데 있는 정자에 도착하기 위해선 30여 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금세 닿을 것 같아도 돌고 도는 길이다. 미로에 빠진 듯 길을 헤매고 다시 찾는 경험이 방문객들에게는 숨소리와 새소리, 발소리에 집중하는 계기가 된다. 아이를 미로정원에 들여보낸 후 자녀의 뒷모습을 처음 자세히 보게 되었다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 인생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시행착오란 필수란 사실을 짧은 산책으로 배우는 시간이다.
미로정원에서는 가운데 정자까지 금방 도착하겠지 생각하고 들어섰다간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하정원은 원형의 잔디밭이다. 헷갈리는 길이 연속되는 미로정원과 달리 아하정원은 빈 장소로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명상을 하거나 누운 채 하늘 풍경을 본다. 미로정원에서는 길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면 아하정원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시간을 누린다.
편히 앉아 명상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아하정원
정원을 지나면 '견문헌'이다. 조양서원의 솟을대문이자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 '레스 스쿨' 교사가 머무는 방이다. 솟을대문 안쪽으로 한걸음 옮겨 천장을 보자.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입니다 무가탈의 세상을 꿈꾸며'라고 대들보에 쓴 글씨가 보인다.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 촌장이 직접 썼다. '무가탈'은 '무지와 가난과 허약으로부터 탈출하는 문'이란 뜻이다. 마당으로 들어가면 머리 위 견문헌 처마가 열리며 멀리 있는 산등성이 풍경을 조금씩 내어주는 것만 같다.
조양서원은 '아침 햇살'이란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 이곳에 왔다면 마당 주변을 거닐거나 대청마루 문을 통해 경치를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풍경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매일 변화하는 작품이 된다.
조양서원에 갔다면 대청마루에 올라 뒷문을 열어보자. 뒷마당과 앞마당에 펼쳐지는 경치는 조양서원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앞마당에 심은 나무도 놓치지 말자. 구례군 화엄사 홍매화와 접붙이기한 나무다. 조양서원 마당의 홍매화뿐 아니라 마을 곳곳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는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이 계절별로 갈아입는 옷이다. 산수유와 철쭉이 화려한 봄옷이 되어 마을을 치장하는가 싶더니 이내 녹색의 옷이 여름이 왔음을 알린다. 산책길에 쌓이는 붉은 낙엽은 가을을, 마을 전체를 덮는 하얀 눈은 1년이 지났음을 말해준다.
다시 견문헌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아하정원 옆으로 '조양각'이 보인다. 전남 담양에 있는 소쇄원 광풍각을 재현해 만든 정자다. 마을 구경을 하다 잠시 쉴 수 있는 장소다. 대안학교 레드 스쿨 학생들이 이곳에서 야외 수업을 할 때도 있다. 조양각 맞은편 작은 다리 건너에 있는 건물들이 레드 스쿨이다. 학교 설명을 듣고 싶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방문객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장소는 다리 위 그네까지다.
산책길 아무 곳이나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읽는메타길. 자연 속에 들어선 도서관이다.
조양각을 지나면 '책읽는메타길'이다. 약 100m 거리에 메타세쿼이아를 심어놓은 산책길이다. 길 곳곳에 놓인 벤치에는 누구나 앉아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다. 길옆에는 시냇물도 흐른다.
매일 오후 1시, 3시에는 신청자에 한해 마을 전체를 설명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식사는 본관에 있는 뚜띠쿠치나에서 가능하다. 3대가 함께 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입장료가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