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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민을 위한 사법입니다.
8월 19일, 지인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다녀오며 예기치 않게 야간열차를 이용하여 광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지인을 만나고 하룻밤을 서울에서 묵은 뒤 20일 용산역을 08시 55분에 출발하는 새마을호 열차의 특실을 이용하여 광주로 오는 것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이날 이른 아침에 병원의 예약이 잡히게 되어 새벽 시간에라도 귀가하라는 본가의 연락을 받고 급거 일정을 변경하여 심야열차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심야우등고속을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보았지만, 아직까지 서울-광주 구간에서 심야열차를 이용해 본 적이 없는데다가, 이미 구입을 해 둔 용산-광주송정간 새마을호 열차의 승차권을 제때 반환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역을 들러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철도를 선택하였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용산발 광주행 무궁화호 제1427열차를 이용한 기록으로, 광주-서울간 여정은 개인 차량을 이용하여 이동한 관계로 사진을 촬영하지 않았습니다.
19일 저녁 8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지인의 집에서 TV 뉴스를 보며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집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 예약이 내일 아침으로 정해졌으니 지금 바로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에는 '허걱-_-;'이라는 글자와 이모티콘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지인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황망히 복장을 갈아입고 출발 준비를 하였습니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지 고민하다가 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열차를 이용하기로 최종 결정을 하고, 21시 30분경 지인의 집을 나섰습니다. 2003년 1월 난생 처음 청량리-영주 구간에서 심야열차를 이용해 본 뒤 오늘이 두 번째로 심야열차를 이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철을 타고 가며 용산역으로 향하는 마음은 무척 들떠 있었습니다. 광주에 도착해서도 거의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병원에 가야 할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당장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용산역에서 20일 이용하려고 했던 새마을호 열차의 승차권을 반환하고 재발권한 승차권입니다. 반환 수수료 규정에 따라 5%의 수수료가 붙을 것을 예상했는데, 재발권을 하니 기본 수수료 400원도 붙지 않고 차액(용산-광주송정 새마을호 특실 평일 운임 35,300원-용산-광주 무궁화호 일반실 평일 운임 21,400원=12,700원)을 온전히 반환받을 수 있었습니다.
출발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예약 없이 현장 발권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 좋은 좌석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물어나 보자는 생각에 하행선의 무궁화호 일반실에서 가장 선호하는 좌석인 37호석(객실 내 중앙에 위치하면서 창틀에 시야가 가리지 않고, 서쪽을 바라볼 수 있는 창측 좌석)이 있는지를 질문해 보았습니다.
매표사원님도 '지금 시간에는 그런 좋은 좌석은 없을 것 같네요..'라고 말하며 1호차부터 순서대로 37호석을 검색해 보았는데, 뜻밖에도 6호차에서 이 자리가 발권되었고, 저와 매표사원님 모두 놀랐습니다. 이래서 삶은 모르는 것이라고 하나봅니다. 하여튼 반환 수수료가 붙을 것이라는 예상과 좋은 좌석을 이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모두 기분좋게 빗나가면서, 무척 즐거운 마음으로 야간열차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개표가 시작되어 승차홈에 내려갔지만, 아직 열차는 들어와 있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시작하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역내 매점들이 모두 문을 닫아 신문을 구입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항공, 철도, 고속버스 등을 이용한 장거리 여행을 할 때에는 탑승 전 언제나 신문을 필수 지참하였기 때문에, 신문을 사지 못했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이럴줄 알았다면 신용산역에서 용산역으로 걸어올 때 문을 열었던 수퍼마켓에서 신문을 사올걸..'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가 타고 갈 광주행 무궁화호 제1427열차가 승차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7349호 기관차가 견인기로 수고해 주겠습니다.
서울<->광주 구간에서 무궁화호를 이용하는 것은 2005년 7월 14일 용산-송정리(현 광주송정) 구간에서 제1435열차를 이용한 뒤로 4년 1개월 5일만이었고, 실로 오랜만에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날 이용한 차량은 한진중공업 1995년 제작 차량인 12085호였습니다.
무궁화호 일반실 좌석입니다.
무궁화호 일반실 좌석 측면입니다.
제작사와 제작 연도를 알려 주는 패찰입니다.
차량고유번호 12085호.
