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콩알만큼 들기 시작할 중학교 시절부터, 군 제대 후 뒤늦게 학교로 복학한 이십대 중반 무렵까지 끈질기게 글쓴이를 괴롭혔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도대체 이 놈의 지랄맞은 공부를 왜 해야만 하나? 안 할 수는 없나? 뭘 위해 하나?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공부해!' 소리를 그치지 않는데, 정작 당시의 이리니는 도무지 왜 이 힘들고 귀찮은걸 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공부가 되기는 커녕, 공부할 의욕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아주 괴로웠다. 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자꾸 하라고 강요 당하니까... 영문도 모른채 자꾸 괴로운 일을 당하니까 억울해서...
어렸을 때는 이곳저곳 묻고 다녔다. 아무도 답해 주는 어른이 없었다. 선생님께? 질문했다가 맞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이러셨다.
시건방진 노무 자슥! 뭐라카노? 공부를 왜 해? 그게 학생 노무 시키 입에서 나올 소리야...?
이 4가지 없는 노무 자슥. 너 같은 놈은 좀 맞아야 돼. 대! 입 꽉 다물어!
그 뒤로 '공부 왜 해요...?'라는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 찾고자 마음 먹었다. 그 해답에 대한 실마리를 어느정도 찾기 시작한 시점은 나이 서른 무렵이었다. 그 후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여러 해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이 해답을 점점 세밀히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었다.
며칠 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검색해서 이리니의 블로그를 방문한 이가 있었다. 점점 그런 이들의 수가 늘고 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틀림없이 공부에 대한 고민, 특히 공부를 하고 싶은데 원하는만큼 잘 되지 않아서,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나서 공부를 열심히 해보고자 애를 쓰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 해답을 찾지 못해 괴롭고 답답할지 모른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 글을 쓰기로...
학생 여러분들이 '공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려면 반드시 이 '인간 삶의 여정'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가진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며, 이해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 때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졌던 적이 있는 글쓴이조차도 나이 서른 무렵에서야 비로소 '공부하는 이유'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위에서 고백한 바 있다. 왜? 그 이전에는 이 삶의 여정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공부'에 대한 이런저런 의문점들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자, 이제 보자.
한 인간이 태어나진다. 태어난다...아니냐고? 그 누가 있어 '나 태어나고 싶어!'하며 스스로 태어나는가? 그런 이는 아무도 없다. 모든 존재는 자기도 모른채 태어나진다. 한마디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자기도 모른채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거다.
갓 태어나게된 이 아기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에 따라 보통 부모란 이들의 보호 속에서 성장할 수 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 갓난 아기가 스스로 두 발로 설 수 있는 성인이 될 때까지. 여기서 두 발로 선다는 의미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성인이 된 후, 대체적으로 인간은 짝을 지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보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 한가지. 이 시점에서 한 인간은 부모의 자식임과 동시에 자식의 부모가 된다는 점이다. 이 때가 되서야 비로소, 자식이었던 이는 자신의 부모를 어느정도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부모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왜? 자기가 이제 부모가 되었으니까...
이 때부터 누군가의 자식이면서도 누군가의 부모인 한 인간은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왜? 자기 자신을 책임져야 함은 물론이고, 그에 더해 이제 서서히 나이가 들며 약해져가는 부모를 모셔야 하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자신의 자식마저 책임을 지고 교육하며 길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시점에서 이 인간은 한 인간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을 함께 짊어진 상태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와중에 이 인간은 점점 늙어간다. 그와 동시에 이 인간의 자식은 점점 성장해 간다. 곧 그 역할이 바뀔 것이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이 인간의 부모는 끊임없이 흐르기만 하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 인간 역시 이 때쯤이면 나이가 많이 들어있게 되며, 어렸던 자식은 이제 장성한 어른이 되어 결혼, 자식을 가진 부모가 되어 있다.
이 이후의 과정? 똑같다. 인간 삶의 여정은 싸이클(cycle)을 그린다. 주기를 가지고 순환하며, 뱅글뱅글 돈다, 수레바퀴처럼...
