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21(Brain Korea 21)의 계절이 돌아왔다. 사업 신청을 준비하는 학과의 소속 교수들은 계획서 작성에 매달려 다른 업무를 뒤로한 채 신청서 작성에 여념이 없다. 개인적으로 대학에서의 첫 발걸음을 BK 연구교수로 시작했고 전임이 된 후 매번 이 사업 신청에 관여해온 터라 7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이맘때면 늘 남다른 감회가 들곤 한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육성과 우수 연구인력 양성을 위해 석박사 대학원생과 신진연구인력에 대한 집중적 지원을 목표로 한 BK21 사업의 발자취와 성과 그리고 이 사업의 명암을 둘러싼 논란을 이 자리에서 상세히 다루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름대로 이 사업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입장에서 그리고 인문학자와 외국어문학 전공자로서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짧게나마 이 사업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융합 형태에 대한 트랙이 따로 신설되어 있지만, 현행 제도는 특정 대학의 특정 학과 중심으로 지원이 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학문 후속세대 양성’이라는 BK21 사업의 취지를 생각해본다면, 인재 양성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 소속 대학원 프로그램의 전반적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의 지원은 이치에 맞다. 그러나 현재 국내 모든 인문학 대학원의 학생 수급 현황과 규모를 생각해보면 과연 이러한 개별 학과 중심의 예산 집행이 얼마나 효율적일지 그리고 얼마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먼저 필자는 지도교수와 지도 학생을 일대일로 매칭하는 형식의 트랙 신설을 제안하고 싶다. 인문학의 특성상 독선생(獨先生)을 통한 지도 방식은 나름의 효율성을 가진다고 생각된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 중 하나가 준비 단계부터 신청과 운영에 있어 어떻게 학과 소속 교수들의 협력과 참여를 높이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교수-학생으로 단순화된 신청과 지원을 할 수 있다면 학생 교육과 취업에 이르기까지 보다 밀도 높은 지도관리와 교수들의 자발적 참여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와 유사한 박사과정생에 대한 ‘글로벌 펠로우’ 같은 지원 제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BK 21의 근본적 취지가 대학원 졸업생의 전반적인 취업률 제고가 아닌 ‘소수 정예’의 연구자 육성에 있는 것이라면, 다소 방만한 학과 단위 지원과 병행하여 독선생 형태를 취하는 소단위 지원사업을 신설하는 것을 제안한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한 소단위 지원사업과는 별도로 인재 양성을 위해 학문 발전의 근간이 되는 개별 대학원 프로그램의 전반적 역량 강화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수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대학원생 모집과 교원 수급에 있어 국내 인문학 대학원 프로그램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고려하면, 과연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 지원이 이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여기에 대한 필자 나름의 제안은 지역별, 권역별로 여러 대학이 연합하는(예를 들면, 서울 동부권, 강원 영서권) 공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BK21 사업 유형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동 프로그램 개발이 대학의 독단적 구조조정과 교원 수 감축이라는 경영 논리에 좋은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이 해당 외국어권 국가에서 박사 학위를 받지 않고는 사실상 취업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외면하는 한, 국내 외국어문학 대학원 역량의 최대치는 인재 수출 전진 기지 이상일 수 없다. 적어도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 사업을 통해 재정 지원을 받으려면, 해당 분야 연구자 교육자 모두 그 출발점에서부터 솔직한 자기 진단이 필요하다.
윤성호(61회) 동문은
서울대학교 영문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영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영어영문학회 학술상(2011), 한국 예이츠학회 학술상(2019)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언더독의 글쓰기: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지형도』,『Transgressive Spatial Imagination in American Novel』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