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044052
이 강연을 클리앙에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는 데, 어제 다른 클리앙 분이 댓글에서 언급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내친 김에 강연을 받아 적고, 제가 직접 번역해서 클리앙에 올립니다.
이것은 블라디미르 포즈너(Vladimir Pozner)가 예일대의 러시아 프로그램 일환으로 2018년 9월 27일 강연했던 것을, 예일대가 자기네 유튜브 채널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Vladimir Pozner는 프랑스에서 러시아출신 유태인 아버지와 프랑스계 어머니 사이에서 났으며, 미국으로 이민가서 미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그는 냉전 시기 서방 TV에 나와 소련의 입장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맡아 유명해졌습니다.
이 강연은 거의 두시간 짜리라서 그걸 다 여기에 번역하는 건 무리이고,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7분 18초~32분43초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이 워낙에 구어체로 강연을 한 터라서, 생략한 단어나 주어 등은 제가 알아서 채워넣었고, 상당한 의역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불필요한 부분을 말한 것은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그 부분은 감안하고 읽어주십시오. 제 번역과 함께 영어 원문을 제시해 놓았으므로, 보충해서 읽으시면 빠지는 부분은 없을 것입니다).
Vladimir Pozner: How the United States Created Vladimir Putin 예일대 채널, 2018. 09. 27
https://www.youtube.com/watch?v=8X7Ng75e5gQ&feature=emb_title
"저는 오늘날 우리가 극히 위험한 순간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소련 시절을 포함해서, 이 수준에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냉전 최악의 시기에 나는 소련에서 살고 있었고 아주 잘 기억합니다만, 러시아인들은 반 백악관이고, 반 월스트리트이기는 했지만, 반 미국인이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미국인들에 대해서는 따뜻한 감정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오늘날은 풀뿌리 레벨에서부터 반 미국인이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또하나, 저를 무섭게 하는 것은, 양쪽 다 핵무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30년전 제 연배의 사람들은 "그날 이후"라는 미국 영화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핵 전쟁이 터진 이후에 어떻게 되는가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핵무기에 대한 공포가 미국에도, 소련에도 있었고, 이런 무기들이 우리들을 우리 나라들을 파괴할 수 있다는 현실인식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마치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핵무기가)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고의적인 핵무기 상호 타격이 아니더라도, 두 나라간의 불신이 커지면서 우발적인 타격이 가해질 가능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 컴퓨터가 핵 공격을 경고한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현실을) 체크했기 때문에, 핵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시간을 길게 가지지 못합니다. 러시아에서 ICBM에 발사되면, 10분이면 미국을 때립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제 느낌으로는 오늘날 같은 컴퓨터 고장이 일어나고, 그리고 그게 양쪽에서 일어나서 미사일이 발사된다면... 반격은 즉각적일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I'd like to say, first of all, that we are at an extremely dangerous moment today. Never have the relations between Russia and the United States with the Soviet Union, not what it was before, been at this level. During the worst times of the Cold War, when I was living in the Soviet Union, and I remember all that very very well. Russians were anti-White House, anti Wall Street, but not anti American, in their vast majority. In fact, there was a kind of a warm feeling these are the Americans. Today, it's different. Today it's anti American at the grassroots level, and there is a reason for it.
Another thing that is, to me scary is that neither side seems to be afraid of nuclear weapons.
30 years ago, those of you who are of my age certainly remember an American movie called "The Day After", which is about what happens to you and to your country after a nuclear strike. There was fear of these weapons, as there was in the Soviet union, there was a realization that these weapons can and if used will destroy our country. Today, there is a feeling when you talk to people, as if there are no nuclear weapons. It really doesn't seem to play a role in how we act. And the danger of a not a deliberate nuclear exchange, but an accidental one had grown because the level of mistrust between the two countries has grown as well.
There have been several times in the past when computers warned of a nuclear attack. But it never got to the real thing because people took the time to really check it out. Now they didn't have a long time. If an ICBM is launched from Russia, it will take about 10 minutes for it to hit the U.S. So you know, and vice versa obviously. So you don't have a long time but you do have some. But my feeling is that if today those same computers malfunction and it's on either side that an attack has been launched, the response would be immediate. because the feeling is that this is what's going to happen."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우리 모두는 긍정적이었습니다.
고르바쵸프.. 고르비... 러시아인들. 우리는 친구가 될 거라고... 그런데 그렇게 짧은 시간 만에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왜 우리는 오늘 이 지점에 서 있게 된 것일까요.
