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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초록(그린)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색의 인문학>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역사 속에서 녹색의 존재감, 상징성
시기 및 의미 | 존재감, 상징성, 현상 | |
"중간 정도의 색" (로마시대나 중세, 18세기 후반에 출간된 괴테의 색채론>에서) | -폭력적이지 않고 평온한 색 -괴테는 파란색을 좋아했지만, 벽지를 바르거나 거실 내부를 장식할 때, 특히 침실을 꾸밀 때는 녹색을 권함. 그는 녹색이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고 믿음. -제례에 사용할 색을 체계화했던 신학자들도 같은 생각을 함. 일찍부터 녹색은 축일이나 기념일이 아닌, 평범한 일요일의 색으로 정해짐 | |
녹색 안료의 불안정성 | 녹생은 염료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으나 쉽게 변색되는 경향이 있고, 합성 안료인 녹청은 독성이 있었음. 따라서 녹색은 어떤 기술을 적용하느냐와 상관없이 불안정하고 위험한 색이었음 | |
"불안정성"을 상징하는 초록 | -초록은 움직이고, 변하고, 바뀌는 모든 것을 나타냄 -우연, 유희, 운명, 숙명, 행운의 색임 -봉건 시대에 결투를 하거나 죄를 물어 상대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성 재판이 이루어진 곳은 바로 녹색의 초원이었음. 그 당시의 광대, 곡예사, 사냥꾼들은 초록색 옷을 입었음. | |
녹색은 젊음의 색이며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색 | 사랑은 변덕스러움. 막 싹튼 사랑을 "아직 천국의 녹색이네"라고 표현하기도 함. | |
게임이나 노름의 색 | -16세기부터는 도박장에서 녹색 펠트를 두른 탁자 위에서 카드놀이를 함. -17세기에는 궁정에서도 녹색 탁자 위에서 노름을 즐김. 녹색 위에서 돈, 카드, 베팅한 칩이 사방으로 날아다님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 기업의 운명이 결정되는 관청 회의실의 탁자도 대개 녹색이고, 스포츠 경기장도 마찬가지임. 물론 잔디의 색이 녹색이기 때문만은 아님(테니스 코트나 탁구대의 색깔 등) | |
돈의 색깔 | 색의 선택에 우연이란 없음, 중세 시대에 돈을 상징하는 색깔은 금색이거나 은색이었음. 1792년과 1863년 사이에 제작된 최초의 달러 지폐가 시중에 유통되었을 때 초록색은 이미 도박을, 더 나아가서는 은행이나 재정을 연상시키는 색으로 받아들여짐. 인쇄업자들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상징체계를 연장한 것뿐임. | |
파랑과 노랑 사이의 색깔 | -적어도 17세기 이전에는 파랑과 노랑을 섞어 초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음. 식물성 염료를 통해서 초록을 얻을 수 있었음 -가장 널리 알려진 색 분류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안함. 가장 연한 색에서 가장 진한 색에 이르며, 흰색,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음. -색들의 질서에 새로운 분류가 제안된 것은 뉴턴의 빛의 스펙트럼 발견 이후임.(가시광선-무지개색)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파랑과 노랑을 섞어 초록을 만들게 됨 | |
단색과 혼색의 가치 차이 | -18세기의 과학자들은 노랑, 파랑, 빨강의 3가지 원색과 초록, 보라, 주황의 보색을 구분함. 과학적 근거는 부족했지만 19-20세기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침 -수많은 미술 유파들이 원색으로만, 경우에 따라서는 하양과 검정으로만 작업하겠다고 선언함. (현대의 디자인학파, 특히 바우하우스 학파는 색채와 사물의 기능의 조화를 주장했으며, 기하학적 패턴과 원색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음. 그들은 순수한 색과 불순한 색,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 정적인 색과 동적인 색이 있다는 주장도 펼침) -초록은 이렇게 부차적인 색으로 격하되어 시련이 많았음. 몬드리안 같은 모더니즘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 활동에서 초록을 추방함. 과학적 이론에 부합해야 한다는 구실로, 예술이 초록을 색채의 세계 밖으로 쫓아내 버린 것임 | |