부모였던 이는 언제는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누군가의 자식인 이는 보통 언젠가는 누군가의 부모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또는 그녀가 누구건간에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또는 그녀의 자식 또한 때가 되면 부모가 되었다가 또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 누구도 이 싸이클, 이 삶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부분은 여기까지다. 혹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 까닭 모를 '무서움, 두려움'을 느끼시는 분이 계신가? 잘 됐다. 그 무서움, 두려움이 여러분을 '지혜'에게로 데려다 줄지 모른다.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다고? 그럼 지혜 대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란 격언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있다. 딱 하나 있다. 그리고 그 공짜를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사람도 딱 하나다. 누구냐고? 여러분들의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자식인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은 '공짜'다.
이 이외의 그 어떠한 것도 공짜가 아니며, 부모님을 제외한 이 세상 그 누구도 여러분에게 '공짜'를 공짜로 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필수 요소로 3가지를 꼽는다. 의, 식, 주. 초등학교때 배웠을 것이다. 입을 것, 먹을 것, 쉬고 잘 수 있는 집이다. 이 세개가 없으면 정말로 살기가 어렵다. 입을 걸 제대로 입지 못하면, 얼어 죽는다. 먹어야 할 때 먹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 쉬지 못하고 자지 못하면, 역시 죽는다. 이 모든 걸 여러분들의 부모님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지 않고 공짜로 여러분에게 제공해 왔다.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부모님의 소중함과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곧바로 느끼는 법
1. 하루 세끼도 필요없다. 두끼만 굶어보자. 매일 공짜로 밥을 주시는 부모님이 고마울거다.
2. 홀라당 벗고 한겨울에 바깥을 나가보자. 매일 공짜로 옷을 주시는 부모님이 감사할거다.
3. 집에 들어오지 말고, 바깥에서 딱 하루만 살아보자. 매일 공짜로 집을 내주시는 부모님이 그리울거다.
자, 이제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 보자. 여러분들 곁에 항상 계시는 것처럼 보였던 부모님이 없어졌다고 상상해 보자. 한마디로 이제 더 이상 여러분들에게 '공짜'를 줄 사람이 없는거다. 어떻게 될것 같은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아는 것은 아주 쉽다. 여러분에게 아래 4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1. 배고프다.
2. 춥다 또는 덥다.
3. 졸립고 피곤하다.
4. 그래서 죽겠다...
부모님이 없어진다고...? 에이... 거짓말!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저 위의 '인간 삶의 여정'을 다시 한번 읽고 오라. 그리고 아래 사항을 주의깊게 살펴보라.
1. 인간은 태어난 이 후,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늙어간다.
2. 이리니가 지금 이 순간도 늙어가고 있듯이, 학생인 여러분도, 여러분들의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3. 인간 수명은 대체로 100년 미만이다.
4. 이리니도, 여러분들의 부모님도, 그리고 여러분도 앞으로 수 십년 내에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5. 이 세상에는 한정된 수명 이외에 각종 사고, 질병 등,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이거... 정말 거짓말인가?
여러분들이 엄마 젖을 든든히 먹어야 학교를 갈 수 있는 나이의 어린 학생이 아니라면 이리니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충이나마 알아 들었을 것이라 믿는다.
1.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연세를 드시고 늙게 되면, 더 이상 여러분들에게 공짜를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2.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여러분들의 부모님들 또한 여러분들과 영원히 함께 살 수는 없다.
3. 이 세상의 각종 질병, 사고는 예고없이 그냥 들이닥친다.
이거... 무섭다. 두렵다. 하지만 진실이다.
한국의 학생이라면 '공부해!'라는 잔소리, 정말 지겹도록 들었을 것이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주변 어른들도...
이 분들은 왜 그렇게 지겹도록 여러분들에게 '공부해!' 소리를 해대는 것일까? 왜 노래하듯 하는 것일까?
이 '공부해!'의 진정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스스로의 두 발로 설 준비를 하라. 부모님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 수 있도록 준비하라.
'두 발로 선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책임진다'의
최소한의 의미는 뭘까? 맞다. 최소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입고, 먹고, 마시고, 쉬고 잠 잘 공간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 이것들을 마련하려면 현대 사회에서 뭐가 필요할까...? 그렇다. 바로 그 유명한 '돈'이 필요하다.