저는 누군가를 욕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생산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아야만 합니다. 고르바쵸프의 소련시절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1985년 3월에 집권해서 1991년 12월에 끝났고, 소련은 사라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련이 붕괴했다고 말하는 데, 붕괴는 아닙니다. 벨라베자 숲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 벨라루스 대통령, 그리고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옐친이 모여서 소련을 없애기로 결정했습니다. 각자 이유가 있었겠습니다만, 옐친의 동기를 살펴보자면, 아주 분명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대통령이었고, 그래서 소련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쵸프에 이어서 서열 2위였습니다. 소련을 없앴으니, 서기장 자리도 사라지고 고르바쵸프가 제거되었죠. 그게 옐친이 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소련이 사라졌습니다. 곧 바르샤바 기구도 사라졌습니다. 바르샤바는 소련의 위성국가들이라고 불리는 것들과 소련과의 군사적 동맹이었습니다만, 그것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미국은 앞으로 러시아라는 신생국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옐친도 미국에 대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러시아의 태도를 정해야 했죠.
소련이 사라진 후 곧 이어서 옐친은 1992년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에 와서 연설을 했었습니다. 그는 "러시아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에게 우정의 손길을 건넵니다. 더 나은 세계, 전쟁이 없는 세계,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자"고 연설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미국과의 우정이 안된다면, 파트너 쉽이라고 갖기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옐친은 그걸 원했다고 치고, 그럼 어떤 반응을 얻어갔을까요.
미국으로서는 러시아를 대하는 데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2차 대전후 적국이었던 독일이나 이탈리아, 점령당했던 프랑스, 크게 부숴졌던 영국을 대했던 것처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치나 파시스트가 다시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죠. 기억을 상기시켜드리자면,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이 아주 강했었습니다. 이 정책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원조를 하는 것으로 마샬 정책이라고 불렸는 데, 상대국의 특정 부분을 아주 발달시키고 어떤 부분은 미발달되도록 하는 경제지원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을 러시아에 적용시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민주주의가 발달하도록 말이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러시아는 그 수천년의 역사를 통틀어 민주주의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러시아가 한때 가졌었던 것인데, 이제는 잊어버렸지만, 자신들에게 그게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그런 케이스가 아닙니다.
자, 이제 러시아에 돈을 써서 민주주의가 발달하도록 하고, 공산주의자들이 재집권하지 못하도록 하자. 그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습니다."
"Not that long ago, we were all very optimistic, weren't we?
Gorbachev, Gorby, Russians, we're gonna be friends, we're gonna be... And in such a really short period of time, how did this happen? Why are we at the point that we are today?
And I'm not saying who's to blame. Because thya's not a productive way of looking at things. But we should try to understand exactly what did happen. The Soviet Union once Gorbachev took over didn't really last very long. He came to power in March of 1985, and by December 1991, there was no more Soviet Union. Some people say it collapsed, didn't collapse. In a place called the Belavezha, which is a kind of a forest, three presidents - the President of Ukraine, the President of Belarus, the President of Russia, Mr. Yeltsin decided to part company, decided to disband the Soviet Union. Now, each had his own reasons definitely.
But if we look at Mr. Yeltsin, his reasoning was very clear. He was the president of Russia. So he was number two to Gorbachev. Because Gorbachev was president of the Soviet Union, which Russia was part, the largest part, but only part. Get rid of the Soviet Union, and there's no president and you get rid of Gorbachev. That's precisely what he did.
So no more Soviet Union. Quickly no more Warsaw Pack, of course, that is to day, countries that were usually called Soviet satellites and part of a military alliance with the Soviet Union, that alliance disappeared. And so the United States had to figure out, how do we deal with this new entity called Russia? There's no more Soviet Union. What is going to be U.S. policy, vis-a-vis this country. And of course, Yeltsin also had to think about what is going to be Russia's attitude towards the United States.
You may remember that soon after the Soviet Union cease to exist, and I think it was February of 1992, Yeltsin came to the United States, and he addressed the joint session of Congress. And he said, the people of Russia are offering their hand to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in friendship, to build a better world, a world without war, a world with our peace.
And this was exactly what the vast majority of Russians wanted. And I would even say that today, the vast majority of Russians would like to have, if not a friendship with the United States, at least a partnership. There's not doubt to my mind that that's the case. So that was what Yeltsin wanted, and what kind of response did he get?