원색과 보색 이론이 불러온 초록의 또 다른 상징체계 | -18세기 과학자들이 주장한 이론은 실생활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사실과 동떨어진 것임.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색의 가치나 상징의 모든 시스템을 부정하고, 색이 문화적 현상이라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은 이론임. 역사 자체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줌.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 잘못된 이론이 초록의 또 다른 상징체계를 불러옴 -초록이 금지의 색인 빨강의 '보색'으로 간주되는 바람에 오히려 '허용'의 색으로 자리매김하게 됨, (1800년대부터 제기된 이런 인식 덕분인지 선박의 국제 표지 체계를 만들 때 초록이 상징색으로 채택되고, 나중에는 기차와 자동차의 표지 체계에도 적용됨. | |
초록색과 자연의 연관성 | -현대의 도시 사회는 초록을 자유, 젊음, 건강의 상징색으로 삼음. 고대와 중세, 심지어 르네상스 시대에조차 초록은 자연과 연관이 없는 색이었음. -18세기까지 사람들은 자연이 물, 불, 공기, 흙 등 사원소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함. -녹색을 자연과 처음으로 연결 지은 것은 초기 이슬람이었던 것으로 추정함. 마호메트 시대에 모든 녹색 장소는 오아시스나 낙원과 동의어였음. 마호메트 자신도 녹색 터번을 두르길 좋아했고, 메카를 정복한 전쟁에 녹색 깃발을 가지고 나갔다고 함. 녹색은 이슬람 세계에서 신성한 색이 됨.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적대적 시기를 살았던 기독교인들은 녹색의 가치를 더 낮게 평가한 것으로 보임 | |
서양에서 녹색과 자연을 연관 지은 사례 | -19세기 후반, 식물성 약재를 주로 사용하던 약제사들이 식물 상징의 초록을 약국 십자가의 색으로 선택함(이탈리아에서는 약국 십자가가 적색,프랑스에서는 청색을 사용하기도 함) -식물 상징의 녹색은 환경이나 위생을 상징하게 됨(파리에서는 길거리 휴지통, 쓰레기차, 도로 청소부의 옷 색깔도 녹색임) -녹색은 흰색과 더불어 더러움의 대척점에 서는, 현대의 색채 가운데 가장 위생적인 색이 됨 -몇 해 전부터는 가히 광풍이라 할 정도로 마을, 도시, 지역의 로고나 문장에 녹색 바람이 불고 있음 | |
-최근의 여론 조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파랑 다음으로 녹색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남, 요즘은 녹색을 '녹색 번호(통화료를 물지 않는 전화번호)'의 경우처럼 '무료'의 개념과 결부하는 것 같음. 이처럼 현대사회는 오랫동안 '혼란'과 '위반'의 상징이었던 녹색을 완전히 재평가함. 녹색은 이제 자유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음 |
에드워드 호퍼, <좌석이 있는 객차>중 일부, 1965
자연에서 바라볼 때 초록은 평화롭고, 안온하며, 유쾌한 색처럼 보인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녹색은 불확실하고, 이상야릇하고, 때로는 불안하기까지 하다. 거기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초록을 만들어 내는 염료와 안료의 불안정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녹색은 혼자 있는 법이 없으며, 종종 '안정'이 아니라 '공포'를 일으킨다.
미하엘 파허, <교부들의 제단화>, 바깥쪽 오른편 패널("악마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악의 책을 보여 주다"),1480년경
중세 시대에는 악마가 그림에서 어떤 색으로든 그려질 수 있었다. 하지만 로마 시대에 악마는 주로 붉은색이나 검은색으로, 고딕 양식이 풍미하던 시대에는 녹색이거나 초록빛이 도는 색으로 그려졌다.
성 십자가 교회의 장인, <성녀 도로테아 초상화>,15세기
중세부터 19세기까지 동화, 꿈, 미신 속에서 녹색 드레스는 마법의 드레스로서, 변신할 수 있고 남을 매혹하는 요정이나 마녀의 드레스였다. 초상화, 혹은 특이한 종류의 요정이라 할 성인(聖人)을 그린 초상화에서도 때때로 인물들이 녹색으로 치장되는 경우가 있었다.
