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사탕 근처
최윤정
수박사탕 담긴 상자를 옮기는 사람의 어깨에서
착실하게 플라스틱 사슬까지 가로지르는 비
비의 소음만이 엉성하게
물풀 넘어진 저녁을 밝히고
포자가 몰고 오는 공기에 섞여서
짙어진 어둠 흔들리게 할 것이고
땀에 절은 골목 비추이는 달빛마저 온데
간데 없는 진균의 밤에게 안부를 물을 것이다
카페를 나선 코코넛 커피는 환자복에 얼룩을 만들고
종이컵 표면에 희미하게 번지는 기름띠를 가진 채
차갑거나 뜨겁지 않게 가장자리 머물며
착실하게 지켜보는 것이다 꼬리 반쯤 잘린 길고양이와 함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밤 구석에 고인 비의 마음을
포자들이 몰고 오는 비의 사슬이 가로지르는 나를
들숨이 없으면 날숨도 없는 날들은 아직 남아서
물살의 걸음으로 물까마귀는 검은 빛 옮기고
자다 깨서 켁켁거리는 순간과
그 순간을 가로지르는 비의 소음 털어내며
가로지르다 멈춰서 점멸하는
빛부스러기 멍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수박사탕은 껍질째 녹고 있을 어둠 근처 선반을 밝히고
달작지근한 비의 걸음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6월호 발표
최윤정 시인
대구에서 출생. 2014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공중산책』 (2017)과 공동 산문집 『프로방스에 끼어들다』 (2017)가 있음.
2015년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