여러분들은 여태껏 부모님께 공짜로 '용돈'을 타서 썼을 것이다. 그 용돈, 부모님들은 어디서 구했을까? 맞다. 열심히 일하셔서 버신거다. 고되게 일하셔서 버신 돈의 일부를 자식인 여러분들을 위해 그냥 공짜로 주셨던거다. 자, 이제 여러분들은 스스로 두 발로 서기 위해 그 돈이라는 것을 직접 벌어야 한다고 가정하자. 어떻게 그 돈을 벌텐가? 그 누구도 그 돈을 공짜로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학생인 여러분도 이미 잘 아실거다. 어떻게...? 맞다. 일을 해야준다.
일, 뭐 그까이꺼... 뭐 대충 하면 되지... 대충...
이라고 하는 학생이 혹시 있는가?
버스, 택시 기사는 운전을 해 주고 돈을 받는다.
미용사, 이발사들은 머리를 깎아 주고 돈을 받는다.
선생님들은 학생을 가르쳐 주고 돈을 받는다.
연예인들은 시청자들을 즐겁해 해 주고 돈을 받는다.
공무원들은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을 해 주고 돈을 받는다.
눈치를 채셨는가?
돈을 번다, 일한다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주고, 그 댓가로 돈을 받는다" 이다.
자, 이쯤에서 학생인 여러분들에게 한가지만 묻자.
여러분들이 스스로 두 발로 서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여러분들은 다른 이들에게 뭔가를 줘야 한다.
여러분들은 주고, 댓가로써 돈을 받아낼 수 있는 그 '무엇'을 과연 가지고 있는가...?
저 TV 잘 봐요. 어쩌라고...?
저 게임 잘 해요. 어쩌라고...?
저 음악 잘 들어요. 어쩌라고...?
그것 가지고는 세상 어느 곳에 가서도 돈을 댓가로 받아낼 수 없다. 그것 가지고는 여러분은 절대로 두 발로 설 수 없다. 이 사실은 여러분도 이미 잘 알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 어린 학생인 여러분들은 주고 나서, 그 댓가로 여러분들의 삶에 필요한 돈을 받아낼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만약 학생 여러분들이 이리니에게
만약 두 발로 설 준비가 진정한 목적이라면, 왜 꼭 그게 '공부'여야만 합니까...?
다른 것들도 많지 않습니까?
공부를 꼭 해야만 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리니는
라고 답할 것이다.
왜?
이리니가 봤을 때, 삶을 사는 방법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
1. 공부를 통한 길
2. 재능을 통한 길
3. 그럭저럭 사는 길
4. 무위의 길
4번 '무위의 길'은 사실상 글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 깨달음에 도달한 현자들의 삶의 방식으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리니가 글로써 쓸 수도 없다. 그러니 사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공부, 재능, 그럭저럭'이라는 3가지 길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 왜 꿈과 이상에 대한 얘기는 없지...?'라고 하시는 분이 계실거다. 자신의 꿈과 이상이 있는 이라면 사실 이 글은 필요가 없을 것이라 보았다. 꿈과 이상이 있고, 그것을 실현할 의지가 있다면 어떻해서든 나아갈 테니까 말이다.
답은 '아니다'. 왜? 공부 이외의 다른 길이 있으니까...
그럼 나머지 두가지 길을 살펴보자.
상당수의 학생들은 이미 이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럭저럭 먹고 자고, 그럭저럭 학교생활하고, 그럭저럭 공부하고... 아닌가?
자, 이 길을 끝까지 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여러분들의 인생 자체가 '그럭저럭'이게 될 것이다.
그럭저럭 잘 먹을 수도 있지만, 그럭저럭 못 먹을 수도 있다.
그럭저럭 잘 입을 수도 있지만, 그럭저럭 못 입을 수도 있다.
그럭저럭 잘 쉬고 잘 수도 있지만, 그럭저럭 못 쉬고 못 잘 수도 있다.
그럭저럭 괜찮은 직업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직업을 못 가질 수도 있다.
