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자성해 지금이라도 쇄신하자”
<39> 이참정이 다시 묻는 편지
[본문] 지난날 선사께서 가르쳐주신 답장을 받고 깊은 뜻을 알았습니다. 이에 스스로 경험한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일에 대해서 거슬리는 점이나 순하는 점이나 간에 인연을 따라서 곧 맞추어서 가슴 속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숙세에 익힌 농후(濃厚)한 습기들을 물리치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고인들의 공안에 대해서 예전에는 아득하고 캄캄했는데 지금 다시 살펴보니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앞서 보낸 편지에 큰 법을 아직 밝히지 못했다는 말은 적은 것을 얻어서 만족해할까(得少爲足) 염려되어서 당연히 확장하고 충족시킬지언정(擴而充之) 어찌 달리 더이상의 수승한 이해를 구하겠습니까? 현행의 번뇌를 깨끗이 제거하는 일도 이치적으로는 없지 않습니다. 어찌 감히 좌우에 두고 생각하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지 않겠습니까?
깨달았다고 번뇌 한꺼번에 없어지나
평생 참선해도 웃음꺼리 될 수 있어
[강설] 참선수행을 하고나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으로서 공부의 효험을 세 가지로 정리한 답장이다. 첫째는 일상생활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만나는대로 그냥 수순하여 따를 뿐 그 무엇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은 없다.
불교가 가르치는 존재의 실상에 대한 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며칠씩 가슴에 남아 있다. 때로는 심한 병이 되어 몸을 망치고 마음까지 병이 드는 예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참정이라는 거사는 마음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하였다. 이것이 불교를 배우는 큰 효험이다.
둘째는 금생뿐만 아니라 과거 생에 익히고 익힌 온갖 번뇌업장과 습기들을 애써서 제거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제거되고 무거운 것은 또한 가벼워져서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모두가 전생에 익힌 업을 따라 금생의 삶을 영위해 간다.
인천 용화사에서 살던 때의 일이다. 정진하다가 목욕하는 날에 도반과 함께 시내에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데 함께 갔던 도반이 길을 가다가 따라오지 않아서 돌아가 보았더니 해병군악대가 연주를 하며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느라 정신을 잃고 있었다. 뒤에 들으니 자기도 해병대에 있을 때 그와 같은 군악대에서 근무했노라고 하였다. 업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셋째는 고인들의 공안에 대해서 예전에는 전혀 몰랐는데 깨닫고 나니 모든 것이 다 풀렸다는 것이다. “개가 불성이 없다”라는 화두라든지, “뜰 앞의 잣나무”라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든지, 곽시쌍부(槨示雙趺)라고 하는 등의 1700공안들이 모두 풀려서 모르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참정과 같은 정도의 공부효험은 반드시 있어야 하리라. 참으로 참선수행자, 특히 간화선수행을 인생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꼭 기억하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내용들이다.
평생 동안 참선했다고 자랑하면서 명예와 이익에 혈안이 되어서 다른 사람의 웃음꺼리가 되는 줄도 모르고 설친다면 평생 동안 공을 들인 참선공부는 모두 어디로 갔다는 것인가. 부디 깊이 자성하여 지금이라도 쇄신해야할 일이다.
편지에 “현행의 번뇌를 깨끗이 제거하는 일도 이치적으로는 없지 않습니다. 어찌 감히 좌우에 두고 생각하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지 않겠습니까?”라고 한 말은 앞장에서 언급한 바가 있는 것인데 떠날 때 얼굴을 마주하여 일러준 말이다.
즉 “이즉돈오 승오병소 사비돈제 인차제진(理則頓悟 乘悟幷消 事非頓除 因次第盡)”이다. 깨달았다고 해서 번뇌와 습기가 모두 한꺼번에 제거되어지는 않으므로 시간이 경과하면서 없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내용이다.
설사 눈이 밝아졌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익힌 업력을 이기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므로 모든 참선납자들은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다.
첫댓글 이즉돈오 승오병소 사비돈제 인차제진(理則頓悟 乘悟幷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理法界의 空도리를 단박에 깨달아 전식득지 했다 하여도 밥먹고 잠자는 事法界의 오랜 習이 단박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깨달음 이후에 경계를 만나도 무의식적 반응을 하지 않도록 끊임 없이 깨어 알아차리고 멈추어 바라보는 정진을 해야 비로소 理事無碍를 성취하고 이어 事事無碍에 까지 이를 수 있다. 비로소 아무 것에도 걸림 없고 막힘 없이 眞俗二諦 不二의 보살행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따르던 무리를 긍휼히 여겨 물고기 두마리와 빵 다섯개로 사천명을 먹인 일과 물위를 걸어 두려워하던 제자들을 도운 일과 많은 병자를 고친 일 또한 이와 다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