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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첫 검찰총장인 문무일 총장(2017년 7월~2019년 7월)은 검찰개혁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로 선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도 대비해야 했습니다. 문 총장은 2017년 9월 대검찰청(대검) 산하에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를 꾸립니다. 문 총장은 청와대와 법무부가 주도하는 검찰개혁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심산을 내비쳤습니다. 대검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에는 민간위원 16명과 대검 간부 2명이 포진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이 검찰개혁위원회에서도 2017년 10월30일 과거사 반성을 문 총장에게 권고합니다. “검찰총장은 검찰과거사조사위원회(가칭)의 조속한 설치와 실효적 운영이 검찰개혁의 최우선 과제임을 인식하고 위원회 설치에 관해 법무부 장관과의 협의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등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문 총장도 권고에 응합니다. 당시 문 총장은 “과거사위원회는 외부인으로만 구성할 생각입니다. 위원회에서 조사 대상을 정하면 직접 기록을 살펴보는 과거사 점검단 업무는 감찰 활동의 일환이기에 검찰공무원이 맡게 될 것입니다”라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검찰이 조사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였습니다.
법무부와 대검 협의로 검찰 과거사는 이원화 체제로 조사가 이뤄집니다. 법무부의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는 김갑배 변호사가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위원은 김용민·송상교·임선숙 변호사, 문준영(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원혜욱(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정한중(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 등입니다. 대검 산하에도 과거사 진상조사단(이하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꾸려졌습니다. 교수 12명, 변호사 12명, 검사 6명 등 총 30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과거사위원회(법무부)가 조사 대상 사건을 선정하면 과거사 진상조사단(대검)이 조사하는 구조입니다. 이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나’를 만들었습니다. 진상조사단 가운데 조사8팀입니다. 원래는 조사5팀 담당이었습니다. 여성 측 대리인단이 ‘조사5팀이 피해 주장 여성에게 2차 가해성 질문을 한다’는 등 항의하면서 ‘나’는 조사8팀에 재배당되었습니다. 이 팀에는 이근우(가천대 법학과)·황태정(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김영희·배진수 변호사, 이규원·최준환 검사가 속해 있습니다(박준영 변호사는 2019년 1월2일 사퇴하고, 그 뒤 배진수 변호사가 합류).
조사8팀은 ‘나’를 과거사위원회에 전달했습니다. 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5월29일 나를 심의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과거사위원회는 “검찰 수사단(단장 여환섭)이 성역 없이 엄정한 수사를 하고, 검사의 직무 관련 범죄를 엄정히 수사·기소할 수 있는 제도로서 공수처 설치를 위한 입법적 논의에 법무와 검찰이 적극 참여하고, 성범죄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에 착수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했습니다.
2019년 6월25일 문무일 검찰총장은 과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수용한다고 밝혔습니다. 문 총장은 ‘김학의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김학의 사건 자체도 부끄럽지만 과거 검찰의 두 차례 수사에서 왜 이걸 밝혀내지 못했는지가 더 부끄럽습니다. (당시 수사팀이) 검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검찰총장이 비교적 최근 사건에 대해 과오를 인정하며 사과를 표명한 것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검찰총장의 사과는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립 서비스’에만 그치고 문책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지적에 문 총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법률상 문책 시효가 지났습니다. 밝힐 수 있는 것을 못 밝히고 이제 와서 시효가 지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 부끄럽습니다.” 검사 징계 시효(3년)나 직무유기 혐의 시효(5년)를 핑계로 제 식구를 감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과거사위원회 활동으로 징계에 회부된 검사는 한 명도 없습니다.
‘내’가 세상에 나온 지 2년 뒤에도 논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1년 4월 ‘나’는 〈한국일보〉와 SBS에 전달되었습니다. 과거사 조사단 조사8팀 소속이었던 박준영 변호사가 두 언론사에 제공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김학의 사건이 (문재인 정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라며 공론화에 나섰습니다. 이와는 다른 경로로 ‘나’는 〈시사IN〉에도 전달되었습니다. 〈시사IN〉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내’ 일부를 발췌해 여러분에게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시사IN〉은 ‘자료 독점’이 ‘평가 독점’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러분이 공론의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물론 ‘나’에게도 한계가 있습니다. 수사권이 보장되지 않았기에 ‘자료조사’와 ‘진술 청취’에 그쳤습니다. 자료는 윤중천·김학의 관련 19개 사건의 경찰과 검찰 수사 기록(3만여 쪽)입니다. 관련 진술을 듣기 위해 과거사 조사단이 연락했지만 관련자 일부는 조사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청취 대상자의 진술서와 〈김학의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일부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조사8팀 소속 위원들은 여성들의 피해 여부 해석을 두고 다수의견, 소수의견, 별개의견으로 갈렸습니다. 활동 종료 시간에 쫓겨 급하게 ‘나’를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내’ 안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2013년 경찰과 검찰 수사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사IN〉은 ‘나’의 공개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명예훼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문 변호사의 검토를 거쳤습니다. 〈시사IN〉 보도에서 ‘나’는 과거사 조사단원들의 평가 부분을 위주로, 시민의 알권리를 충족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여러분에게 공개됩니다. 이번 호 지면에 ‘나’의 일부가 실립니다. 나머지는 ‘〈김학의 보고서〉 아카이빙-暗葬(암장)’에 공개됩니다. ‘암장’ 사이트(darkgate.sisain.co.kr)에 접속해 ‘나’를 읽어주세요. 여러분이 배심원이 되어 ‘김학의 사건’의 정의를 내려주세요.
