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
이미영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음이 저절로 졸여 두렵기까지 하다. 보고 싶어서 찾아간 날도 곁눈질로 슬쩍 비켜 나온다. 그래도 그가 자꾸 생각나서 토함산을 오른다. 그를 처음 만난 날이 지워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졸업여행이었다. 불국사, 첨성대도 기대되지만, 석굴암은 상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꼬불꼬불 산모롱이를 지나 동해가 보이는 굴속에 앉아있다는 부처님이 신기하다. 남자아이들은 이마에 붙은 다이아몬드가 일출 때마다 번쩍거린다고 한다. 대형 관광버스를 꽉 채운 6학년 6반 아이들은 구불구불한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한목소리로 “하나, 둘” 하며 굽잇길을 센다. 내 짝 은주는 버스가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다며 손으로 눈을 가린다.
서너 명씩 짝을 지운 친구들이 석굴암을 향해 모롱이 길을 걷는다. 돌계단을 올라 산에 반쯤 달라붙은 절집 앞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부처님 이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는 둥 금강역사의 주먹이 바위만 하다는 둥 떠들썩하게 굴속으로 떠밀려 들어간다.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쏟아진다. 컴컴한 조명 안으로 빨려 들어갈까 봐 엉덩이가 자꾸 뒤로 빠진다. 종알거리던 반 친구들이 순식간에 합죽이가 된다. 웅장한 돌부처가 살아서 시선을 내리쏜다. 착한 어린이인지 감별하는 것 같아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커다란 돌덩어리의 위엄에 짓눌려 발을 떼기도 힘들다. 무섭고 두려워서 친구의 손을 꼭 붙들고 나온다.
석굴암을 빠져나와 한참 만에 숨을 몰아쉰다. 친구들이 조용해졌다. 거대한 부처님이 내 겉과 속을 꿰뚫어 본 듯하다. 굴속에 무엇이 더 있는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6학년짜리 아이를 조이는 돌부처의 응시만 또렷하다.
태풍 마이삭이 꼬리를 감추는 이른 아침 불국사 옆으로 난 등산로가 아른거린다. 큰바람이 훑고 지나간 토함산의 산 내음이 그립다. 나무젓가락처럼 꺾인 둥치와 흘러내린 토사 때문에 산길은 통제되었다. 40년 전 친구들과 수학여행 버스를 타고 오르던 굽잇길을 처음으로 옆지기와 걸어 오른다.
지나가는 태풍의 여운인지 뒤따라온다는 다른 태풍의 예고편인지 비바람이 오락가락한다. 토함산은 연중 130일 넘게 안개에 휩싸인다더니 그 영향인가. 우의를 꺼내 입고 등산 스틱도 높이를 맞춘다. 차로 다닐 때보다 경사를 느끼지 못하겠다. 아슬아슬하던 낭떠러지는 숲이 먼저 다가와 오히려 포근하다. 부처님과 석굴암의 석재들을 이 길로 날랐을까. 곧게 자란 소나무 한 그루를 베어 서까래로 올리고 튼실한 놈으로 골라 기둥을 세웠을까. 차에서는 보지 못한 광경을 두 다리로 본다.
지난 여름휴가 둘째 날 석굴암 주차장에서 일출의 장관을 만났다. 해발 650m의 높이라 그런지 무릎담요를 뒤집어쓰고 해돋이를 기다린다. 이때면 석굴암 부처님 이마에서 빛이 난다고 6학년 6반 친구들이 말했지. 수면 위로 붉은 전조를 띄우더니 시뻘건 불덩이가 솟아오른다. 번번이 곁눈질에 그치지만 자꾸 가고 싶은 그곳. 제대로 그 앞에 서야겠다는 마음이 붉게 물든다.
