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100곳이 넘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온전하게 법등(法燈)을 이어온 절은 하나도 없는 실정 이다. 지금 절들은 근래 옛터에 다시 지은 것들이며 내가 찾은 보리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남산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보리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불국사( 佛國寺)의 말사(末寺)이며, 남산에 있는 절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절의 창건시기와 구체적인 사적에 대해서는 전해오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장대한 세월에 묻히 고 역사는 산산이 흩어져 온전한 모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 라 헌강왕(49대, 憲康王)과 정강왕(50대, 定康王)의 능이 보리사 동남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경내에 석조여래좌상과 복원된 3층석탑이 있어 신라 때 절임을 가늠케 할 뿐이다. 허나 정강왕 릉과 헌강왕릉의 위치도 확실한 것이 아니라서 이곳이 신라 때 보리사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 五里霧中)이다.
현재 보리사는 1911년 포항 보경사(寶鏡寺)에서 온 박덕염(朴德念) 비구니가 세운 것으로 절단 되어있던 미륵곡 석불의 머리와 광배를 이어 붙였으며, 1932년에는 남법명(南法明) 비구니가 중 수했다. 1977년 추묘운(秋妙雲)이 주지로 머물면서 3~4년에 걸친 불사 끝에 현재의 면모를 지니 게 되었다. 원래는 지금보다 약간 위쪽인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주변이 경내 중심이었으나 1981 년 지금의 자리로 약간 내려왔다.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산신각, 범종각, 육화당 등 6~7동의 건물을 지녔으며, 비구니 사찰이 라 경내는 깔끔하고 단아하다. 대웅전 앞뜰에는 잔디를 곱게 입혔고 그 사이로 돌을 심어 각 건 물을 이어주는 돌길을 내었다. 자투리공간에는 온갖 화초를 심었으며, 여승의 보살핌을 받은 꽃 들은 한참 꽃망울을 피워 그들의 은혜에 화답한다. |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남산에서 가장 우수한 명품 석불로 꼽히는 석조여래좌상이 있으며, 경내에 서 조금 떨어진 남쪽 바위에 마애석불이 있다.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곳에 오르면 배반평야와 낭산(狼山), 토함산이 두 눈에 바라보인다. 비 록 높이는 낮지만, 꽤 높은 곳에 올라 천하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절을 에워싼 싱그러운 소나무의 솔내음과 아늑하고 조용한 산사 분위기, 그리고 미륵곡 석불의 인자함과 우아함이 배여 있는 보리사, 속세에 찌든 마음의 여유를 찾기에 이만한 곳도 없을 것 이다. |
※ 남산 보리사 찾아가기 (2015년 10월 기준) ① 경주까지 * 서울역, 광명역, 천안아산역, 대전역에서 부산행 경부선 고속전철 이용 (신경주역 하차) * 청량리역, 양평역, 원주역, 제천역에서 경주, 부전행 무궁화호 열차 이용 (1일 2회 운행) * 동대구역, 부전역, 해운대역, 태화강역에서 경주행 무궁화호 열차 이용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동서울터미널에서 경주행 고속/직행버스가 30~50분 간격으로 떠난다. * 인천, 고양, 의정부, 부천, 성남, 수원, 춘천, 원주, 청주, 전주, 구미, 안동, 창원, 대구(동 부, 서부), 부산, 울산에서 경주행 고속/직행버스 이용 ② 현지교통 * 경주시외터미널 건너편, 경주고속터미널 건너편, 경주역(경주우체국)에서 11번 시내/좌석버스 를 타고 갯마을 하차, 도보 12분 * 신경주역에서 50, 51, 60, 61, 70, 700번 시내버스를 타고 경주시외터미널 건너편이나 경주역 (경주우체국)에서 11번 버스로 환승 * 보문관광단지와 불국사, 불국사역에서 10번 시내버스를 타고 갯마을 하차 ② 승용차 (경내까지 진입 가능) * 경부고속도로 → 경주나들목을 나와서 직진 → 고운교 직전에서 문천길로 우회전 → 화랑교 직전, 갯마을에서 우회전 → 보리사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산 67 (갯마을길 41-30 ☎ 054-748-0794) |
보리사 경내 뒤쪽, 담을 두르고 있는 한층 높은 곳에 보리사에 든든한 밥줄, 미륵곡 석조여래좌 상(석불좌상)이 동쪽을 바라보며 자리해 있다. 동남산을 대표하는 석불로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1,300년이란 나이가 정말 무색할 정도로 정정한 모습을 지녀 보는 이로 하여 금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 장대한 세월 동안 그를 괴롭힌 존재가 한둘이 아닐진데 어찌 저리 멀 쩡할 수가 있을까? 그의 건강비결이 사뭇 궁금해진다. 물론 그에게도 적지 않은 시련은 있었다. 그를 관리하던 절― 보리사로 단정지울 순 없음―은 거친 세월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현재 보리사가 터를 닦기 전에 는 불상의 머리와 광배가 몸통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품이 있는 신라의 귀족 여인을 모델로 한 것을 아닐까? 우아한 기품과 인자함이 서린 그의 표 정은 보기만 해도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기분 같아서는 그를 보쌈하여 우리집에 갖다놓고 싶지 만 그를 업다가는 자칫 내가 그에게 깔려 골로 갈 상황이니 감히 그러지도 못한다.
|
신라의 미소로 손색이 없으며, 남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으로 내세워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 는 미륵곡 석불은 신라 불상의 백미(白眉)라 일컬어지는 토함산 석굴암(石窟庵) 본존불과 크게 대비된다. 석굴암 본존불은 미소라기보단 나 같은 범인(凡人)들은 차마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위엄이 서려있다. 그 앞에서는 차마 두려워 머리를 조아리기 바쁠 것이다. 그에 반해 미륵곡 석 불은 그 누구라도 기꺼이 안아주고 보듬어 줄 것 같은 대인적인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그가 앉은 연화대좌(蓮花臺座)도 그를 닮아서인지 돌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아름답다. 마치 살 아있는 연꽃이 하늘로 향해 꽃봉오리를 펼쳐보이는 모습은 진짜 연꽃도 시샘할 정도이다. 대좌 높이는 약 1.35m로 그 밑부분에는 땅을 향해 꽃잎을 펼친 연꽃이 묘사되어 있다. 석불이 잠시 마실을 나간 사이에 살짝 앉아보고 싶지만 그가 좀처럼 일어날줄 모르니,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앉아 있는 그는 앉은키 높이가 2.4m로 그의 머리는 나발(螺髮) 이다. 부처가 인도 사람이다보니 인도 사람의 머리스타일을 취한 것이다. 머리 꼭대기에는 육계 가 큼지막하게 솟아 있다. 내면에서 우러나온 미소가 만면에 가득한 그의 얼굴을 살펴보면 가늘고 긴 눈썹 아래로 지그시 뜬 두 눈이 속세를 바라본다. 넓직한 이마 가운데로 둥그런 백호가 있으며, 코는 오목하고 적당 한 크기이다. 미소가 서린 입은 정말 단아한 모습으로 정말 훔치고 싶은 입술이다. 볼은 두툼하 고, 다소 두터워 보이는 목에는 삼도가 획 그어져 있으며, 그의 몸을 걸친 법의(法衣)는 주름이 섬세히 표현되어 있다. 다리 위에 사뿐히 놓은 그의 왼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상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