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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 봉화산 정토원(烽火山 淨土苑)을 찾아서 ②
-호미 든 관세음보살을 찾는 길-
공양을 마친 후, 봉화산 정상에 모셔진 호미 든 관세음보살 성상을 뵈러 가려고 했더니 두 분 어른께서도 가신다고 하셔서 함께 봉화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봉화산은 어떤 산인가 정토원 홈페이지를 통하여 알아 봅니다.
대통령을 탄생시킨 봉화산(烽火山)
『봉화산은 진영읍 본산리에 위치한 해발 140m의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30리를 두루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북쪽 낙동강 너머 밀양시 밀양읍, 하남읍, 초동면, 삼랑진읍, 서 쪽으로 창원시 동읍, 북면, 대산면, 동남쪽에는 김해시 진영읍, 한림면, 진례면, 생리면 등 3개시 11읍면에 인접하고 있어 지역적으로 중심부(中心部)에 위치한 산이다.
벌판에 돌출한 산이지만, 남쪽으로 기암절벽이 연결되어, 사자바위, 부엉이바위, 병풍 바위 등 이름을 갖는 기암이 솟아 있어 야산이지만 드물고 굳건하고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봉화산의 본래 이름은 자암산(子庵山)이라고 지적도상에 명기되어 있었는데 1963년 전국 지적 측량시 정토원을 일군 선진규 법사가 지방 사람들이 부르고 있는 대로 봉화 산(烽火山)이라 명기해 달라고 청원하여 그 이후 봉화산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노무현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사람들은 필히 봉화산을 오르게 되고 봉화산을 오르면 낮으면서도 높은 산의 위용을 지닌 사방 30리를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서 동쪽의 높은 산 무척산을 중심으로 반시계방향으로 금동산, 석용산, 신어산, 분 성산, 경운산, 팔만산, 불모산, 장유봉, 신정산, 대암산, 정병산, 천주산, 용지봉, 농바위, 구월산, 작대산, 무령산, 백원산, 천마산, 마금산, 함박산, 종암산, 덕암산, 영취산, 화왕 산, 산성산, 청룡산, 만어산, 구천산, 금오산 등 산세를 접하고 있어 이곳 기운을 받으면 "대통령 뿐만 아니라 앞으로 많은 인물이 나올 수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만허당 김만운 보은비(萬虛堂金萬云報恩碑)
정토원을 일구는데 큰 역할을 하신 분 같으나 정보가 없네요.
이정표
정토원은 100m, 대통령생가는 500m, 사자바위는 100m인데 사자바위로 갑니다.
사명대사상(四溟大師像)
봉화산 정상으로 가는 길, 사자바위로 향하다 만난 사명대사상입니다. 1967년에 호국불 교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세워진 사명대사상인데 세월의 풍화작용에 의해 많이 낡아 있 습니다.
계단길 대통령의 길입니다.
장모님이 저 계단을 어찌 오르나 싶었는데 잘 오르십니다. 장인어른은 앞서 올라가셨습니 다. 장모님은 허리가 ㄱ자로 굽으셨고 장인어른은 심혈관질환으로 수술하신 바 있기 때문 에 저 정상을 오르실까 염려가 되었습니다만 생각보다 잘 올라가시네요. ^^
뒤돌아 본 계단모습
계단 우측이 정토원입니다.
호미 든 관음개발성상 300m 남았네요.
여기에 있는 바위사진이 안 나와서 유감이네요. 여기가 사자바위입니다.
봉화대(烽火臺)
예전에 이곳이 급보를 알리던 봉화대였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산을 봉화산이라 불렀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허름한 안내판이 있어 봉화대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곳에 오 니 자연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으나 이곳을 수 없이 다니셨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사자바위에서
저도 함께 이 순간을 기념합니다.
사자바위에서 내려다 본 고 노무현대통령 생가 및 묘소 그리고 봉하마을
바로 앞이 묘소가 있는 묘역(墓域)이고, 그 앞 우측이 대통령 퇴임 후의 사저(私邸)이며, 바로 그 앞이 생가(生家)입니다. 길 좌측 하우스같이 생긴 건물이 노무현 대통령 추모관 입니다. 그리고 그 동네를 봉하(峰下)마을이라 합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입니다.
여기가 오리농법으로 지었다는 봉하들녘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에 내려온 후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오리농법 으로 벼농사를 짓도록 했습니다. 80Ha 논에서 오리농법과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쌀을 재 배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겨울에는 논에 물을 채워 놓아 철새가 날아오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주인공을 잃은 슬픔이 들판에 가득한 듯합니다. ㅠㅠ
사자바위를 내려와서 바라본 모습
사자바위에서 120m 내려온 지점.
