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hua 안에서 신ᆞ구약은 서로 충돌되지 않습니다. 회개는 "위기탈출 No 1"이고, 그 결정체는 산상수훈의 "애통"입니다)
I. 회개는 명사가 아닌 '동사(動詞)'이다
구약성경에는 '회개'를 뜻하는 명사로 된 전문용어는 없고, '방향을 바꾸다, 되돌아가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슈브 또는 나함(욘 3:10)'이 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이는 신약성경의 헬라어 '미래형 동사인 메타노에오 Μετανοεω'와 같습니다). 이 슈브(회개)는 본래 '일상적인 삶을 전제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이러한 뜻을 가진 동사를 활용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구약성경에서 빈번하게 사용된 동사 '슈브'는 'turn away from all sins의 죄로부터 떠남'과 'turn to God의 하나님에게로 향함'을 기본적 의미로 갖습니다. 이를 분설하면, '~로부터 등을 돌림(turn away from)의 대상'은 '악한 행실' '우상(우상숭배)' '모든 가증한 것들' '지금까지의 악한 행실'로 이는 "죄 또는 죄의 세력"이라고 압축할 수 있고, 다음 '~목표에로 향함 내지는 도달(turn to)의 대상'은 '하나님 여호와' '예슈아' '진리(에메트)의 말씀' '계명의 말씀'이 됩니다.
위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수렴적으로 회개를 정의하면, "죄와 불법에서 등을 돌려(turn away from all sins)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말씀 쪽으로 향함(turn to God)"이고, 경건의 능력과 실천적인 면에서는 "이전의 생활양식ᆞ삶이 베어지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자기의 머리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 되며, 그렇다면 '온전한 회개(성경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까지의 전체를 한 과정-회개-로 인식함)'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인 예슈아를 닮아가는 미래형'을 그 속성으로 가집니다. 생생한 삶의 현장성을 가집니다.
회개의 주제가 신앙(신앙은 '영혼의 활동'을 핵심으로 함)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은 주전 9세기 이후 '선지자 시대(엘리야후~말라키)'이고, 회개는 '선지자의 사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고스란히 신약교회와 성도들의 '역사'가 되며, '역사적 가르침'이 됩니다.
아래에서는 위 개념적 틀거리를 기초로 시대별로 계시된 회개의 메시지를 검토합니다(이는 '슈브'를 탐색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II. 이스라엘은 통전적으로 '제의(祭儀)'에 회개를 담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의 마음(soul)을 표시하는 제의(祭儀: 제사와 의식, 이는 '다양한 양식'을 갖는다)를 거행하여 여호와께 용서를 구했고, 이는 구약의 전시대적 특성이고, Mashiah 안에서 실제의 예표적인 가르침이 됩니다.
레위기의 '제사의식 중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는 것'을 거행하거나, '금식'을 하거나(레 16:29, 삿 20:26), '옷을 찢거나' '굵은 베옷'을 걸치거나(사 22:12; 욘 3:5~8), '재 위에 눕거나'(사 58:5), 목놓아 우는 '통곡'을 하는 것(삿 2:4; 욜 1:13; 2:17)은 "자신을 예슈아의 피, 말씀의 물, 성령의 생수로 씻는 회개의 마음이 담긴 祭儀"였습니다.
