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저씨' 찍었던(2010) 김 새론 양의 비보가 내게 충격인 이유가 뭘까. 누구나 생로병사를 거치지만 이제 겨우 26세 소녀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무게에 대하여 아비인 나는 무엇을 했는가? 피워보지도 못한 채 꺾여 버린 장미꽃이 애잔해서 봉 창의 찬바람을 맞으며 꺼이꺼이 울었어요. 빈소를 찾은 원빈의 뒷모습에 만감이 교차하는 건 동병상련일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예주에게 기사를 가리고 싶습니다. '아저씨'를 개봉 때 보고 15년 만에 다시 보기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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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주에게 고독의 시간을 넘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전당포 주인 원빈이 한때 잘나가는 특수 요원으로 설정됩니다. 임신한 아내가 화물차에 치여 죽는 현장을 목격한 뒤 요원을 그만둡니다. 전당포로 생계를 살아가는 차태식(원빈)의 얼굴은 딱 봐도 '고독 남'이라고 씌어 있었어요.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음침하기로 소문난 그는 기피 대상이었고 이런 그에게 다가오는 건 전당포에 물건 맡기러 오는 손님들과 바로 옆집에 사는 꼬마 소녀 정소미(김새론)가 유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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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에서 소미와 말을 맞추기 위해 발로 밥그릇을 미는 장면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소미는 '레옹'에 나오는 마틸다(나탈리 포트만)보다 더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아요. 연기 천재입니다. 소미의 엄마 박효정은 말로만 딸아이를 건들지 마라며 보호할 뿐 사실은 마약에 찌들려 아이를 방치하고 있었어요.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소미는 혼자 다니는 태식도 자신처럼 버림받았다고 여겼고 태식 또한 이런 소미가 싫지 만은 않았는지 같이 밥까지 먹을 만큼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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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휴전 없는 끝없는 전쟁(콩밥)이다(쇼펜하우어)" 나이가 먹어가면서 음식도 코다리 찜이나 수제비, 우렁이 쌈밥, 낙지 요리 등등 담백한 것을 찾는 것 같아요. 소싯적에는 돼지 국밥을 최고의 음식으로 먹었고 언제부턴가 꽃등심-민어회-육 사시미를 좋아하고 있더이다. 요새는 주 1회 이상 소 곱쟁이 당기는 것 같아요. 내장탕은 소의 내장(천엽-곱창)을 주 재료로 한 레시피인데 고춧가루를 넣어 빨갛게 나오는 양평 해장국과 화이트로 나오는 이남장 내장탕 두 종류를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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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양념이 많이 들어간 '양평 해장국'보다 담백한 '이남장' 내장탕이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디우와 하이데거의 '존재론'처럼 주체-존재-진리가 왔다 갔다 할 만큼 가까운데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고, 바디우의 존재론(이과-뺄셈)과 하이데거의 존재론(문과-뎃셈)은 양평 vs 이남장의 차이가 난다는 것 아닙니까?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 '비움'이며 '자기부정'이야말로 크리스천의 숙원사업입니다. 바디우의 뺄셈 '존재론' 역시 담백한 내장탕 철학의 진수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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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란 곧 존재다' 살다가 '공백'(사건)을 만나거든 존재의 공백을 바로 봉합하려고 애쓰지 말고 사건을 처절하게 파악-해석해서 새 창조로 나아가라. 이때 기 '존재'는 유한성의 구조에 얽매에 있는 상태로, 주체가 '무한성'의 구조로 뚫고 나가려고 하지 않으면(공백을 봉합하면) 의미가 없고, 사건과 부닥쳤을 때 기 '존재'에 저항하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진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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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사건의 발단은 효정이 태식(원빈)의 전당포에 맡긴 카메라. 사실 그 카메라에는 훔친 마약이 들어있었는데 마약의 주인은 단순 깡패가 아닌 마약 유통과 장기 밀매까지 서슴지 않는 거대 범죄 조직의 일원입니다. 마약이 없어진 걸 안 조직에게 들통난 효정은 들이닥친 조직원 종석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당한 뒤 소미와 함께 납치당합니다. 소미의 엄마가 조직의 마약을 훔친 것이 죽음의 타깃이 된 것입니다. 악을 감당할 자격(두뇌-배짱)이 없는 사람이 욕망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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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태식은 모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종석과 그의 형 만석이 파 놓은 함정에 걸려 마약 사건에 연루됐고 그 때문에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됩니다. 