〈검찰 과거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진상조사 결과 보고-김학의 차관 성접대 의혹사건〉(이하 〈김학의 보고서〉)은 A4 용지 1249쪽에 달한다. 〈김학의 보고서〉에는 2013년 경찰과 검찰의 수사 기록이 인용되어 있다. 과거사 진상조사단 8팀 위원들의 ‘김학의 사건’ 평가를 중심으로 〈김학의 보고서〉 일부를 공개한다. 2차 가해나 명예훼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정규 〈시사IN〉 자문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검토를 거쳤다.
❶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조사 대상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윤중천·김학의 관련 19개 사건 기록 3만여 쪽을 검토했다. 피해 여성, 담당 검사, 경찰 등 29명을 직접 만나거나 서면, 또는 전화조사를 했다. 검찰 고위직 출신 일부 참고인은 전화를 받지 않거나 조사를 거부했다.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법적 근거가 된, ‘검찰 과거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운영규정’은 법령이 아닌 훈령이었다. 강제조사권이 부여되지 않았다.
❷ ‘ㄴ에 대한 성폭력 범죄’와 관련해서는 조사8팀 위원들의 의견이 나뉜다. 피해 여성들의 성폭행 진술과 관련한 평가에서 제1안(다수의견), 제2안(소수의견), 제3안(별개의견)이 게재된다. 〈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1안은 조사8팀 최준환 검사가, 제2안은 김영희 변호사가, 제3안은 이규원 검사가 작성했다. 〈김학의 보고서〉의 전체적인 초안은 최 검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초안에 대해 민간위원들이 이견을 제기하면서 각각의 의견을 보고서에 담았다. 제1안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했다기보다는 ‘성접대’에 동원된 것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제1안 역시 “1차 수사가 김학의의 수뢰 혐의를 포착하고도 수사를 방기했다”라고 평가했다.
❸ 민간위원인 김영희 변호사가 작성했다. 제2안은 성폭행 진술에 주목했다. ㄴ씨는 2013년 1차 수사 때 윤중천씨와 김학의 전 차관이 성범죄 혐의로 기소되지 않자, 2014년 7월9일 ‘김학의 동영상’에 나오는 여성이 자신이라며 두 사람을 특수강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2차 수사팀도 무혐의 처분하자, ㄴ씨는 2015년 1월 법원에 기소해달라며 재정신청을 냈다. 2019년 6월 3차 수사팀은 윤중천씨를 기소하며 ㄴ씨에 대한 강간치상 혐의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법원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윤씨의 강간치상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을 내렸다.
❹ 별개의견은 과거사 진상조사단 8팀 소속 이규원 검사가 작성했다. 여성들의 경찰과 검찰 진술조서 내용만 동의하고 성접대인지, 성폭행인지 평가를 유보했다. 대신 이 검사가 ‘가급적 민간위원의 견해가 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검찰과거사위원회 운영 취지를 밝힌 대목이 눈에 띈다. 이 검사는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❺ 2019년 3차 수사팀은 김학의 전 차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특가법)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사업가 최 아무개씨가 김학의 전 차관에게 제공한 휴대전화와 통신요금이 뇌물액에 포함되었다. 최씨가 2011년 5월까지 대납한 통신요금 174만원이 항소심 재판 때 공소시효를 무너뜨렸다. 김 전 차관을 뒤늦게 기소한 검찰은 공소시효의 벽을 넘기 위해 포괄일죄로 기소했다. 연속적으로 일어난 행위를 하나의 범죄로 묶어 기소한 것이다. 1심은 김 전 차관의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 또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면서 면소 판결을 했다. 1심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이 통신요금의 직무관련성을 인정했다. 특가법상 뇌물액수가 3000만원 이상~1억원 미만이면 공소시효가 10년이라서 2021년 5월까지 공소시효가 늘어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통신요금을 비롯해 최씨가 김 전 차관에게 건넨 4300여 만원 상당의 금품을 뇌물 혐의의 유죄로 판단해 김 전 차관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 전 최씨와 검사의 면담을 문제 삼아 이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결과적으로 2013년 1차 수사팀은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외면한 셈이다.
❻ 검찰 권력은 기소한 사건보다는 기소하지 않은 사건에서 더 빛을 발한다. 〈김학의 보고서〉를 검토한 변호사들도 1차 수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윤중천의 배임 공모 무혐의 처분을 꼽았다. 물론 윤중천의 개인 비리에 대한 수사가 ‘별건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2013년 당시 검찰은 왜 윤중천씨에게만 별건 수사를 엄격히 금했을까? 〈김학의 보고서〉를 검토한 한 변호사는 윤중천씨가 거액을 들여 스폰서 노릇을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❼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3월25일 1차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곽상도 민정수석과 이중희 민정비서관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3차 수사팀은 그해 6월4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환섭 수사단장은 “곽상도와 이중희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어 불기소했다”라고 밝혔다. 3차 수사팀은 곽상도 의원을 한 차례 서면조사했다. 곽 의원은 이 수사 발표 뒤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 등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곽 의원은 또 문재인 대통령, 조국 당시 민정수석, 이광철 당시 선임행정관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소했다.
❽ 3차 수사팀은 ‘윤중천 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수사에 착수할 만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윤중천씨도 관련 진술을 거부해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학의 보고서〉에는 실명과 직업군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3차 수사팀이 수사를 종결한 뒤 이 명단에 오른 이들 가운데 일부는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내기도 했다. 〈시사IN〉은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직업군만 공개한다.
‘〈김학의 보고서〉 아카이빙-暗葬(암장)’에 접속하면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darkgate.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