이는 포로기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음을 느헤미야 9:1~3절 말씀이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7.24.을 '회개의 날'로 정하고, 이 날에 1일 금식을 하였고, 굵은 베옷을 입고 낮에 성전 뜰에 모였으며, 레위인들은 3시간 동안 계속 율법책을 낭독하고, 주석하며, 자신들과 조상들의 죄와 허물을 비추었고, 온 이스라엘은 3시간 동안 계속 자신들과 조상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대성회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회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공동체적' 속성을 가짐입니다. 이스라엘은 '용서와 사랑의 공동체'로 설계되었고, 이는 40일간 회개를 촉구했던 양각나팔소리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력 6.1.부터 7.10.대속죄일까지 40일 동안 매일같이 들려지는 양각나팔소리(회개를 촉구하는 소리)를 따라 6월 한달(30일)은 자신이 지은 죄, 공동체 내 타인(지체)가 지은 죄를 회개하고[이스라엘은 다른 사람(들)의 죄 까지도 "공동체적 자기들의 죄(=우리 죄)로 회개"하였습니다. 공동체 내 다른 지체를 위한 회개를 할 때에는 오른 손으로 가슴을 비통하게 두드리며 '아샴누(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7.1.~ 10.까지의 10일은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III. 포로기 이전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된 회개는 '관계(關係)의 회복(온전한 회개)'이었다
1. 먼저 '불성실'한 祭儀的 회개를 '批判'하였다(호 6:4, 6)
주님은 호세아를 통해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음과(호 6:4, 6) 같이 '불성실한, 사실상 거짓의 제의적 회개(悔改)를 하였음'을 질타합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 헤세드 Hessed: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변함없이, 꾸준하게, 성실하게 베푸는 친절과 그 총합으로써 사랑, 아가페적 사랑을 뜻합니다)'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마음의 중심을 살피고, 근원/씨/말/고백부터 결과/행실/삶/실제의 열매까지 전부를 하나로, 하나의 과정으로 보시고 평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제의적 회개는 마음의 중심과 성품에서 우러나온 것도 아니었고, 잠깐 있다 사라지는 아침구름이나 이슬 같아서 지속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이며, 이는 일의 종말의 관점에서 평가할 때 '불성실한 회개'요 '거짓회개'였습니다. '회개(悔改)에 합당한 열매가 없었다'는 지적입니다(마 3장).
그들의 심보는 회개의식을 통하여 '자신들이 여호와께로 되돌아가는 것'의 경계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기들의 회개의식을 통해 '야훼께서 자기들 쪽으로 돌아오시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회개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애(Hessed)와 하나님을 알아감(Knowing God)의 핵심"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이사야 58장 6~7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회개(=금식)란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의식적인 행위보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일)을 직접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선지자 스가랴도 포로기 이후 공동체가 포로기 때부터 습관처럼 지켜왔던 회개(悔改)의 날을 비판하였습니다.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 때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슥 7:5-6)"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은 이러한 습관적(習慣的)인 회개의식 대신 '사회정의(社會正義)를 실천할 것'을 요구합니다.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너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슥 7:9~10)"
마지막으로 요엘도 '마음을 찢는 철저한 회개'가 결여된 '옷을 찢는 外形的인 회개(외식주의 外飾主義)를 비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엘 2:12절에서 성경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전히 '회개의식'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의식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내면의 심보와 성품, 자세를 꼬집는 것으로 백성들의 회개가 '단순히 지나간 죄를 고백하고 후회하는 차원에서 머무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결여 되어 있습니다. 회개는 죄를 뉘우침, 처벌을 피하기 위한 간구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죄의 세력에서 떠남"이고, 그 떠남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뜻)으로 향함(이를 위해서는 죄와 피흘려 싸워야 됨과 말씀을 Shema로 들음과 믿음은 필수적이고 계속되어야 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야훼)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
선지자들의 선포에 나타난 회개는 죄의 고백과 뉘우침인 동시에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향하여 "똑바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삶의 차원"까지 포함하였습니다.
2. "본래의 인격적 관계로 되돌아가 이를 유지함"의 온전한 회개를 제시한다
하나님의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서 선지자들로 선포케 한 회개(온전한 회개)는 한마디로 '하나님께로 돌이킴'이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본래의 인격적ᆞ이상적 관계로 되돌아가 이를 유지함'입니다. 이러한 인격적ᆞ이상적 관계를 호세아는 '부부관계'로(호 2:7), 이사야는 '부자관계'로 선포합니다(사 1:2). 이러한 '본래의 인격적ᆞ이상적 관계로 돌아가 이를 유지하는 삶'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사랑을 매개체로 한 운동력있는 믿음(갈5:6), 참 믿음 곧 행함이 있는 믿음이고, 그렇다면 '본래적 인격적인 부부 또는 부자관계의 파괴'는 곧 '야훼로부터의 떠남'이고, '믿지 않음'이며, '죄(하마르티아)'입니다.