석굴암에 대한 어린 시절의 전설에서 벗어나려고 책장을 넘겼다. 본존불 외에는 깜깜하던 것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석굴의 기본평면은 전방후원前方後圓구조이다. 네모난 전실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이 한쪽에 네 분씩 마주 보며 서 있다. 주실로 통하는 좁은 길 앞 좌우 벽면에는 근육질을 자랑하는 인왕역사가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비도扉道라고 불리는 좁은 복도에는 사천왕이 두 분씩 마주 본다. 무복 차림으로 악귀를 밟고 선 자세가 늠름하기보다 익살스럽다. 전실의 팔부신중보다 세련되고 아름답다. 신라 석공들이 돌을 깎아 생명을 입힌 주실 조각들의 예고편이다.
부처님을 모신 원형의 방으로 들어가자면 이단 연꽃으로 수놓은 팔각기둥을 지난다. 입구 왼쪽에는 대범천이 오른쪽에는 제석천이 하늘거리며 서 있다. 그리스 여신처럼 얇은 옷에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하고 화강암 위에 단단히 새겨져있다. 이들 옆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흘러내릴 듯 보드라운 돌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여민다. 그 시절 신라 귀부인들의 자태를 상상해본다. 보살상 옆으로 부처님의 십대 제자들이 삐쩍 마른 몸을 하고 늘어서있다. 주실의 정면이자 본존불의 바로 뒷자리에는 십일면관세음보살이 소녀티를 간직한 채 본존불을 응시한다. 부처님의 등 뒤를 곱게 단장한 소녀가 지키고 섰다. 둥근 방 전체가 한들거리는 돌 옷을 입은 불상들의 향연이다.
조각의 잔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살상과 십대 제자들의 위쪽, 본존불의 정수리 높이에 열 곳의 감실을 만들어 열 구의 좌상을 조각하여 모셨다. 이들 중 두 구는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어 지금은 텅 비어있다. 나는 부처님 오른 어깨 뒤쪽 감실에 앉은 유마거사를 오래 쳐다보았다. 안개 비바람을 맞으며 1시간 30여 분을 걸어올라 석굴암에 들어선다. 본존불을 직면하러 기를 쓰고 왔는데 그보다 희미하게 보이는 유마거사의 바람머리와 깎다 만 것 같은 새김을 뚫어지라 살핀다.
서너 발자국 앞도 분간할 수 없어 고갯길이 끝났는지도 몰랐다. 동해가 어디인지 석굴암 매표소가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다. 운무가 바람을 타고 파도친다. 몇 굽이를 지나 돌계단 앞에서 숨을 고른다. 절대 떨면서 도망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유리 벽 너머 부처님은 장대하지 않았다. 조명을 받으며 가지런히 앉은 모습은 차라리 정갈한 청년이다. 굳은 눈매와 침묵으로 다져진 입술, 헬스장에서 정성껏 가꾼 듯 속 근육이 느껴지는 어깨와 허리, 긴 세월 가부좌에도 끄떡없는 허벅지가 아름다운 젊은이 모습이다. 레이저가 나올 것 같았던 매서운 눈매가 아니라 삶은 냉엄한 것이라고 깨우쳐주는 눈빛이다.
이제 그가 무섭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껏 천년의 세월동안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청년이 아닌가. 비바람을 견디고 겨우 그 앞에 선 나는 예전의 꼬맹이가 아니다. 굽잇길을 허덕이며 걸어온 중년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냉담했던 돌부처가 담담하게 보인다. 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연화대좌에 앉은 부처님 주위를 한 바퀴 돈다면 다시 예전처럼 두려움에 휩싸일까. 아니다. 경건하게 받아들일지언정 무서워 떨 일은 없다. 그래서 본존불 뒤 조그만 감실에 앉은 유마거사에게 끌리나보다. 짓다 만 흙덩이 같은 그를 자꾸 쳐다보게 되나 보다. 모자란 듯 애틋해서 나를 보듯 쳐다본다.
첫댓글 석굴암 부처님과 눈밎추러 다시 가뵈야겠네요.
오래 전 해가 솟기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던 젊은 날의 기억이 새롭게 되살아납니다.
그 청년 여전히 잘 있겠지요.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멋질겁니다
허벅지 아름다운 청년상.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와 겨룰만할 듯.
이 청년은 가릴데 가리는 예의를 장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