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로 가는 날.
지난번에 탔던 '트랜이탈리아'가 아닌
'이딸로'를 타고
드디어 마지막 행선지인 로마로 간다.
이태리의 기차는 '트랜이탈리아'와
'이딸로'가 있다고 한다.
짠딸이 티켓예매 기간을 체크하고
조기예매 할인기간 까지 꼼꼼히 살펴
구입했다고 한다.
티켓오픈시간을 현지시간에 맞추어놓는
열성까지 부려가며.
이렇게 할인받은 각종 티켓값이
꽤 있는 것 같다.
절약해줘서 고마워!
기차가 참 예쁘다
빨간색의 날렵한 모습이 속도좀 내게 생겼는걸.
유난히 기차가 예쁘다고 느꼈는데 짠딸의 설명에 의하면
'이딸로' 는 유명한 자동차회사인
'페라리'에서 만든 기차라고 한다.
'우리는 차를 파는 것이 아니라 꿈을 팝니다'
라는 마케팅을 하는 유명한 자동차 회사.
"음, 어쩐지 기차가 참 예쁘더라"
늘 그랬듯이
바우처를 열심히 살피며, 평소보다 큰 가방을 메고
부지런히 걸어가는 짠딸의 모습
역시나 짐칸이 부족할까봐
서둘러 기차에 오르자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보다 늦게 탑승한 한 외국인이
큰 캐리어를 주체하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는 걸 보고
짐칸 자리를 양보했다고 한다.
우리 중에 가장 작은 캐리어인 큰 딸의 캐리어를
남편이 번쩍 들어 머리 위 짐칸에 올렸다.
딸들이 혼자 여행하다가 이런 경우가 생겼다면 참 힘들었겠지.
짠딸도 힘든 짐을 들어주는 친절을 많이 받았다고 하던데...
피렌체에서 떠나올 때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다.
냉장고에 사다 놓은 과일이며 우유, 계란 등을 모두 꺼내고
누룽지도 끓여
빵과 곁들여 먹었으니
특별히 기차안에서 먹을 걸 준비하지 않고 타도 괜찮았다.
남편의 계란프라이 요리는 이제 국제적이다.
유럽에서도 잘 통하는 프라이 요리!
피렌체여 안녕!
천천히,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피렌체는 멀어지기 시작한다.
서먹서먹하게 만났던 여행지의 낯선 도시들.
떠나올 땐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가진 친구같은 존재가 되어있다.
가끔씩 그리워하고, 소식을 궁금해하며
또 만나고 싶어지는 그런 존재.
로마의 숙소는 큰 딸이 맡아서 예약을 했다.
짠딸이 각종 예약에 지쳐 언니에게 슬그머니 미루어 놓으니
큰 딸이 요모조모 살펴보고 콜롯세움 근처의 호텔로 예약했다고 한다.
명칭은 호텔이지만 에어비엔비의 성격이 짙을 거라고 한다.
아무렴 어떠니? 우리가 3박4일 편안하게 지내기만 하면 되는 거지.
기차에 타자마자 로마의 숙소, 택시, 바티칸 투어 예약 등등
꼼꼼하게 점검하기 위한 준비모드로 들어간 두 가이드.
바우처용지들, 태블릿PC 등등 확인작업 분주하다.
기차에 자리 잡자마자 남편은 눈을 풀고 휴식모드
난 '이딸로' 의 가이드북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그림만)
아마도 KTX 타면 꽂혀있는 가이드북 같은 것인가보다.
흥미롭게도
'이딸로' 책자에는
방금 떠나온 피렌체의 관광지 지도와 설명이 나와있다.
숙소근방의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과 광장
피렌체 두오모, 그리고 베키오 다리 등등이 그림지도와 함께 설명되어있다.
"나는 다 보고 왔네요."
로마의 '떼르미니 역'이 얼마나 조심해야하는 곳인지
짠딸이 귀에 인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해대서 약간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괜찮아보였다.
군데군데 무장을 한 군인들의 모습이 오히려 든든하다.
3년전보다 많이 깨끗해지고
뭔가 도와주겠다며 고연시리 접근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좋아한다.
접근한 사람에게 뭔가를 물어보았다가
돈을 뜯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소매치기로 의심되는 사람들도 눈에 안 띄인다는 짠딸.
우리가 묵을 엘레나의 집
택시를 타니 금방 집 앞에 데려다준다.
집 앞의 거리가 깨끗하고 좋다.
호텔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살던 집을 임대해주는 것 같았다.
초인종에 각 층과 방 주인인듯한 이름을 저렇게 붙여놨다.
마지막 날에 우리의 짐을 옮겨다 줄 회사 직원도
이 초인종을 찾아 눌렀겠지.
편리한 듯, 아날로그인듯한 이 시스템이
뭔지모를 친근감을 준다.