Well, the United States could have picked two ways of treating Russia,
One was to, let's treat Russia like we did our enemies after World War II, German, Italy, and in some of the countries that were occupied such as France, or were not occupied such as UK but were really badly hurt. Let's find a way to see to in that in those countries, Nazis, facists do not come back. And communists do not come to power, and (I) may remind you that in those days, the Communist Party of France and the Communist Part of Italy were very very powerful. And that plan turned out was called later the Marshall Plan, which was basically a financial ideas to spend a lot of money but in a very precise way to develop certain things, and not to allow others to develop. Now that could be the policy to adopt vis-a-vis Russia. See to it that democracy begins to develop in that country. And let me say, just for the record, Russia never in its entire thousand years, never had democracy, completely absent.
So it wasn't like something that once upon a time Russians had, and then they lost, but they knew what it was. They didn't know what it was. So let's spend money on getting democracy moving in Russia and seeing to it that the communists do not get back. And that could have been one approach."
"다른 하나의 접근 방식은, '지금까지 40년간 니가 네 머리에 핵폭탄을 겨누고 있었지만, 이제 너는 냉전에서 졌다. 그러니 너는 댓가를 치뤄야 한다. 너는 벌을 받아야 한다' 는 시각입니다.
미국내에서는 이런 두 가지 접근방식을 지지하는 각각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92년 초에, 미국내에서 폴 울포위츠에 의해 만들어진 문서가 있습니다. 그는 미 국방부 장관 밑에서 국방정책을 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문서는 Wealth of its Doctrine이라고 비공식적으로 불렸는 데, 나중에는 공식적으로 부시 독트린 이라고 불리는 데 포함되었습니다. 그 문서는 유출되어 뉴욕 타임즈에 실렸고, 그래서 알려졌습니다. Wolfowitz Doctrine이라고 검색하면 바로 나오니 여러분이 직접 찾아보실 수도 있는 데, 기본적으로 이 정책은 이겁니다.
'미국은 앞으로 어떤 나라에게도 도전받아서는 안된다. 미국은 슈퍼 파워로 남을 것이며, 우리는 동맹국들에게도 미국이 무기를 개발할 것이니, 너희들은 무기를 개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러시아가 앞으로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감시해야만 한다. 불곰은 그 숨긴 발을 들고 다시 으르렁 거릴 것이다.'
이 문서가 뉴욕 타임즈에 유출되었을 때, 리버럴 진영으로부터 반대가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이것은 제국주의 정책이며 어떤 나라에서도 채택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The other approach was to, for 40 years, you held a nuclear bomb over our heads, you lost the Cold War, and you are gonna pay for it. You are gonna be punished for what you did. And there were people who suported one view and people who supported the other view in this country.
Early in 1992, a document was produced in the United States, by a gentleman called Paul Wolfowitz. You may know who he was, the was under Secretary of Defense of the United States, responsible for policy. The document he produced came to be called, the Wealth of its Doctrine, not officially, but that's the way it was addressed. It was later incorporated in something that was officially called the Bush Doctrine. That document was leaked to the New York Time, and so it became public. And what it basically said, and you can look it up, just go to Wolfowitz Doctrine and you'll find it, what it basically said was this. This United States should never again allow any other country to challenge it. The United States must remain the superior country. And we should tell our allies not to worry about developing their own weapons, because we will do that for them. And we must watch out for Russia, because we don't know which way it's going to go. The bear might get up on his hind legs again, and growl."
When that document was leaked to the New York Times, there was an outcry by the more liberal, if you will, in America now the word liberal and conservative has lost the meaning that it once upon a time had, so when I say liberal, I'm not sure that I'm saying the right word, but at least many people were upset by this document. Edward Kennedy said that it was an imperialist document that no country could or should accept."
(역주: 이 문서는 미국 전략 정책의 원칙을 세 가지로 확립하였습니다.
1, 경쟁자 없이 미국이 전 세계를 군사적으로 영원히 지배한다. 어느 나라도 미국의 라이벌이 되거나 위협이 될 수 없도록.
2. "선제타격' 정책을 채택하여.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미국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먼저 공격할 수 있다.
3. 미국 시민은 국제 범죄 재판정에 서지 않는 치외법권을 가진다.)
