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작은 학교' 관심이 학교 살렸다
소년조선 | 최민지 기자 |2011.10.25.
학부모가 바뀌면 학교도 바뀐다…폐교 위기 극복한 안동 송천초
학부모가 바뀌면 학교도 바뀔까? 정답은 ‘예스(yes)’다. 지난 13일 교육과학기술부와 평생교육진흥원 전국학부모지원센터가 올해 처음 실시한 ‘학부모의 학교 참여활동 수기’ 공모 결과가 발표됐다. ‘학부모 학교 활동 참여’ 부문 최우수상 수상자는 김경미 씨(43세·경북 안동시 안기동) 경북 안동 송천초등 학부모회장. 전교생이 20여 명밖에 안 됐던 폐교 직전의 학교를 ‘학생이 모여드는’ 활기찬 학교로 바꾼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씨를 비롯한 송천초등 학부모회원들을 전화로 만나 수상 비결을 들었다.
지난 5월 어린이날 행사 때 자리를 함께한 경북 안동 송천초등 학부모 회원들. / 경북 안동 송천초등 학부모회 제공
변화 하나, “작은 학교의 장점 살려라”
송천초등은 국립 안동대학교 옆에 있는 조그만 학교다. 논밭 가득한 시골은 아니지만, 안동시에선 가장 외곽에 위치해 있다. 교실은 과학실·컴퓨터실 등을 합쳐 10여 개. 학생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20여 명 정도였다.
신입생이 2배로 늘어난 건 올 3월. 송천초등 선생님들은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살리기 위해 동네 방방곡곡에 입학설명회 전단을 붙였다. 이를 보고 설명회장을 찾은 어머니들이 ‘소통하는 작은 학교’란 취지의 홍보에 공감하면서부터 학교는 북적이기 시작했다. 박근희(41세·경북 안동시 용상동) 학부모회 총무 역시 “작은 학교가 좋아” 아이를 송천초등에 입학시켰다. “큰아이를 전교생 1000명이 넘는 큰 학교에 보냈었어요. 그런데 막상 입학시키고 보니 애들은 학원에 찌들어 있고, 선생님은 아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조차 모르시더군요. 작은아이는 다르게 키우고 싶어 흙을 밟을 수 있는 작은 학교에 보내자고 결심했어요.”
하지만 처음 송천초등으로의 전학을 결심하고 학교를 찾은 학부모들은 당황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학부모회가 없는 건 물론, 변변한 도서관 하나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 기존 학부모들은 대부분 안동대 주변 상점 운영자여서 자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 때문에 초창기 송천초등 학부모회는 이곳에 자녀를 입학시킨 몇몇 어머니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송천초등 학부모회는‘학교 뒷산 오르기’프로그램을 기획해 학부모ㆍ선생님ㆍ학생 모두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 경북 안동 송천초등 학부모회 제공
변화 둘, “학교 앞 텃밭 함께 가꿔요”
학부모회의 첫 번째 회의는 대여섯 명의 학부모가 모여 진행됐다. 이들은 학년별 대표 학부모를 정하고 회의록을 만들었다. (부)반장 어머니는 으레 학부모 임원이 되는 관행도 없앴다. 사정상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학부모에게도 꾸준히 전화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회의 결과를 전했다. 그 결과, 2학기 첫 회의 땐 전교생 52명 중 40명가량의 학부모가 참석했다.
회의 때마다 수많은 안건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하나가 텃밭 가꾸기. 집에서 취미로 작은 텃밭을 가꿔본 권경자 씨(50세·경북 안동시 송천동)의 제안이 시작이었다. “학교 앞 텃밭에 잡초가 무성하더라고요. 약 1000㎡(300평)이나 되는 큰 땅이었죠. ‘전교생이 함께 가꾸면 우리 아이도 생명 기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다’ 싶어 학부모회 회의에서 건의했어요.”
학교 측 허락을 받은 학부모회는 먼저 신청자를 받았다. 총 열여덟 가구가 텃밭을 가꾸겠단 의사를 밝혀왔고, 이에 따라 고추·감자·배추·땅콩·상추 등 다양한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텃밭이 생기자, 무뚝뚝한 아버지들도 하나 둘 학교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비료 뿌리기 등 ‘힘쓰는 일’에 아버지들이 일손을 보태면서 텃밭은 나날이 풍성해져 갔다. 권경자 씨는 “올가을엔 학교 텃밭에서 나온 배추로 김장할 계획”이라며 웃음 지었다.
변화 셋, “학부모에게 불가능은 없다”
송천초등 재학생들은 모두가 형·오빠·언니로 사이좋게 지냈지만 정작 학부모들끼리는 서먹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학부모회는 올 5월부터 가족 산행, 뒤뜰 야영 등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했다. 노란애기똥풀과 아카시아 꽃잎이 흩날리는 학교 뒷산에 오르며 학부모들은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었다. 류종길 씨(46세·경북 안동시 법상동)는 지난 7월 야영을 통해 다른 아버지, 선생님들과 부쩍 친해졌다. “안동 지역은 보수적인 데다 조손가정(조부모와 손자·녀로 구성된 가정)도 많아 학교 일에 참여하는 아버지가 적은 편이에요. 저도 솔직히 아이 엄마가 하도 나오라고 해 억지로 나갔는데, 학교 남자 선생님과 술도 한 잔씩 걸치면서 슬슬 학교 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4학년 교실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도서관 역시 학부모회의 최대 과제였다.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부모회원들은 지역 교육지원청과 교육위원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작은 학교에 예산을 쏟아부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선생님들과 이 문제를 골똘히 고민하던 학부모회는 네이버문화재단의 이동도서관 ‘책 읽는 버스’에 사연을 보내 채택됐다. 새로운 책, 재밌는 DVD를 본 아이들은 환호했다. 이향숙 씨(41세·경북 안동시 용상동)는 “단 하루 체험에 불과했지만 학부모들이 힘을 모으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학부모회원들은 교내 도서관 설치 문제를 주제로 교육지원청 교육장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김경미 씨는 “결코 나 혼자였다면 이 모든 일을 결코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나 학부모, 둘 중 하나가 먼저 바뀌면 아이들이 행복해집니다. 환경 탓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