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은 1939년 3월 어느 날 청년 박정희를 만났다. 그때 박정희는 20대 초반으로 아주 적극적인 사고를 지닌 청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처음 박정희 청년을 김구 선생에게 소개해준 사람이 김정균의 친한 친구인 신영학이라는 친구다.
신영학을
통해 소개받은 김정균은 박정희 청년의 뚜렷한 역사의식과 조국 광복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김구 선생에게 소개를
하였다. 그때 박정희를 처음 본 김구 선생은 박정희를 1시간동안 부동자세로 세워 두었다. 김구 선생이 본 박정희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부릅 뜬 두 눈을 보고는 멈칫 놀랐다고 박정희가 나간 후에 김정균한테 말했다고 김정균은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
청년은 1시간 부동자세로 서 있었지만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김구 선생이 박정희 청년을 세워두고 외출을 하여 40여 분만에
돌아 왔으나 박정희는 그때까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 김구 선생은 박정희가 서 있는 자리에 비밀 표시를 해 두었다.
그랬는데 박정희는 그 자리에서 1cm도 움직이지 않고 1시간을 서 있었다.
거기에 감탄한 김구 선생은 박정희 청년이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후에 그곳에 모인 광복군 동지들께 말했다고 김정균은 기록하고 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김구 선생은 박정희를 예의 주시 하고 있었다.
"아마 1945년에 광복이 못되고 했더라면 박정희는 김구 선생을 도와 일을 했을 것이다."라고 김정균은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이 박정희를 만주 군관 학교를 보낼려고 하였으나 박정희 청년이 적을 알아야 한다며 굳이 일본군 사관학교에 입학을 하였다고 김정균은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가 일본군 사관학교에 다니면서도 일본군의 무기정보 일본군의 전술공부 등 많은 정보를 김정균에게 알려 주었다.
박정희 소좌가 일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선양으로 떠날 때도 김정균한테 알려 주었다. 김구 선생은 박정희 소좌가 선양으로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김정균은 기록하고 있다.
김정균과 박정희 소좌는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일본군의 동태, 작전능력, 병력이동 계획을 알려 주었다고 김정균은 기록하고 있다.
★ 김정균 - 상해임시정부 비밀첩보원. 남의사 소속의 왕정국, 산서성 총사령관 염석산과 더불어
독립 운동을 함. 해방 후 김구의 비서를 지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