'본래의 인격적 관계로의 돌아가 이를 유지함'으로서 온전한 회개의 내용(內容)을 더 세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하는 것(=순종이고, 이는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본래의 인격적 관계로의 돌아가 이를 유지함'이란 전존재(全存在)가 야훼께로, 성경말씀을 근간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는 야훼께로 꾸준히 향하는 상태나 그 총체(總體)로서 이는 전심으로(마음/성품/뜻/힘을 다하여) 그 분의 뜻을 나의 삶에 옮겨심는 순종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實踐)하는 것'이며, '본래의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는 삶'이고, 압축하건데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약 2장에 의하면, 믿음과 순종은 보완관계가 아닌 "대체관계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고, 믿음과 순종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경륜을 살피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는 고도의 지성적인 과정과 인식"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된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하였음)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각인들이 히브리인으로서 종이 된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언해줌)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사노비해방을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서 계약까지 맺으며 확실히 실천하였거늘)
너희가 돌이켜(그들의 회개는 얼마가지 못했다.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던 바벨론 군대가 애굽군대의 출병으로 전선을 이동하자 그들은 변심을 하였다)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렘 34:15~16)"
2)야훼 이외의 도움을 적절히 거부(拒否)함입니다(호 14:1~3).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에게 온전한 회개는 "하나님 이외의 외교적 동맹이나 원조 같은 모든 인간적인 도움과 이방신들과 우상들의 도움을 철저히 또는 적절히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the LORD thy God)께로 돌아오라(슈브)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슈브)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3)주의 뜻에 반하는 악한 길로부터 떠남입니다. 온전한 회개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요구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모든 것과 일체의 악으로부터 떠나는 삶을 요구합니다. 이는 특히 "예레미야 시대에 강조된 메시지"입니다.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슈브)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렘 26:3)"
4)온전한 회개에는 '의지(자유의지의 선택과 책임)'가 필요합니다(사 30:15~17).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회개메시지는 그들이 "돌이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심판 뿐이었다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
그들에게는 죄로 인한 심판을 체험한 이후 혹은 심판 중에 회개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사람의 자유의지의 선택과 책임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회개의 '감독권'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있고, 또 '우리 영혼의 감독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할 때만이 그 회개가 온전하고 유효함에 주의해야 합니다(벧전 2:21, 예레미야 애가 5:21). 하나님의 감독 아래 은혜에 의한 회개만이 온전하고, 유효합니다. 사람의 회개의 능력의 불완전성을 극복해주는 것은 하나님의 감독과 은혜와 예슈아의 피(덮어주심과 흘려보내주심) 뿐입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 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예레미야는 새로운 관계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회개인데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사람이 하지만 회개하도록 제반 또는 결정적인 여건을 조성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음입니다. 구원의 전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늘, 항상, 매번 '결정적'이고, 또 그럴때 '온전함'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가르치심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 인간 스스로의 회개가능성을 100% 부정(0.001%의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는) 견해는 사람들의 경영을 그들의 '자유인격의 결정(자율과 책임)'에 맡기는 하나님의 '허용적 뜻'과 어울리지 않고, 더 큰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따질 수 있는, 진실로 정의로운 재판장을 곤란하게 하는 근거를 갖게 되는 논리모순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3. 분열왕국의 '멸망(滅亡)'이 주는 가르침
끝없이 타락하고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가 단절되면 사람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에서도 온전한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스라엘의 분열왕국시대를 관통했던 보편문화는 '인본주의'였고, 그 꽃봉오리는 '바벨론주의(우상숭배)'였으니 그 열매는 뻔한 것이었습니다. 남북왕국의 거듭된 신앙적, 정치적, 사회적인 타락과 분열은 자신들을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왕으로서 지켜주시는 여호와의 '언약적 관계를 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 아래에 있는 역사는 북왕국 이스라엘은 먼저 BC 7세기에 앗시리아 제국(오늘날 시리아의 선조들)에 의하여, 그리고 남왕국 유다는 BC 6세기에 바벨론 제국(오늘날 이라크의 선조들)에 의하여 멸망하였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도나이께서는 이스라엘 역사에 하나님의 "징계의 심판"을 기록하심으로써 훗날의 유다인들, 우리에게까지 회개하라는 계명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거듭 거부하고 끝내 회개하지 않는 자는 멸망할 것에 대한 분명한 예표(예시, 모형, 그림자)를 보여주셨습니다.