여행내내 집이나 방으로 들어가는 키는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스마트키는 하나도 없었다.
아주 묵직하고 고풍스런 키를 주렁주렁 달아놓은
키 홀더를 주로 받았다.
집 사용설명을 두 딸들이 잘 듣고
우린 고개만 끄덕끄덕
엘레나 아주머니가 내 눈을 보고 설명하면
'으흠' 하는 추임새를 넣어 알아듣는 척하고
설명이 끝나면
"근데 뭐라는 거니?"
딸들이
"엄마 잘 알아듣는 줄 알았잖아 킥킥"
거실의 에어컨을 켜려하니 리모콘엔 건전지가 들어있지 않다.
뭐야, 엘레나!
이렇게 지독한거니?
물, 과일 등 생필품을 사러갔다가 마트에서 돌아온 딸들
투덜거린다.
건전지 값이 제일 비쌌다고.
"엘레나 너무해"
조금은 낡은 가구와 그릇들.
그리고 옹색한 조리대
피렌체의 환하고 세련된 집이 살짝 그립다.
내 집도 아닌데 뭘~~~~
각자 방 하나씩 고르고
우리부부는 욕실이 딸린 방에 짐을 풀어놓는다.
방에 딸린 욕실이 몸을 돌리기가 어렵게 비좁다.
어헝! 피렌체~~~
두 딸들은 각자의 방이 생겨 좋은지 이리저리 옷가지들을 던져넣으며
콧노래 흥얼흥얼!
위치는 콜로세움 근처인데 거리가 깨끗하고 샵들이 많아 밝다.
무엇보다 치안 걱정이 안되는 곳으로 보여 안심이 된다.
영화 '로마의 휴일' 에서 거리에 잠들어있는 오드리햅번을 깨우며
집이 어디냐고 묻는 그레고리팩.
당당히 대답하는 그녀.
"콜로세움"
우리집이 콜로세움 근처라서 매일 콜로세움 놀이를 한다.
"저~~, 집이 어디세요?"
"콜로세움"
"아가씨, 집이 어디에요?"
"콜로세움"
도로 끝에 보이기 시작하는 콜로세움
도로명도 콜로세움 *** 이렇게 불리는 것 같다.
정말이지 집을 나서면 골목 끝자락에 콜로세움이 나타나니
콜로세움만 찾아가면 우리집인거 맞네.
콜로세움을 보며 집을 나서고
콜로세움 쪽으로 걸어오면 집으로 가는 골목이 나온다.
다 무너져내린 옛 건축물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또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니
로마하면 난 이 콜로세움이 맨 먼저 떠오른다
나에겐 콜로세움, 네가 로마의 상징이다.
안내 입간판에 그림자로 서 있는 글레디에이터의 모습이 귀엽다.
저 순간 목숨을 건 긴박함이 온 몸에 전율을 일으켰을 텐데
우린 그저 용맹스런 한 남자의 실루엣에서
그 옛날의 이 장소를 느껴보고 싶어한다.
집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따끔따뜸한 로마의 햇살이 좀 누그러질 무렵 콜로세움으로 들어갔다.
입장하는 줄이 아주 길다.
아주 긴 인내심 역시 필요하다.
손바닥만한 그늘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 멋진 장소에서 음악회가 열리나보다.
콜로세움 밖에도 많은 장비를 싣고 온 차들이 즐비하더니
안에서는 이렇게 분주하게 무대 설치작업중이다.
객석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걸 보니
VVIP 만 초대하는 음악회가 아닐까.
다음날 바티칸 투어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경비가 더욱 삼엄하다.
딸들이 검색해보더니
자선음악회인데 조수미도 여기 참석했다고 한다.
콜로세움을 그녀의 목소리로 가득 채웠겠지.
밖에서라도 서성거려볼걸.
바티칸 투어 후의 피로감으로 일찍 귀가했었다.
그 와중에도 우린 열심히 콜로세움 내부를 거닐며
저 깊숙한 지하의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본다.
굶주린 맹수들이 포효하고 있는 그 옆방엔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만 하는 글레디에이터들
그 순간에 그들은 가족을 떠올리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절망했을까
밖에선 흥분한 군중들의 함성으로 가득했을 이 공간
내일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워질테니 다행이다.
콜로세움 위에 떠 있는 달이
이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자꾸 상기시킨다.
점점 살찌고 있는 달.
똑같은 달이고 노을인데
왜 여행중에 만나는 달, 노을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걸까
테러의 위협을 늘 안고 있는 유럽은
어디나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다.
평소같으면 살벌한 모습이 싫었을 텐데
무척이나 안심이 된다.
어느 관광지나 꼼꼼한 가방검사와
엑스레이 투과 검사 등이
하나도 귀찮게 여겨지지 않는다.
콜로세움 지하철 역사 앞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또 든든하다
젊은이들, 오늘도 수고가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