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정신, 그러나 잘 쓴 시면 좋은 시인가
강인한
올해의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은 이장욱의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사)으로 결정되었다. 잘 쓴 시들이 많은 시집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시를 쓴 시인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 문득 의심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과연 시인은 문학의 최전선을 가는 아방가르드에 투철하며 거기에 충분한 문학적 가치를 느끼면서, 피폐하고 몰락한 정신의 폐허를 노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것이다.
평소 나는 스스로를 대단한 도덕군자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요즘 터져 나오는 망나니 같은 젊은 시인들의 차마 필설로 옮기기 거북한 범죄 행위를 접하면서 이건 시인으로서의 허용될 만한 일탈의 범주를 넘는다고 내심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정도는 로맨틱한 것이라고 이장욱의 시 '비밀'은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비록 허구화하고 간접화법으로 표현의 전달 의미를 누그러뜨리기는 하였으나 또한 아이러니를 위한 위악적 표현이라고 양보한다 쳐도 "나는 어머니와 씹한 적도 있다."라는 문장이 든 시가 좋은 시인가? 그리고 이런 시가 수록된 시집이 정말 상을 줄 만큼 매우 훌륭한 시집인가? 심사위원들이 시를 제대로 샅샅이 훑어보고 이런 수상 결정을 내린 거라고 나는 차마 믿지 못하겠다. 이장욱 시인은 평소에 상을 받을 만큼 시를 잘 쓰니까, 그가 올해에 펴낸 시집이니까, 상을 주어서 나쁠 게 없다고 합의한 거라고 추측하고 싶다. 아니 시집을 보고 상을 준다기보다 시집과 상관 없이 시인에게 상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밥 한 그릇 속에 든 한 개의 '머리카락'을 보고 밥을 먹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 경우도 그렇게 치부하기엔 보편적 상식이나 일상적 윤리의식이 너그럽게 허용하지 않는다. 시 한 편 속에서 저 하나의 문장은 치명적인 '독'이다. 밥그릇 속의 머리카락이 아닌 이건 한 컵의 물 속에 한 방울의 독이 들어있는 예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비밀'이라는 시는 타기해 마땅한 시이며, 나아가 이런 시를 수록한 시집 전체의 가치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고 본다. '한국시의 미학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의미'라고 분식해 마땅할지 반추하고 또 반추해 볼 뿐이다. (*)
비밀
이장욱
이봐, 비밀을 말해줄까? 나는 사실 남색이야 외계인이고 그리스도고 내장이 없지 솔직히 말해서
태어난 적도 없다.
나는 신용카드의 비밀번호를 알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전자회로에 카드회사에 결국 달의 뒷면에
그러니까,
오늘은 너에게만 말하기로 한다 차가운 진실을.
① 나는 매일 규칙적으로 배가 고프다.
② 나는 어머니와 씹한 적도 있다.
이 두 문장의 차이를 일생 동안 말해보시오.
또는
① 너의 성기와 나의 성기는 전혀 다른 구조이다.
② 우리의 죽음은 동일하게 시작되었다.
이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사실은,
신이 우리를 다 사랑해버린 건 아닌가?
무언가 우리를 지불해버리지 않았는가?
비밀이 스르르 사라지는 밤, 달빛이
나를 발견하였다. 나는 사실 남자가 아니고 한국인이 아니고 종암동 성모병원에서 태어났지.
나는 침묵을 했는데 그것은 침묵이 아니고 비밀이 아니고 사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시집『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2016, 문학과지성사)
〈출판사의 책소개〉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인 이장욱의 네번째 시집.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뒤 이장욱은 줄곧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은 세계의 접힌 부분들을 펼쳐 읽으며 단정한 문장으로 낱낱의 세계를 건져 올리는 일을 계속해왔다. 20년이 넘도록 서서히 변화하고 성장하면서도 세계라는 "수수께끼들 앞에서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첫 번째 출간한 시집에서의 '현실과 꿈의 경계 지점에 놓여 있는 시들'은, 4년 뒤 두 번째 시집에서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과 "현재와 과거가 혼재된 시간"으로 확장된다. 소설과 시를 가리지 않는 특징이라 이장욱표(標)라고 이름 붙여볼까 싶은 "조금 낯선 무엇, 약간 비스듬히 어긋나 있는" 정서는 사실 처음부터 해독해낼 작정을 하고 읽으려 든다면 오히려 그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다.