한마디로...?
모든게 불확실하다. 여러분들의 인생 자체가 불확실하다.
여러분들이 굳이 이 길을 걷겠다면, 그 누구도 여러분들의 인생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그럭저럭의 길을 걷다가 나중에 너무나도 불행지더라도,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왜? 그 길을 선택한 것은 여러분 자신. 그러니 그 불행에 대한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니까...
이 길이
여러분들이 갈 수만 있다면, 사실상 가장 올바른 길이며, 여러분들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길이다. 여러분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모차르트부터 현대의 천재 소년 송유근에 이르기까지, 그네들은 이 '재능을 통한 길'을 걸었거나 걷고 있는 이들이다.
라고 하는 학생이 있는가? 장하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려면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굉장히 큰 장애물이 하나 있다. 그게 뭘까...?
재능을 꽃 피우려면, 그 꽃을 피우려 노력하기 이전에 최소한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
자,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묻겠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역사상 이름 높은 예술가들이 있다. 이네들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오늘날 엄청난 예술가로 추앙받는 이들의 상당수가 그 사람이 살았던 과거 당시에는 전혀 그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을 뿐더러 주목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그 삶이 아주 비참하기조차 했던 이들도 많았다. 왜일까...?
사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다른 이들의 재능을 한 눈에 파악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아울러 어린 학생들은 물론이요 다 자란 어른들조차 자신의 재능은 고사하고 진정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다.
그래서 이런 명언이 생겨났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못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정작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라서 불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학생들이 '재능을 통한 길'을 가고자 했을 때, 과연 그 누가 있어 이 어린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이쪽 방면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있고,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는 법' 따위의 책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거다.
재능의 길에는 그 어떠한 것도 확실하지 않다. 재능을 발견하는 법, 공식 같은 것은 없다. 재능을 발견하려 애쓴다고 해서 재능을 발견한다는 보장 또한 없다. 이것이 '재능의 길'에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한마디로 이 길은 불확실하다.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재능을 통한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의 종류는 대략 아래와 같다.
1. 자신도 모르게 재능의 꽃이 자연스레 피어나는 경우
2. 이것 저것 하다가 우연히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경우
3.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운좋게 재능을 발견하는 경우
4.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그 일이 재능이 된 경우
5.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경우
1, 2, 3번의 경우는 노력보다는 '우연'과 '운'이 강하게 작용한다. 4, 5번의 경우는 노력이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재능을 통한 길을 가려는 사람이 꼭 갖추어야 하는 조건을 발견할 수 있다.
1.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겠다는 스스로의 강한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2. 재능 발견을 도와주고, 그 발견된 재능을 꽃 피어나게 할 수 있는 주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3. 운도 따라 주어야 한다.
( 혹 이 부분에 이의를 제기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능의 발견에 운이나 우연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들이 사실상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글쓴이 역시 불편하지만 어쩔수 없이 운, 우연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읽어온 학생이라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사실상 두 가지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하나는 공부의 길이요, 둘째는 재능의 길이다. 분명히 행복한 삶을 위한 길은 두 개인데, 유독 주변의 어른들, 특히 부모님은 공부를 지나칠 정도로 강조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왜일까...?
눈치채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재능의 길은 한편으론 불확실하다. 노력한다고 해서, 누가 주위에서 도와준다고 해서 그 재능을 발견하고 꽃처럼 피워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한마디로 여러분들의 부모님 입장은 이런 것이다.
내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재능의 길을 걷게 할 것이다.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의 사랑스런 자식을 불확실한 길, 안전하지 못한 길로 걷게 할 수는 없다.
그럼 공부의 길은 완전히 안전한가? 공부의 길을 걷기만 하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럼...?