서비스룸 벽의 좌석 수 패찰
서비스룸. 뒤의 5호차는 신조객차였지만, 신조객차의 비선호 좌석보다 구형 객차의 37호석을 이용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각도를 달리하여 다시 한 번
출발을 기다리는 객실의 분위기는 무척 차분했습니다. 뒤의 5호차는 출발역부터 이미 거의 만석을 이루고 있었는데, 제가 이용한 6호차는 저와 같이 전구간 완주를 하는 승객은 최소한 제가 확인한 범위 안에서는 한 명도 없는 듯했고, 영등포, 수원에서 승차한 단거리 구간 승객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종착역인 광주역에서 하차할 때에도 다시한번 확인하였는데, 장거리 이용 승객과 단거리 구간 이용 승객이 이용할 호차를 처음부터 분담하여 발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 봅니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저는 37호석을 이용하기 위해 이 객차를 탑승한 예외적인 경우가 되겠습니다.
좌석에 앉아 발을 쭉 뻗어 보니, 가운데의 좌석 구조물과 방열판이라는 장애물만 피하면 걸리는 것 없이 온전히 다리를 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좌석에 앉아 출발을 기다립니다.
조용한 객실의 분위기.
용산역을 정시(23시 10분)에 출발한 열차가 한강철교를 건너고 있습니다. 철도여행의 시작을 실감하는 즐거운 순간입니다.
열차가 영등포역에 정차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도 많은 승객들이 승차합니다. 탑승 전에는 심야열차여서 공기수송을 하지나 않을까라는 염려를 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기우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등포역을 출발한 열차가 구로역 구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열차가 금정-의왕 구간에서 이날의 마지막 천안행 전동열차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승차권 반환 및 재발권을 하기 위해 용산역 맞이방에 막 들어섰을 때 '오늘의 천안행 마지막 전동열차는 방금 우리 역을 출발하였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왔는데, 그 열차를 이곳에서 만나는군요.
열차가 수원역에 정차하고 있습니다. 수원역에서는 열차에 승차하는 승객들만큼이나 내리는 승객들도 무척 많았습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용산-수원간 구간 승객이 많을 타이밍이기도 합니다.
MT를 떠나는 것인지 다녀오는 것인지, 아니면 MT아닌 다른 여행을 하는 학생들인지 모르겠지만, 대학 신입생쯤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청년들이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하나같이 유쾌하고 기분좋아 보이는 얼굴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대학 생활을 하며 농활이나 MT, 신입생 OT 등에 참석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저렇게 여행을 하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가져 봅니다. 대표적인 MT 여행객들의 이용 구간으로 꼽히는 경춘선 역시 아직까지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MT는 됐고 훗날 여자친구를 만날 때 춘천을 다녀와 볼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겠다..
열차가 천안역에 정차하고 있습니다. 이미 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어서 천안역의 분위기는 쥐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수원 출발 뒤 쏟아져 오는 잠을 참던 도중 '우리 열차는 잠시 후 평택역에 도착하겠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들었는데, 어쩐지 방송이 나온 뒤에도 너무 오랫동안 정차를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뜬 순간, '우리 열차는 잠시 후 천안역에 도착하겠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결국 평택 도착 직전부터 천안 도착 직전까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ㅎㅎ
잠이 든 사이 발은 이렇게 아무렇게나 좌석 구조물 사이에 구겨넣어 놓고;;ㅎㅎ
토막잠 뒤의 한결 상쾌한 기분으로 명상을 즐기다 보니, 열차는 어느새 조치원역에 도착합니다.
즐겁게 이야기하며 기차여행을 즐기는 학생들. 처음 수원에서 승차하는 모습을 보고 시끄러운 대화 등으로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성숙한 질서의식을 가진 학생들이어서 그런 점은 없었습니다.
앞의 역에서 내린 승객이 풀 리클라이닝을 한 것도 모자라 좌석을 제자리로 돌려 놓지도 않고 하차를 하는 바람에 피해를 본 아저씨. 저의 앞좌석은 창측과 복도측 좌석 모두 용산-광주 전구간에 걸쳐 이용한 승객이 없어, 그러한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여행 내내 왼손은 이런 자세로
오른손은 이렇게 걸치고 명상을 즐깁니다.^^
신탄진역 정차중, 부산발 서울행 제1224열차와 인사를 나눕니다.
열차가 논산역에 정차하고 있습니다. 상행선 승차홈에는 불이 꺼져 있는 모습입니다.
