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대한 질문은 이승환 팬들에게 기분 나쁜 질문일 수도 있고, 조금의 논란거리가 될만한 질문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이승환은 10년 넘게 가요계 최전선에서 의욕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앨범도 꾸준히 내고 있고 공연도 하고 있는데 이승환보고 대중 가수가 아니라고 질문한다면 대체 어떤 누가 대중 가수이겠냐고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형식적인 카테고리를 넘어 심리적으로 볼 때 그가 대중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얼마전에 필자는 이승환과 김건모를 비교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한 연예 게시판에 그 글이 옮겨졌고 그 밑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리플로 달려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리플은 이거였다. “이승환은 명성에 비해 대중적이지 않고 매니악한 가수인데 파퓰러한 김건모와 비교가 가능한가”라며 글에 반문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반론은 김건모의 시점에서 비교 불가능한 논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반론이기도 했지만 분명히 적지 않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고 있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질문해봐야할 문제였다.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이승환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승환이 완전히 대중성에 발을 딛지 않고 있는 것에 그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 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런 의견을 내놓는 걸 보면서 다시 한번 이승환이 대중적인 가수인지 대중적이지 않은 가수인지 생각해보아야 했다. 또한 어째서 이승환이 가요계 최전선에서 10년넘게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이지 않은 가수로 느껴지고 있는가도 생각해보아야 했다.
돌이켜보자면 이승환은 대중적인 가수로서 꼭지점을 찍은바 있다. 최고의 히트 넘버 ‘천일동안’과 이오공감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발표되고 활동할 때만 해도 그는 인기 가수였고 대중적인 가수였다. 당시에도 TV출연을 자주하지 않은 건 지금과 마찬가지였지만 라디오와 라이브를 거점으로 그는 많은 인기와 지지도를 얻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가 발표한 곡들은 늘 대중적인 형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대는 모릅니다’에서는 ‘천일동안’에서처럼 폭발하는 슬픔을 노래하며 대중성을 유지했고 [Egg]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던 ‘잘못’은 이승환이 1, 2집때 불렀던 초기 감성을 다시 꺼낸채 예쁘고 세련된 편곡으로 21세기에 맞는 서정성을 노래했었다. 그리고 그 두 곡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대중적이며, 제일 잘 나가는 작곡가인 유희열과 이승환의 공동작업으로 완성되었는데 이런 곡을 대중적이지 않다고 말한다면 대체 어떤 곡을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붉은 낙타’를 지나면서 ‘그대를 모릅니다’, ‘잘못’에 이르기까지 이승환은 점점 대중과 유리된 길을 걸어나가고 있었다고 해야 되겠다. ‘천일동안’ 이후의 이승환은 드림팩토리를 건설하고 자신과 팬들의 관계 형성에 앞장섰고 성공하였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대중과의 거리는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승환은 자신의 최대 미디어를 TV로 삼지 않고 앨범으로 삼았다. 그는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방송 출연위주의 홍보활동을 하지 않은 채, 예컨데 TV라는 중간자를 거치지 않은채 가급적이면 자신의 앨범과 팬사이를 직접 연결하며 이승환 매니아와의 관계를 밀착시켰다. 그리고 그 덕에 그는 지금까지도 이승환 매니아와 드림팩토리 매니아를 끌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그들만의 소통에 익명의 대중들은 더 접근하기 어려워 진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그에게 유통기한을 더 늘려주었고 시간의 흐름에도 이승환이라는 가수가 가요계라는 지형도위에 흔들림없이 서있게 해주었지만 그와 매니아 사이의 공간이 컴팩트해질수록 이승환 매니아가 아닌 익명의 대중들은 그 틈에 끼여들기가 힘들어진 부작용도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이승환의 앨범이 한장 한장 나오는 동안 쌓아올려졌던 무언의 벽도 간과할 수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대중과 다양한 루트로 만나려고 만들어 둔 그의 수많은 음악적 프리즘들이 정작 대중들에게 버거운 느낌을 갖게 한 것이다. 이승환은 무슨 일을 벌이든 퀄리티에 있어선 욕심이 많은 사람이고 퀄리티에 대한 그의 집착은 언제나 앨범에서 극대화되곤 했다. 그는 끊임없이 전작의 앨범에서 채워주지 못했던 욕심을 새 앨범을 통해 담아내려고 하는 동시에 전작의 앨범에서 만족스러웠던 부분을 끌고 가는데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앨범과 음악이 계속 규모가 커지고 덩치가 커지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건 마치 대하 역사 드라마를 중간부터 즐길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전작 음악들을 전반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좀처럼 끼여들기 힘든 앨범으로 완성되곤 했다. 음악 장르가 접근하기 힘들어서도 아니고 그의 음악을 느끼지 못해서도 아니지만 이승환이라는 가수는 한장의 앨범에도 너무나 다양한 프리즘을 갖고 있어서 처음 그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에겐 무겁다는 느낌과 버겁다는 느낌이 커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 [Egg] 앨범에서 [Sunny side-up] 앨범 버전과 [Overeasy]가 포함된 올패키지 버전을 나눠내며 자신의 앨범의 무게를 나눠보려는 시도도 하였지만 그런 제스츄어도 결국은 이승환의 장황한 앨범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그동안 이승환 매니아를 형성했고 이승환 매니아의 충성도를 유지시키는 데 더 없이 효과적인 활동을 펼쳐왔지만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겐 대중성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들도 이승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고, 그가 꾸준히 앨범을 내고 신곡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기 힘든 면을 자꾸 느끼는 거다. 그런점에 있어서 이번 [히즈 발라드 2] 앨범 역시 똑 같은 연장선상에 있긴 하다. 이승환의 발라드 모음집이라는 접근하기 용이한 앨범 컨셉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곡들을 처음 듣는 사람들 보다는 이승환 매니아안에서만 다시 소화되고 있는 느낌이 크다.