태식은 왜 소미에게 연연한 것일까?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은 태아와 동일시 한 걸까? 쇼펜하우어는 '동정심'이나 '휴머니즘'을 이성에 반한다고 보았어요. 만약 쇼펜하우어가 감독이었다면 운명에 목숨을 걸도록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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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째 마약 사범 오명 귀를 쫓던 마약만 형사 김치곤은 난데없이 사건에 끼어든 것도 모자라 5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경찰 6명을 때려눕히고 오명규의 파일을 훔쳐 달아나는 태식을 보면서 그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했고 단번에 그가 소미를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태식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형제의 흔적을 쫓던 도중 그들의 아지트에 발을 들이면서 스펙터클한 느와의 액션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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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허구를 끼얹은 영화라고 해도 권총을 구해달라는 태식의 부탁에, 이제는 근근이 고물 장소일만 하는 동료가 한국에서 글록 권총에 실탄이 꽉 찬 여분의 탄창들을 다음 날 바로 구해주는 걸 보면 현역일 개연성이 높습니다. 부상을 치료하자마자 마약조직의 근거지를 추적하기 시작한 차태식은 마침내 폐업한 가구 판매점으로 위장한 마약 제조공장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태식은 그곳을 관리하고 있던 종석을 붙잡아 고문한 뒤 프로판가스의 폭발을 유도해서 공장을 날려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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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종석을 폭사시켜버리는 것은 물론, 그곳에서 마약 제조를 강요받는 동안 장시간에 걸쳐 노출된 독성물질에 중독되면 장기를 적출당하는 운명에 놓인 아이들도 구출하여 김치곤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만석과 그의 부하 조직원들이 진을 치고 있는 터키탕으로 찾아가 1대 다수라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강제 돌파하고 소미의 안구를 눈앞에서 박살 내버린 람로완을 맞아 나이프 파이팅을 펼쳐 목숨을 빼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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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주차장에서 도주하려는 만석의 차량 타이어들에 여러 번의 총격을 가해 도주를 저지한 뒤, 선루프 위에서 만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만 방탄유리입니다. 겁에 질려 전화로 경찰을 불렀다가 자신의 차량 유리가 방탄이라는 것을 알고는 기고만장하는 만석이었지만, 이에 태식은 자동차 앞 방탄유리의 한 지점을 지속적으로 쏴서 구멍을 낸 뒤, 뒷좌석으로 달아나려는 만석의 어깨에 총탄을 박아 도주를 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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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대사인 '아직 한 발 남았다.'를 날린 뒤 겁에 질려 절규하는 만석을 헤드샷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소미가 죽었다고 생각한 차태식은 삶의 의욕을 잃고 권총을 스스로 머리에 겨눠 자살하려 합니다. 그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소미가 나타나고, 둘은 감동의 재회를 합니다. 모든 사건이 끝난 뒤, 경찰에 체포된 태식은 소미와 같이 경찰에 이송되던 중 김 형사에게 부탁하여 이전에 알았던 문구점에 들러 소미에게 책가방 등 학용품을 사주며, 말장난을 나눕니다.
"혼자 서는 거야.. 할 수 있지? 한 번만… 한 번만 안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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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매드 소울 차일드)
아무 말도 없이 흔적조차 없이 넌 또 가네
아무런 관심없이 넌 웃어주기만 하네
저기 나홀로, 난 또 아주 멀리
나 돌이킬 수도 없을 만큼
Oh, you can't tell me why
Oh no, please don't tell me why
나 잊을수가 없었던
따뜻한 그 눈빛속의 너
잔인한 눈빛도 따뜻한 두손위에 잠드네
내 모든 나쁜 말도 너의 작은 입술로
날 지우려고 해
저기 나홀로, 난 또 아주 멀리
나 돌이킬 수도 없을 만큼
Oh, you can't tell me why
Oh no, please don't tell me why
나 잊을 수가 없었던 따뜻한 그 눈빛 속의 너
oh, you can't tell me why
oh no, please don't tell me why
나 지울 수가 없었던
마지막 내 기억 속에 너
2025.2. 19.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