좌: 하인리히 쿤, <풍경>, 사진, 1912-1915 우: 벽지 견본, 오스트리아, 비더마이어 시대, 1825
좌: 오랫동안 화가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녹색 안료에 대해 불만이었다. 테르베르트(천연의 흙에서 산출되는 녹색 안료)처럼 원 바탕을 완전히 가리기 힘들거나, 말라카이트(청록색의 염기성 물감)처럼 너무 비싸거나, 녹청처럼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힘들고 독성이 강한 것들뿐이었다. 화가들이 자연을 소재로 작업을 할 때 초록색을 정확히 표현하는 게 가능해진 것은 화학 염료 산업이 발달한 19세기 후반부터이다. 컬러를 사용한 사진가들은 초창기 화가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똑같이 겪었다.
우: 1820-1840년경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초록은 역사상 처음으로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 색으로 받아들여졌다. 실내 장식가들은 집 안의 휴식 공간에 녹색 벽지를 바를 것을 권했다. 괴테는 바이마르 시절에 자신이 머무는 방에 녹색 벽지를 바르게 했으며, 그가 쓴 [색채론](1810)에서 녹색이 유용한 색이라고 말했다.
펠릭스 발로통, <초록색 숄을 걸친 누드>, 1914
색채 표현의 대가 펠릭스 발로통은 초록을 훌륭하게 다룰 줄 알았다. 때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그의 초록은 대개의 경우 노골적이고 신랄하다. 그의 작품에서 초록은 종종 불안하고 전복적인 느낌을 드러내는데, 이는 화가가 청소년기에 겪은 비극적 사건과 연관이 있다. 지하실에서 녹청 가루가 원료인 안료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친구 중 한 명이 사망한 것이다.
미국 정치인들의 초상화가 그려진 여러 가지 달러 지폐, 20세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악마의 모습(부분)>,15세기
고딕 성당이 풍비하던 시대에 악마는 종종 녹색으로 묘사되었다. 중세의 동물 우화집에 등장하는 용, 뱀, 두꺼비 또는 끈적끈적하고 뿔이 나 있고 뱀 무의를 한 온각 잡종 피조물들은 대부분 초록색이었다.
에드바르 뭉크, <룰렛 테이블에서>, 1891
녹색은 일찍부터 '불안정성'과 관련된 것들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젊음, 사랑, 기대와 희망, 행운, 유희, 우연, 돈… 16세기부터 도박장의 테이블은 녹색 펠트로 둘러져 있었다. 그다음 세기에 유행한 프랑스어 표현 중 'langue verte(녹색 언어)"는 노름꾼들이 쓰는 은어를 뜻했다.
좌: 행운의 상징들, 1907년경 우: 르네 마그리트, <자연의 풍경>, 1940
좌: 유희, 우연, 성공의 상징색인 녹색은 행운의 마스코트 색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종 행운을 불러오는 돼지나 네잎클로버와 연관 지어 사용되었다. 하지만 행운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인 법.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녹색이 행운을 불러오기는커녕 불행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우: 서양 미술에서 사계절은 각각의 색을 가지고 있다. 봄은 초록, 여름은 빨강, 가을은 노랑, 겨울은 하양 또는 검정이다. 마그리트처럼 인습에 비순응적인 화가도 이 전통은 따랐다.
<예언자 마호메트와 모세>, 페르시아의 세밀화, 1436-1437
이슬람 세계에서 녹색은 신성한 색이다. 하늘과 물, 오아시스와 천국의 색이며, 또한 예언자 마호메트의 색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호메트는 녹색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녹색 외투를 즐겨 입었고, 정복 전쟁에도 커다란 녹색 깃발을 가지고 나갔다고 한다.
칵페르 코알스키, <봄날의 밭 풍경>, 항공사진, 2011, 폴란드
하늘에서 바라본 대지는 파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다. 비행기가 너무 높이 날지 않거나 유럽의 농촌 지역을 날고 있다면 말이다. 이 사진에서도 여기저기 하얗고 노랗고 붉고 갈색이고 회색인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녹색이 지배적이다. 즐겁게 감상하시길!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초록도 참 파란만장하게 인간들에게 애용 혹은 이용당한 색이었구나 싶다.
초록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 곤충의 피 색깔, 영화 속 괴물의 색, 헐크, 슈렉, 피터팬 등.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지폐 중 가장 널리 쓰이는 만 원도 초록 계열 색이다. ^^
자연의 초록색과 인공의 초록색은 비교불가인 듯싶다.
색이 한 가지가 아니고 다양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른 색들도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초록은 단색으로 쓰이면 굉장히 불안하고 공포스럽게 느껴지지만 적절히 다른 색과 어울리면 멋있는 색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