지난 세 번째 시집 추천사에서 동료 시인이자 연구자인 진은영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시에 대해서는 덧붙일 것이 없으니까. 어떤 좋은 그림들은 그것을 끼워넣을 모든 액자를 조잡하게 느껴지게 할 만큼이나 좋다." 그리고(그래서), 네 번째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에는 해설이 없다.
"일관된 생애" 속에서 문득 출몰했다 서서히 사라지는 것들, "어렴풋이 보이는 것들과 어렴풋이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맴도는 존재들, 그리고 이미 말해진 것, 맹세한 것, 확신하는 것이 아닌 모호함 속에서야 가능해지는 이장욱 특유의 세계가 담긴 5부 61편의 시들을 온전히 대면하게 하기 위해서다.
<대산문학상 시 심사평>
시부문 본심에 올라온 9권의 시집은 현재 한국시의 성취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선정된 후보작들에 대한 전반적인 독후감을 공유한 뒤에 첫 번째 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 김민정의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이장욱의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사), 장철문 『비유의 바깥』 (문학동네) , 조용미의 『나의 다른 이름』 (민음사) 시집이 다수의 추천을 받았다. 이 네 권의 시집은 시적인 완성도와 창조성의 수준에서 상대적으로 훌륭하다고 심사위원들은 평가했다.
2차 심사에는 이 4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장철문 조용미 시집이 가진 서정적 깊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장철문의 시집은 서정시의 감수성과 세계관 안에서 시적인 번뜩임과 감동을 보여주었으며, 그 이전의 시집에 비해서도 진전된 성취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조용미의 시집은 미학적인 것에 대한 특유의 진지함이 한결같은 시적 태도 속에서 계속적으로 견지 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김민정의 시집은 시에 대한 엄숙주의와 폐쇄성을 뒤집는 거침없는 언술과 언어적인 놀이가 여성 언어의 새로운 해방적인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장욱의 시집은 의미와 언술의 확정성을 뒤집는 고도의 절제된 실험과 예측불가능한 문장의 이행을 실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투표를 통해 남게 된 김민정과 이장욱의 시집에 대한 집중적인 토론이 다시 진행되었다. 기존의 서정시의 기율과 문법에 깊이와 밀도를 부여한 작업도 중요하지만, 한국시의 미학적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노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최종적인 수상작으로 이장욱의 시집을 결정하게 된 것은, 이 시집이 보여주는 내밀한 아이러니와 중성적인 시 쓰기의 비결정적인 지대가, 시의 의미를 독자에게 돌려주면서 한국시를 미지의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승희 신대철 이광호 최동호 최승호
첫댓글 미친 것들이네
애들 읽고 정서에 안 좋을까 걱정이네요
이런 시들이 상 받으면 자라나는 아이들 가치관이 어찌 될런지 걱정입니다
말초 신경을 자극 시키며 문법만 맞고 유명 시인이 쓴 거면 다 좋은 건지 ... ㅜㅜ
잘 읽어보았습니다.
우찌 시집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문장을 비본질적 낯설기로 한것인지, 아님 정말 미지의 그 무엇, ( 참, 문학과지성사는 문학과지성사입니다)
(전 시인지 어느 미친사람의 횡설인지 이해가 안가죠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시창작교실에 공부하고 있지만)
시에서 정서를 느낄 수 있거나, 시에서 역사의 의미를 볼 수 있음이 좋은데...
연정님 그쵸
일반인들이 읽었을때 그래도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하고 공감이 되고 뭔가 읽고나면 기분이 좋아야 되고 메세지가 있어야 되는데 저런글을 상을 주고 시집으로 버젖이 내놓고 으유 ..심사평 하신 분들도 반성하셔야 할 듯 합니다
눈을 씻고 오고 싶네요 ..
"이상"시인의 연구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많이
받았다던디요 ㅡ(시강교수님 말씀)
혹시나 아나요
반세기가 지나서 위의 시도 호평을 받고
연구 논문이 많을지. . .알 수가 없는일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결코 훌륭한 문학이 될 수 없으며, 연극으로 상연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군요.
게다가, 어린이들에게 적극 추천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잘 들여다 보면 많은 부분이 근친끼리 씹하는 이야기입니다. 참, 큰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