여기서 정토원은 불과 다시 100m 거리네요.
대통령의 길
호미 든 관음개발상 밑에 있는 운동시설
여기 나무에 무슨 글이 달려 있는데 궁금하여 읽어 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숲 가꾸기
『그린레인저ㆍ산림청 후원으로 진영여자중학교 1학년 134명, 교사 7명이 아름다운 대통령 숲길 조성을 위해 2011년 10월 7일 고형복합비료 주기 행사를 실시하였습니다.
2011년 10월 7일 진영여자중학교 1학년 및 그린레인저 일동』
잠시 쉬면서 시설을 이용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관세음보살상
돌탑과 안정비
관세음보살 성상을 올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안정비(安定碑)
비문 전문을 옮겨 봅니다.
『이 호미 든 관음상을 단기 四二九二년 을해년 당시 암울하고 황폐한 사회에 부처님의 뜻 을 전하고자 젊은 불교학도 三一명에 의하여 이 산 정상에 봉안되었었다. 四○년이 지난 을묘년 당시 인조석으로 된 불상이 각 세월이 흘러 훼손이 됨으로 다시 새롭게 조성한 관 음성상을 재차 모시는 기단작업을 하고 있는 도중에 공사감독인 이수영(李洙榮)의 꿈에 세 번이나 현몽하여 나를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면서 현 지점을 지정하면서 편안히 안정시켜 달라고 함으로 이와 같이 모시게 되었다.』
불기二五四三년(一九九九) 十월 三十一일
사단법인 대한불교전국신도회호미든관음성상봉안위원회
그런데 안정비란 이름은 이 비의 전문을 읽고 제 나름대로 지은 것이니 정확한 명칭은 무 엇인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 비문을 옮기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이 비문을 읽으니 유감스럽게도 띄어쓰기도 엉터리일 뿐 아니라 몇 개의 오류가 발견됩니다. 띄어쓰기는 옮 기면서 바로잡아 올렸습니다. ^^
띄어쓰기는 그렇다 해도 비문의 을해년은 오류입니다. 1959년은 제가 태어난 해라 잘 압 니다. 을해년이 아니라 기해년입니다. 단기로는 4292년이죠. 을해년은 1935년입니다. 또 하나는 '40년이 지난 을묘년 당시'라 했는데, 을묘년은 1975년입니다. 무슨 큰 착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호미 든 관음성상이 1959년 4월 5일에 세워진 것인데 이게 웬일입니 까? 1959년은 을해년(乙亥년)이 아니라 기해년(己亥年)이요, 1999년은 을묘년(乙卯年)이 아니라 기묘년(己卯年)입니다. 누가 己를 乙로 잘못 혼동한 것 같습니다. 저 비문은 마땅 히 수정되어야 합니다. ㅠㅠ
☞ 다음은 3부 호미 든 관세음보살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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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몇번 뵈었지만 대통령님은 친절하고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분이었습니다 _()_
아, 그렇군요. 직접 몇 번 뵈었으니 생각이 많이 나시겠습니다. 대통령의 길을 걸어보고 싶지요 _()_
살아 계실 때 내려 가보려고 했는데 아직 입니다.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아픔이 서려있는 저 곳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합니다. 평범한 시골 마을이 사람들의 입에 들썩거렸을텐데요, 지금은 어떨까요? 그나저나 백우님께서 잘못된 비문을 제대로 잡아 주시면 안 될까요? _()_
잘못된 비문에 대하여 글을 써서 드려볼까 생각 중입니다. 중요한 역사적인 것은 한 자 한 자 잘 생각해서 오자가 없는지 잘 검토를 해야 하는데 눈이 있으되 간과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3부에도 썼지만 거기에 그와 같은 우를 범했습니다. 한 사람이 실수하면 그 실수를 모르고 따라하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그건 마치 저 월나라 미인 서시가 아파서 찡그리는데 그게 멋진 줄 알고 추녀가 따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순례하면서 오자를 찾아 낸 것이 부지기수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 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수두룩 합니다. _()_
친정 부모님 산길을 생각보다 잘 걸으셨습니다._()_
저도 놀랐습니다. 허기사 왕년에 북한산까지 다녀오셨으니... 다음엔 어디로 모실까요 _()_
두 분 어르신을 모시고 함께 한 여행길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사자바위에서 내려다 본 노대통령 생가와 묘소를 보니 마음이 착잡하네요. _()_
사자바위에서 내려다보니 참으로 슬픈 마음이 절로 일더군요. 부엉이바위도 가 보고 싶었는데 못 갔습니다. 밑에서 바라만 봤습니다. 대통령의 길은 두고두고 전설이 될 것 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