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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나주박물관을 탐방한 후 월출산(月出山) 강진다원(康津茶園)과 무위사(無爲寺)를 찾아갔다.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월출산은 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으로 경치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그려 놓은 것과 같이 산세가 뛰어나며 예로부터 산 주변의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재배 되었던 곳이다.
강진 월출산 아래의 볼모 야산도 1981년 5월에 개간되기 시작는데, 이곳은 옛부터 녹차를 애호하는 문인 선비들의 전통사상이 면면이 이어져 온 곳으로 특히, 강진 및 해남지역의 녹차 사랑은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의 영향으로 그 뿌리가 더욱 굳건했었다. 그래서 기후조건이 적합한 월출산 남쪽기슭의 볼모지를 개간하여 약 10만여평의 다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무위사는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月出山)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하였고, 875년(헌강왕1) 도선(道詵)이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고 개칭한뒤, 1555년(명종10) 태감(太甘)이 4창하면서 무위사라 하였다.
'월출산 무위사의 일주문'!, 무위사적지에 신라 원효스님에 의해 창건되었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효대사 시절은 이곳이 백제땅이고 여러 역사적 정황상 원효대사 창건설은 무리라고 보여 왕건과 가까웠던 선각대사 형미스님이 중창한 1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초에는 선종사찰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수륙사(水陸寺)로 유명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를 행하였던 만큼, 중심 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이다. 조선 태종7년(1407)에는 천태종 자복사(資福寺)의 하나로 꼽혔다. 선종이었던 무위사가 천태종이 된 데는 고려후기 백련사에서 천태종 백련결사가 활동했던 영향을 받았다.
월출산 무위사(月出山 無爲寺) 일주문 현액은 1980~1990년대에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국전초대작가 南岡 이효갑(李孝甲)이 썼다. 도로 경계석 같은 일정한 길이로 가공된 장대석을 층층이 쌓은 장대석기단이라 한다. 장대석기단의 위층 모서리에 두 장대석을 'ㄱ'자 모양으로 붙였을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귀가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큰돌을 'ㄱ'자 형태의 통돌로 만들어 놓는데 이를 귀틀석이라 한다.
무위사 '극락보전(極樂寶殿)'은 검박하고 단정한 건물이다. 세종 12년(1430)에 건축된 조선 최고의 건축물이다. 고려시대 수덕사 대웅전이나 부석사 조사당을 많이 닮았다. 마당에 부처에게 예를 올리는 배례석이 보인다. 비탈진 지세를 따라 앞쪽에만 얕은 축대를 쌓은 기단 위에 아무 조각도 없는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 기둥을 세워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이다.
정면의 가운데 칸이 양옆 칸보다 오히려 조금 좁은 것이 특징이다. 또 전체적으로 볼때에 기둥 높이에 비해 기둥 사이 간격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조선 초기 형태로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미이다.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 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묘사한 화려한 건물 내부, 조선 초기 불교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상과 불화가 특징이다. 옆에는 '성보박물관'이 있었고, 뒷편에는 '대웅전'을 건축하고 있단다.
내벽사면벽화(內壁四面壁畵) '극락보전' 내 31점의 벽화중 아미타여래삼존벽화와 백의관음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에 옮겨져 있다. 극락보전 좌우 벽면에 봉안한 아미타내영도와 설법도는 모사도이다. 성보박물관의 벽화를 내벽사면벽화라 하는데, 18~19세기에 그려졌지만 세련된 필치와 선명한 색채에서 15세기 벽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