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영도에 겨울이 찾아 온다. 부산에도 겨울이 있다. 영도의 겨울은 중부지방처럼 유별나지 않다. 눈도 없거니와 얼음도 제대로 얼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이라고 해봤자 제대로 겨울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겨울은 춥다. 겨울바다는 더 춥다. 바람이 세고 매섭기 때문이다. 영도의 바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 불어오지만 겨울 바람은 겨울을 알려 주려는 듯 추운 바람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에 국한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곳곳에서 상록수가 푸른 잎을 발하고 있다. 1월이면 동백꽃도 핀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못된 쑥이 애써 겨울을 외면하고 있기도 한다.
그래도 영도의 겨울에는 영도만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영도의 겨울은 영도다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영도다리에서 제2송도 벼랑 위의 모습은 그리스 산토리니의 풍경이다. 언덕에 층계를 이루며 늘어서 있는 흰 지붕, 그리고 언덕배기 아래에 펼쳐져 있는 쪽빛 바다는 과연 한국의 ‘산토리니’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곳의 우리 이름은 흰여울마을. 목장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흰여울 길이다. 영화 ‘변호인’으로 전국적으로 소개된 이후, 그곳은 젊은이의 유명 탐방장소가 되었다. 겨울에는 그 언덕배기에 따사로운 햋빛이 비추기 때문에 트레킹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흰여울길을 따라 푸른 바다와 흰 지붕들을 감상하며 목장원까지 가면 그 근처는 예전에는 ‘아카시아’라고 하는 야외 레스토랑이 있던 곳이다. 경사진 언덕배기 곳곳에 숲 속 방갈로를 만들어 밤바다의 낭만을 즐길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없어졌다. 아베크족들이 즐겨찾는 곳이었는데, 언덕이어서 술취한 아베크족들이 사고가 많이 나서 폐쇄했는지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대신 지금은 갈맷길이라는 트레킹 길을 만들어 해운대 ‘문로드(moon roda)’와 쌍벽을 이루는 부산의 대표적인 아베크길이 되고 있다.
영도의 겨울은 다양한 먹거리로 긴 겨울밤을 즐길 수 있다. 원래 영도는 우리나라 음식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곳이다. 경상도 음식은 기본이면서 오랜 일본인 거류지역이었던 탓에 일본식 음식, 그리고 해방 후에는 이북 피난민들이 많이 산 관계로 이북 음식, 또 개발연대기에는 전라도와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 왔기 때문에 제주도와 전라도식 음식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런 기반 위에 풍부한 해산물을 바탕으로 각 방식의 색깔을 더해 영도만의 풍부한 먹거리 천국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요즘 전국적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는 부산 어묵의 본 고장이 바로 영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묵을 이용한 오뎅과 같은 요리는 영도 겨울의 별미라고 할 수 있다. 또 곳곳에 산재해 있는 복국과 아귀찜 요리집, 먹장어와 붕장어의 또다른 변신인 꼼장어구이와 바닷장어구이집은 겨울 미식가들의 아지트가 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봄의 도다리 쑥국과 쌍벽을 이루는 하리 횟집촌의 물메기탕을 들 수 있다. 처녀 젓가슴보다 더 보드라운 육질과 대한민국 최고의 국물 맛을 자랑하는 바다 물메기탕은 겨울 영도의 숨은 미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영도의 번화가인 대교동과 남항동 사이에 있는 남항시장-부산의 3대 재래시장-에는 위에서 말한 음식 스펙트럼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이북 음식의 대명사인 부산국밥과 순대국, 전라도 음식의 대명사인 홍어집과 민어횟집, 경상도식 추어탕과 각종 생선구이, 무엇보다 부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장어 어묵과 두툽상어고기는 부산, 특히 영도의 별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에필로그
영도의 봄이 찾아오고 있다. 또 한해가 시작된다. 영도의 사계는 비발디의 사계처럼 감미로운 선율로서 느낄 수 있다. 봄의 따사로움과 여름의 비바람, 그리고 시원한 바람, 가을의 온화함과 겨울의 청명함이 어우러져 신석기시대부터 삶의 터전으로 사랑받아 온 곳이다. 영도에 터 잡은 지 이제 겨우 2년이 지났지만 섬 구석구석을 돌아볼 때면 영도 동삼동 패총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선주민의 숨결이 흐르는 듯해서 전율을 느낀다. 이 땅 어느 곳인들 신비롭지 않는 곳이 없지만 영도야말로 보고 느낄수록 신비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섬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름도 영도(影島)라고 한 것일까?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영도,, 가까이 두고 싶군요
가까이 해 주세요. 언제 한번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