IV.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 회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1)회개의 '개인화(個人化)'와 사람의 회개의 '가능성'이 강조됩니다. 포로기에 와서 선지자의 회개 촉구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하기 보다는 '각각의 개인을 향하여 선포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에스겔은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음으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리다(겔 18:2)"는 이스라엘의 속담에 제동을 겁니다. 세대간 미래가 과거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현재에 의해 결정됨의 각 '개인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19~20)"
이러한 맥락에서 에스겔을 통해 계시된 회개는 '개인적 회개'입니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슈브)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다(겔 18:21; 18:27; 33:9, 11, 12, 14 등)"
에스겔은 더 나아가 '사람의 회개의 가능성'을 강조합니다.
"주 야웨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슈브)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슈브)'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주 야웨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슈브)' 살지니라(겔 18:30~32)".
그러나 여전히 회개와 새로운 삶의 "감독권과 제반 또는 결정적인 여건조성의 은혜 부어주심은 하나님께 있음"은 당연합니다.
2)회개는 '구체적인 행동의 실천'이었습니다. 포로기 이후 공동체에서 회개는 하나의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말라기서의 경우 회개는 원래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와 헌물을 원 주인에게 되돌리는 구체적인 행위로 묘사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때)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슈브)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슈브) 하는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 3:7~8)"
여기에서 회개, 곧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정확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V. 맺는 말(회개는 위기탈출 No. 1이다)
1)구약성경에서 회개라는 개념은 '방향을 바꾸다, 되돌아가다'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동사 슈브 또는 나함을 빌어서 사용하였고, 구약성경은 '온전한 회개'의 개념을 완성하여 내 놓았고, 이는 신약성경 포함 전성경을 관통합니다.
선지자시대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의를 통한 형식적인 회개에 머무는 것을 질타합니다. 그들에 따르면 회개는 "죄의 고백인 동시에 바른 삶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회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하는 것,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 이외의 도움을 철저히 또는 적절히 거부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反하는 모든 악으로부터 떠나는 삶"을 뜻합니다.
또한 선지자들은 "회개의 감독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였고, 하나님의 은혜적 회개의 강조점을 잃지 않았습니다.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에 와서 회개의 "개인성"이 강조되고, 회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체적인 행위를 실천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구약성서가 말하는 회개는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행실과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2)온전한 회개(슈브)는 말씀이 들려져서 나의 옛 사람이 죄 자체임을 발견하고(철저히 깨닫고), 그것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는 체험이 있습니다.
온전한 회개(슈브)는 "자기의 죄와 불법에 대해 숨이 막힐 정도의 고통과 절규가 있고, 죄(죄의 세력)에서 등을 돌려 하나님의 영을 따라감이 있으며,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호흡하고, 내 마음과 성품이 변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이는 바울의 롬 7:24절의 탄식과 애통함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O wretched man that I am! who shall deliver me from the body of this death?)"
나의 의식이 변화되는 '온전한 회개(슈브)가 선행'되어야 나의 옛 사람이 파쇄되고 소제된 상태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호흡하는 성전이 됩니다.
무엇(?)을 잘못했다고 일일이 고백하며 기도하는 것만을 아직도 회개(슈브)라고 여긴다면, 아직 회개와 믿음의 상호관계성의 함의를 깨닫지 못한다면, 또 회심과 회개로 단순히 도구개념화하고 설명을 모자이크처리하는 신학과 교리를 버리지 않는다면, 이는 영적으로 정기 또는 특별검진을 필요로 합니다.
3)온전한 회개의 결정체는 "십자가"입니다. (순종, 믿음 등 신앙의 결정체는 십자가의 도가 마음과 행실과 삶 속에서 기둥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in Christ Jesus our Lord)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by your rejoicing) 단언하노니(protest) 나는 날마다 죽노라(I die daily). 고전 15:3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I am crucified with Christ)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Christ liveth in me)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겨자씨와 생명으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갈 2:20"
[위 메시지는 다음 카페 '휘오데시아(카페지기명 광야)'에서 발췌(제목: 구약성서에 나타난 회개)하였고, 이를 rewriting한 것임]
첫댓글 망설이다가 이 카페에 도움이 될까 해서 올려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