서대전을 지날 즈음 배가 고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참아 보려고 했으나, 저녁을 냉면으로 대신하는 바람에 허기가 심하게 느껴져서 결국 카페객차에서 군것질거리를 사 왔습니다. 4호차인 카페객차에서 저의 객차인 6호차로 돌아오는 길에 찍은 5호차의 객실 풍경입니다.
카페객차에서 구입한 호두과자(5,000원), 소시지(2,500원), 캔맥주(1,800원)입니다.
이 날(20일) 낮에, 우연히 집 근처의 할인마트에 들렀다가 열차에서 판매하는 품목과의 가격 비교를 해 보았는데, 마트에서는 사진 속 맥주와 동일한 브랜드의 캔맥주를 1,250원에, 역시 비슷한 크기의 소시지를 1,000원에, 열차에서는 3,000원에 판매하고 있는 샌드위치를 1,300원에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본 뒤, 후일 열차를 이용할 때에는 적절한 운반 수단(가방 등)만 지참하고 있다면 열차 내 구입을 하지 않고 마트에서 구입을 하여 승차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열차 내 판매라는 특수한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품목에 따라 최대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지불하면서 열차 내 구입을 할 생각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기차여행을 하며 맥주를 즐기는 그 기분은 언제 느껴 보아도 즐겁습니다.
강경역 정차중 맥주 한 캔과 함께하는 기차여행. 캬아~
열차에서 캔맥주를 즐기다 보니, 문득 2007년 1월 체코 프라하(Nadrazi Holešovice - 나드라찌 홀레쇼비체)발 오스트리아 빈(Wien Südbahnhof - 쉬드반호프, 남역)행 InterCity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행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사진을 찍어 둔 기억이 나서 나중에 집에 도착하여 찾아 보겠다고 마음먹었고, 소장하고 있는 유럽여행 파일을 뒤져 위 사진을 찾아 냈습니다.
여담으로 프라하에서 빈까지는 인터시티로 약 네 시간이 소요되는데, 오스트리아 진입 직전의 국경역에서 6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같은 칸 승객들이 모두 하차를 하여 빈까지의 남은 구간을 혼자서 전세내어 간 추억이 있습니다. 위 사진을 찍은 순간은 혼자 객실을 이용하며 오스트리아 구간을 달리던 때로, 조금 남았던 체코 돈을 모두 사용하기 위해 프라하 중앙역에서 구입하였던 사진 속 맥주를 마시며 차창 밖 야경을 바라보던 저 순간에는 '사람이 자기 삶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던데 지금 이 순간은 정말 진심으로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사진 속 맥주와 함께 빵을 씹으며 여행하던 저 순간은 제 인생을 통틀어 몇 손가락에 꼽을만한 '행복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나저나.. 여행기 1부만을 작성하여 올려 놓고 사진만 보관하고 있는 유럽 여행기는 언제쯤 끝을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열차가 익산역에 정차하고 있습니다. 원래 조용했던 객실이었지만, 익산역에서 몇 명의 승객이 하차한 뒤 객실은 아무런 대화도 없이 고요해졌습니다.
열차가 익산역을 출발하자 다시 잠이 쏟아져 왔습니다. 이번에는 잠을 참지 않고 곧장 잠시동안의 꿈나라 여행을 다녀온 뒤 눈을 뜨니, 빠르게 달리는 열차의 둔중한 주행음과 조용한 객실의 풍경이 현실 세계에서 저를 맞이했습니다. 용산역을 출발할 때만 해도 객실의 분위기는 나름 활기를 띠고 있었는데, 종착역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초심야 열차의 객실은 이렇듯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사진 속에서 열차는 종착역인 광주역을 앞두고 장성역에 정차해 있습니다.
열차는 예정된 도착 시각(03시 29분)보다 3분 빠른 03시 26분 광주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제가 이용한 12085호 차량입니다.
제가 이용한 6호차는 종착역에 도착할 때 승객이 거의 없었지만, 1~5호차에서는 상당히 많은 승객들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광주까지 수고한 기관차 7349호. 이 사진을 찍은 뒤 해방되어 홀로 자신의 길을 나아갑니다.
1번홈에 서 있는 용산행 고속철. 5시 15분에 출발하는 제502열차로 운행할 것입니다.
온세상이 잠들어 있는 시간, 자신의 마지막 목적지를 향하는 승객들.
택시를 타기 전 광주역을 바라봅니다. 집까지의 택시비는 심야 요금이 적용되어 7,800원이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