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이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혼란에 빠졌다.
재건축 소형의무비율을 완화하는 법까지 개정된 마당에 서울시가 반기를 들었는가 하면,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는 정치권의 반대로 법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정부 말만 믿고 집을 사고 팔았던 수요자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 여파로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은 매수문의가 끊기고 거래가 중단되는 등 다시 침체에 빠질 조짐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개포동 주공1단지,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등 주요 재건축 단지의 중개업소에는 최근 재건축 사업을 걱정하는 매수자들의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9일 입법예고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개정안에서 정부 방침과 달리 전용면적 60㎡ 이하를 전체 가구수의 20% 이상 짓도록 하는 소형 의무비율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일부 조합원은 소형에 입주할 가능성이 커진 때문이다.
강남구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개포 주공1단지 11㎡의 경우 소형 의무비율이 풀리면 중형 아파트를 배정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는데 이번 조치로 소형 아파트를 배정받을까봐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뀐 재건축 제도에 맞춰 사업을 준비해오던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서울시가 소형의무비율을 원상복귀하면서 사업추진에 걸림돌이 생겼다.
이 아파트의 한 주민은 "전용 85㎡ 짜리에 10년 넘게 살았는데 재건축 후에도 면적을 넓혀가지도 못하게 하는 건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며 "서울 강남에 전용 60㎡짜리 소형을 꼭 지어야 하는 지 시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지의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서울시의 조례 입법예고 후 매수 문의가 뚝 끊겼다"며 "거래가 안돼 조만간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폐지도 여당인 한나라당이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양도세 중과 폐지는 이미 지난달 16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여서 국회 통과가 불발이 될 경우 시장은 큰 혼란에 빠질 전망이다.
투기지역 해제도 '안갯속'…매도ㆍ매수자 불만 쇄도
개포동 한 공인중개사는 "양도세 중과가 없어진다고 믿고 집을 팔았던 다주택자들이 잔금 날짜가 다가오면서 불안해하고 있다"며 "법 통과 전까지 양도세가 과세되지 않도록 매수자와 합의해 잔금날짜를 조정하려는 매도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잠실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도 "양도세 중과 폐지로 강남 재건축 수요가 일부 늘어난 게 사실"이라며 "이미 집을 사고 판 사람들은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남 3구의 투기지역 해제 지연도 시장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는 수차례 "해제 방침에 변함이 없으며 해제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최근 강남 집값이 불안 조짐을 보이면서 점차 무산되는 쪽으로 저울추가 기우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투기지역 해제에 맞춰 주택 매도ㆍ매수를 계획했던 수요자들은 예측 불가능한 정부 정책을 원망하고 있다.
서초동의 B중개업소 대표는 "투기지역이 해제되면 집을 팔려는 집주인들은 정부 말만 믿고 기다리다가 '매도 타이밍만 놓친 게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대출금액이 늘면 집을 사려 했던 매수자들은 '강남 기다리다 다른 지역 물건도 못샀다'며 볼멘 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기지역 해제가 미뤄지면서 같은 강남이라도 일반 아파트는 거래가 뜸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의 과열은 사전에 차단해야 하지만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흔들릴 경우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한주택건설협회 이호상 부장은 "노무현 정부때 집값이 크게 올랐던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 정책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신뢰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불안한 주택 시장 붕괴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정부가 주택시장을 활성화하고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 방향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원:중앙일보 2009.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