"울포위츠 독트린은 체니에 의해 수정되었고, 그 다음엔 파웰 국방장관에 의해 수정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시각을 견지하였습니다. 미국은 유일한 슈퍼 파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 정책을 채택하였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너는 더 이상 슈퍼파워가 아니야. 너는 이제 2등급 국가야. 그러니 닥치고 조용히 있어"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후 미국의 정책을 살펴보면 명확해 집니다.
이제 고르바쵸프와 그가 가졌던 회의로 돌아가 봅시다.
독일이 재결합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그는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독일이 통일된다면, 나토는 1인치도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이 아니야"라고 말을 하는 데, 2017년 12월 12일, 조지 워싱턴 대학의 미 국방부 서고는 이 베이커-고르바쵸프 회의록을 비밀에서 해제하여 공개하였습니다. 그래서 보실 수 있습니다."
(역주: 사실입니다. 관련 링크는
https://nsarchive.gwu.edu/document/16117-document-06-record-conversation-between 1990. 2. 9 고르바쵸프와 베이커 국무장관의 회담 5 page )
그렇게 (나토 확장 금지) 말한 것은 베이커 장관뿐이 아니라, 서독의 콜 총리도 그렇게 말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었습니다. 나는 고르바쵸프가 독일의 통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이 고르바쵸프에게 그렇게 말을 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토는 수년간 그대로 있었습니다. 아버지 부쉬 집권기간과 클린턴 1기 집권기간에 그랬습니다. 하지만 1994년 즈음에, 나토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를 합류해서 확장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This document establishes three key principles of U.S. strategic policy: (1) the perpetuation of unrivaled U.S. global military dominance, so that no nation will be allowed to rival or threaten the United States; (2) U.S. readiness to engage in “preemptive” military attacks against states or forces anywhere on the globe that are considered a threat to the security of the United States, its forces and installations abroad, or its friends or allies; and (3) the immunity of U.S. citizens to prosecution by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Commenting on this new National Security Strategy, Senator Edward M. Kennedy declared that, “The administration’s doctrine is a call for 21st century American imperialism that no other nation can or should accept” (October 7, 2002)."
It was quickly as it were removed and rewritten by Mr. Cheney, and the Secretary of Defense in those days, Mr.Powell. But basically it retained that view, America must remain, was to be the only superpower. And basically, that view was the one that was accepted. And the attitude towards Russia was pretty much...."You are no longer a superpower. You are a second rate country. Just keep quiet, please." This became evident and would be evident to you if you follow the policy of the United States.
Now, let's begin with going back to Gorbachev and his meetings when he was asked by several people, all of them quite important, to allow Germany's to reunite and take down the Berlin Wall. And he was told by James Baker, and now this is not many people, I mean, when I would say this, many people say "It's not true, it's not true". he was told by James Baker, if this happens, NATO will not move one inch eastward. Well, not long ago, on December 12th, 2017, the National Defense archives of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declassified the minutes of the Baker-Gorbachev discussion, and it's there.
But it's not only Baker who said that to him, there was several people there, the German leadership did, Western Germany those days and so on. And finally, I'm not saying, I don't know whether Gorbachev could have stopped Germany from uniting, but the fact of the matter is that they said yes and took down the Berlin Wall.
AND NATO stayed put, it stayed put in those days. It stayed put under Bush Senior, it stayed put during the first four years of Clinton. But in the next four years in 1994, approximately, a decision was taken to enlarge NATO. Three countries: Poland, the Czech Republic, and Hungary."
"이제, 여러분께 한가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토마스 프리드먼이라고 아시나요? 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 말입니다.
그는 1998년에 조지 케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조지 케넌이 누군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생각으로는 그는 1950-2000년 사이에 미국 정치사상 가장 똑똑한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그는 소련과 전쟁을 하는 대신에 소련을 봉쇄(containment)한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것은 성공했습니다.
토마스 프리드먼은 미국의 대소련 정책을 만들어낸 이 똑똑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내용을 "Foreign Affairs: Now a Word from X" 라는 제목으로 뉴욕 타임즈에 기고했습니다. 왜 X냐 하면, 조지 케넌이 1947년 소련 봉쇄 아이디어 글을 포린 어페어즈지에 기고했었을 때, 필명을 x라고 썼었기 때문입니다.
1998년 3월 2일의 이 통화에서 조지 케넌은 "나는 이건 새로운 냉전의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인들은 점차 미국에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그들의 정책에도 반영될 것입니다. 나는 이게 비극적인 수준의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이유에서든 이럴 이유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Now, I'm gonna read something to you. You know who Thomas Friedman is? New York Times old hand columnist. He, when this happened, this is already 1998, he called up George Kennan. I don't know if you are all aware of who Goerge Kennan was, but he was one, in my opinion, perhaps one of the most brilliant minds, political minds of the United States in the secod half of the 20th century. The man who devised the idea of containment of the Soviet Union rather than war against the Soviet Union, successfully did this.
