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5 / 호적하러 베들레헴에 간 요셉과 마리아
(눅 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눅 2: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눅 2: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눅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눅 2: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지금까지 마리아와 사가랴를 통하여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하였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사가랴는 메시야가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뿔로서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돋는 해로 우리의 어둠을 물리치는 우리의 빛이 되십니다.
이제 드디어 예수님이 태어나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교의 베들레헴 구유에 태어나십니다. 또한 돋는 해가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가 가까이 가서 만나볼 수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예수님, 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3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의 황제로 통치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가이사의 실제 이름은 옥타비아누스입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시저가 부르투스에 의해서 암살당한 후에 후계자로 지목되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역사에서 최초로 황제 정치를 한 사람입니다.
중국의 진시황제와 같이 천하를 통일한 사람입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 큰 로마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 천하로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목적은 그들에게 징집하고 세금을 걷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되었을 때 처음으로 한 것입니다. 구레뇨가 bc12년에 수리아를 인구조사 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수리아에 복속되어 있어서 그때 처음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옥타비아누스의 이런 호적명령으로 모든 사람은 각각 고향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거의 일주일 동안 일을 하지 못하여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그 나라에서 사는데 많은 불이익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호적하러 가야 했습니다.
4~5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유다의 최북단에서 남단으로 가는 150km가 되는 길입니다.
당시는 족히 3~4일은 걸렸습니다. 요즘에 버스를 타고 가도 두세 시간 걸리는 거리입니다. 요셉은 그 길을 만삭이 된 아내와 함께 가야 했습니다.
요셉은 이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민족에게 시달려야 하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시에 유다가 식민지가 된 지 거의 600년이나 되었습니다. 또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는 분이 메시야인데 메시야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전에 그렇게 큰일을 하신 하나님이 지금은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요셉이 미가서 말씀을 기억하였다면 그는 이런 가운데 소망을 보았을 것입니다. 기쁨이 넘쳤을 것입니다. 불안보다 평안이 임하였을 것입니다.
미가서 5장 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bc 700년 경에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옥타비아누스를 통하여 호적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옥타비아누스의 호적명령이 없었다면 요셉은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옥타비아누스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에게 절대권력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에게 호적명령을 내리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옥타비아누스를 통하여 유럽 전체에 언어를 헬라어로 통일하고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복음을 세계화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때 메시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옥타비아누스 뒤에서 왕이 되어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왕은 옥타비아누스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비록 옥타비아누스가 호적명령을 내렸어도 소망이 생기고 힘이 솟습니다. 하나하나의 사건에 의미가 생겨납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보시며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부조리한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면 피곤합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 정확하신 하나님이 모든 일을 주관하는 것을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이사야는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걸어가도 뛰어가도 피곤치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에서는 사람이 불안해하고 낙심하는 이유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마음에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의 문제가 있을 때도 가정을 이루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직장과 사업에 문제가 있을 때도 인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