인생 자체는 모든 것이 사실 불확실하다. 그 누구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그런 인생의 여러갈래 길들 중 그나마 가장 안전한 길들 중 하나가 '공부의 길'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여러분들의 부모님, 선생님들, 주변 어른들은 여러분들의 재능이 확인됐고, 확실하다면, 그 재능의 꽃을 피워주려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재능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땅의 대다수 학생들, 심지어는 어른들조차 이 '재능'이 확인되지 않은 불확실한 상태라는 것이다. 재능을 발견하려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그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는 보장 또한 없다. 이 때, 특히 부모되는 이 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불확실한 '재능의 길'이 아니라 노력만하면 어느 정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공부의 길'을 자신의 사랑스런 자식들이 걸어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요약컨대, 여러분들의 부모님은 여러분들이 '안전하게', '편안하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재능이 확인 되지 않은 사람, 그러면서도 공부가 체질에 맞지 않거나 하기 싫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있다. 다른 길이 분명히 있다. 그 힌트는 윗 글 '재능 발견의 어려움'에서 언급한 4번에 있다.
4.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그 일이 '재능'이 된 경우
눈치 채셨는가? 그렇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것이 꼭 공부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꼭 기술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다음 사항을 꼭 기억해야 한다.
1.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2. 그 일은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댓가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그 댓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TV 시청.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게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조금 잘 한다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돈과 쌀을 줄 이들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어떨까?
TV 시청을 하고 나서, 그 TV 프로그램에 대한 글을 쓴다. 또는 TV 프로로 제작할 수 있는 글 또는 시나리오를 쓴다. 이 일이 능숙해지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여러분들은 책을 쓰는 작가, 방송작가,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것이다.
게임. 게임에 대한 글을 쓴다. 또는 분석한다. 그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히트를 칠 수 있는 게임 기획을 할 수 있게 노력한다. 이 일 또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여러분은 게임 디자이너, 기획자, 관련 업무 종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는가? 이로써 삶의 길은 3가지에서 다시 4가지가 되었다.
이런 긴 글은 어린 학생들이 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정리를 한번 해보자.
1. 삶의 길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 공부, 재능, 그럭저럭의 길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길이다.
2. 그럭저럭의 길은 위험하다.
3. 재능의 길은 훌륭하지만, 불확실하고 어려울 수 있다.
4. 공부의 길 역시 어렵지만, 가장 안전한 길 중 하나다. 그래서 주위 어른들이 그토록 강조한다.
5. 공부의 길도, 재능의 길도 가기가 어렵거나 싫다면, 다른 길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정말로 열심히 하는 길이다.
자, 이 시점에서 학생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자.
여러분은 어느 길로 가고 싶은가...?
그리고 공부하는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가...? ^^
자기 삶의 길. 아무도 여러분 대신 정해주지 못한다. 주변의 도움을 받되, 반드시 여러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왜? 여러분들의 삶은 여러분 자신의 책임이며, 몫이기 때문이다.
휴... 글을 다 써놓고 보니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겠다... 라는 직감이 들어 버렸다. 이렇게 길 수가... --;
사실 이 '학생들의 공부, 장래, 진로 선택'에 대한 문제는 책으로 써도 할 말을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폭과 깊이가 광대할 수 밖에 없는 주제다. 시중 서점에만 가도 이 주제에 접근하는 엄청나게 다양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이미 출간되어 있을 정도니까. 그에 더해, 지나칠 정도로 어렵다. 글쓴이는 보통 하루만에 상당한 길이의 장문을 별 어려움 없이 쓰고 발행을 하곤 했다. 그것도 거의 매일. 하지만 유독 이 글만은 장장 3일을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고를 반복해야만 했다.
수십 잔의 커피를 마셔대며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어쩌면 이 글이 어린 학생들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글쓰기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성인이 주 대상이었다면, 간단한 정의 몇개와 예시 한둘로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이 읽는다는 가정하에 썼기에 되도록이면 쉽게 쓰려 애를 써야만 했다. 사실 이것도 잘 안된듯 싶어 아쉽기가 그지 없다.
마지막으로 다음 사실을 말씀드리고 이 긴글을 마치고 싶다.
1. 이 글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글이 아니다.
2. 이 글은 궁금히 여기는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이유'를 밝히고, 그것의 원 목적인 '두 발로 스스로 서기'를 강조하기 위한 글이다.
3. 글쓴이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것 못지 않게 '냉엄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교육에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런 이유로 어쩌면 많은 분들이 불편해 하실 수 있는 '진실'도 가감없이 적으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