사실 이건 조금 서글퍼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가 잘못한게 있다면 단 한번도 부족하지 않게 만들려고 했던 앨범 퀄리티에 대한 노력과 TV라는 미디어 출연해 이것저것 신경쓰기보다 라이브 콘서트에, 앨범을 만드는 데에 쏟았던 시간이었으니까 참 서글픈 결과론이다. 그의 음악도 분명히 나쁜 부분도 있고, 못만든 부분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분명히 그것은 대중 음악의 평균치를 뛰어넘을 만큼의 기본을 깔아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대중성과 멀게 느껴진다는 건 참 슬픈일 아닌가.
하지만 [히즈 발라드 2]에 수록된 ‘꽃’을 들으며 한가지 뚜렷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누구는 대중성이 없다고 말을 하고, 누구는 이승환이 대중 음악의 큰 축이라고 말을 하는 그 앞뒤 다른 벽에 서서 이승환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승환만이 부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있고 사람들은 그이기에 가능한 고유한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중성과 유리되었지만 그가 만들어 내고 있는 호흡은 지극히 대중적인 자신만의 독특한 공간에서 이승환만의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꽃’이라는 곡은 그걸 극단적으로 대표하고 있는 곡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 듯 차분하게 감동을 이끌어 내는 ‘꽃’은 대중적인 시스템에 자신의 음악을 맞추어가는 가수였다면 쉽사리 발표하기 힘들었던 곡이자 타이틀 곡으로 내걸리는 건 더욱 힘들었을 곡이다. 사실은 너무 아름다운 곡이지만 대중적인 표피를 갖고 있지 않은 덕분에 곡을 만든 이규호조차 타이틀 곡으로 쉽사리 부를 수 없었을 곡이며, 다른 어떤 발라드 가수에게도 그러했을 거다. 마치 이승환 그 자신처럼 말이다. ‘꽃’이라는 곡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감동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달콤하게 한 번에 와닿지는 않는 비대중적인 느낌덕에 가수들이 쉽사리 부르기 힘든 그 점점에 서있다.
‘꽃’은 대중적인 편곡과 대중적으로 다가서기 쉬울만한 감각적인 페로몬을 발산하는 곡은 아니기에 그 자체로 보자면 그리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곡은 아니며 구성적인 측면에서 결코 터지지도 않으며 발라드의 슬픔을 클라이막스까지 끌고가며 시원스레 해소시켜주는 곡도 아니다. ‘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버리고 마는 곡이다.
하지만 이런 대중적이지 못한 면들을 끌어올려 이승환은 마음 한구석에 흐르고 있던 강에 사뿐히 꽃을 띄워놓으며 강 저편으로 흘려보냈던 기억의 서정들을 조금씩 어루만진다. 이승환만이 부를 수 있는 목소리로 말이다. 기억을 놓혀버렸다고 해서 너무 슬프지도 않고 너무 아프지도 않게 그리고 너무 자책하지도 않게 그의 목소리는 아주 적당히 노래를 흘려보낸다. 그래서 이 노래는 폭발하지도 않고, 대규모 클라이막스로 흐르지 않은 채 단지 편곡상으론 스트링이 클라이막스의 빗금을 긋는 동안 이승환은 자신의 마음속에 노래부르듯 아주 편안하게 내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감동의 게이지는 정상에 다다르게 한다. 아름답지만 어떤 가수도 쉽게 부를 순 없는 곡 ‘꽃’은 지금의 이승환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곡이었다. 대중성이라는 것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만의 대중성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부를 수 있는 곡인 셈이었다.
앞서 이승환은 대중적인 가수인가? 대중적이지 않은 가수인가? 에 대해 질문해 보았지만 질문 끝에 찾아낸 대답은 그 두 가지 질문에 공존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 독특하고 고유한 위치에서 ‘대중적인가? 대중적이지 않은가?’ 를 질문할 수 있는 그와 똑 닮은 음악을 불러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흐른뒤 이승환이 대중적으로 기울게 될지, 대중적이지 않은 가수로 기울게 될지 그것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 ‘꽃’이라는 곡을 불러줄 수 있는 그의 음악에 새삼 감사드린다.
첫댓글 유투엔 절대 동감이지만.. 윤상과 이승환은 좀...--"..특히 윤상은..(--" )( "--). 물론 제 갠적인 마인드지욤...^^
전 아이돌 가수들 말고 기획사가 홍보 잘해준다는 가정하에 외국 (정확히 하면 유럽) 나가서 성공할 아티스트 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윤상인데..
윤상...대단한 사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