So, you know, a brilliant man who established the very foundation of U.S. policy, this will be the Soviet Union. So Thomas Friedman called him up. The article he published in the New York Times, it's called "Foreign Affairs: Now a Word from X". Why X? Because in 1947, in the magazine Foreign Affairs, Mr. Kenna had published this article about containment, and he signed it X.
역주: Foreign Affairs; Now a Word From X - Thomas, Friedman. 1998. 3. 2
https://www.nytimes.com/1998/05/02/opinion/foreign-affairs-now-a-word-from-x.html
So he called him up and asked him, what did he think about the decision to enlarge NATO?
Let me quote. This is May 2nd, 1998, "I think it is the beginning of a New Cold War" said Mr. Kenna from his Princeton home.
"I think the Russians will gradually react quite adversally, and it will affect their policies. I think it is a tragic mistake. There was no reason for this whatsoever"
"제 생각을 말하자면, 그 (울포위츠 독트린) 결정이 이 관계를 시작했습니다. 이건 1998년이었고, 그때는 옐친 집권 후반기였습니다. 옐친은 "너희 이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잖아. 이러면 내가 어떻게 너희를 믿을 수 있겠냐"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작은 수학 퀴즈를 하나 주겠습니다. 1985년 3월 고르바쵸프가 집권한 때로부터 2007년 푸틴이 집권 7년차가 될 때까지 22년동안, 소련이나 러시아가 미국을 거역해서 화나게 하거나 실망시켰던 대외/대내 정책을 단 하나라도 꼽아보십시요.
제가 답을 드리겠습니다. 제로 입니다. 그 시기 동안 제로 입니다.
자, 그렇게 해서 러시아는 무엇을 얻었습니까.
첫째, 나토가 확장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유고슬라비아 폭격입니다. 유고슬라비아 폭격은 나토가 한 것이고, 나토는 대부분 미국에게 의존합니다. 인정하시죠? 유엔은 이 폭격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유고슬라비아 폭격은 1999 3월 24일부터 6월 10일까지였습니다. 그 다음은 코소보 내전과 코소보 승인이었습니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일부로 수백년간 있었지만 (독립했고), 러시아안에서는 '너는 지금 병에서 지니를 꺼내주고 있어. 니가 그러면, 다른 나라들도 똑같은 짓을 할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러시아는 그렇게 했습니다.
옐친은 아주 화가 났습니다. 그는 연설을 통해서 "우리는 아이티가 아닙니다. 미국은 우리를 아이티처럼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강대국이었고, 러시아는 강대국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라고 연설했습니다. 옐친이 PC적으로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속내를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That decision, and now I'm giving you my opinion, is what really started this relation, turning itself, as you might say, that's where it all began. because the Russian reaction and specifically, this is 1998, so this is Yeltsin, late Yeltsin was, "You promised not to do this. So, how do we trust you, if you make a promise". I would also like you to, perhaps try to solve a little problem. It's a kind of mathematical. Take the time from when Gorbachev came to power, march 1985 to 2007 when Putin has been in power for seven years, that's 22 years. I ask you find a single thing in foreign or domestic policies done by the Soviet Union while still existed, and then Russia proper that might in any way anger, irk, disappoint the United States.
Let me answer that for you. Nothing. Not one thing during that period.
Now, what did Russia get as a result for that?
First, the enlargement of NATO, then the bombing of Yugoslavia. That was done by NATO and NATO is after all dependent mostly on the United States. Let's face it, right? The UN did not condone this. So the bombing of Yugoslavia that's from March 24th, 1999,
to June 10th, 1999. Then Kosovo and recognition of Kosovo although it had been part of Serbia for centuries, and there were people in Russia who said 'you are letting the genie out of the bottle. Because if you do this, then there are other countries that will do the same." and Russia did the same. As the Aphasia to begin with, okay. Yeltsin was very angry. He made a speech, he said, "We're not Haiti, You can't treat us like Haiti. We're a great country. We have a great past and Russia will come back" He was really, really angry. He didn't say the politically correct thing, but he spoke his mind."
글자수 제한 때문에 다음 글로 이어서 번역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