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국립묘지 신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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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란 시를 카톡에 올리고 늦게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하늘은 맑지는 않지만 포근한 봄날이다. 64년 전 독재와 불의에 목숨을 던져 항거한 젊은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곳 수유리에 있는 4.19 국립묘지에 갔다.
서울에서 4.19혁명이 일어나던 해 나는 지방 소도시의 고등학생이었다. 이곳에 와서 그 당시 3.15부정선거 항의 시위 학생들의 열정을 되새기고 민주혁명기념탑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기념행사가 끝난 오후라 행사준비를 위한 시설을 철거하는 소리만 들리고 한적하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 만 명 학생 대열은 위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재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 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노산 이은상의 기념탑문이다.
묵념을 마치고 바로 뒤에 자유 대한민국의 승리였고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정의을 외첬던 185위의 묘지 하나 하나 다 둘러보았다. 김주열 이기택등 이름이 있던 분도 있었지만 대학동문 선배들의 묘석도 많았다.
묘석 뒷면에 ‘의에 죽고 참에 산다“는 교훈을 보니 반갑고 가족 이름과 어디에서 돌아가셨는지를 적어놓았다. 다른 묘석에도 돌아가실 당시의 장소가 적혀 있다. 치안본부 앞에서, 부둣가에서, 교문 앞에서, 광화문에서 경찰과 맞서 항쟁했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울컹했다.
유영봉안당에 들러 영정 사진들을 봤다. 왼쪽 상단에 앳된 고등학생들의 사진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나는 방명록에 “정의를 위해서 생명을 던진 영령들 덕분에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정의는 살아있습니다.”고 썼다.
이곳 수유리는 4.19 민주 영령들이 잠든 곳이다. 두 시간에 걸처 묘역을 둘러보고 공원 호숫가 벤치에 않아 바라보니 도봉산의 만장봉이 우뚝 솟은 봉오리가 보인다. 날씨는 바람 한 점 없고 포근하나 하늘은 미세먼지로 뿌옇다.
서울 둘레길 북한산 구간 2번 순례길을 걷다보면 4.19 국립묘지 전경을 내려다 볼수 있었다. 내려가고 싶었지만 일행의 의중을 모르는 지라 우뚝 솟은 국립묘지 주탑을 향해 경건하게 묵념만 드리고 지나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도봉동 친구에게 수유리에 있다고 전화를 하니 지금 당장 도봉산역에서 만나자고 한다. 친구의 우정은 산길 같아서 오고 가지 않으면 길이 없어지듯이 오고 가기를 게을지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나 또한 遠方來하여 친구만나는 즐거움은 각별하다.
도봉산역앞 식당에서 중화요리 안주로 술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나는 3.15부정선거에 항거한 4.19혁명 기념일이라 수유리 4.19 국립묘지를 찾았다고 했더니 친구는 너는 역시 애국자라고 추켜세워 쑥스럽기도 하고 머쓱해서 영령들의 명복을 빌자며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친구는 평생을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장군 출신이다. 몇 년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산다. 전철역으로 가던중 로또 복권을 한 장 사준다. 사랑하는 친구야! 혼자 지내노라면 끼니를 거르게 되는 법, 밥은 꼭 챙겨 먹어라. 그래야 천국에 있는 아내도 안심하고 미소 지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면 저 만치서 행복이 웃으면서 걸어온다고 한다. 오늘 수유리 국립묘지에 가서 4.19정신을 되새기고 참배도 하고 정이 많고 사랑하는 친구와 술잔을 나누면서 행복하고 뜻깊게 보낸 하루였다.
<고촌당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