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서울의 한 공립 고등학교에서 교장과 교사 5명이 여고생과 여교사 130여 명을 지속적으로 성추행·성희롱한 사건이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2년 남짓 전부터 끊임없이 성 추문이 있었지만,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쉬쉬해서 화를 키웠다고 분석한다. ‘안전한 배움의 공간’ 이라고 안심하지 말고 학교 내 성희롱 문제, 엄마 입장에서 알아둘 게 많다.
취재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eil.com
도움말 권현정 실장(탁틴내일)·여성가족부·서울시교육청
자료 제공 교육부·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인사혁신처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성폭행 관련 상담이 해마다 200건 이상 접수됐다. 지난 2014년 청소년 성폭력 상담 209건 가운데 특수 강간이 8건, 강간이 61건, 강제 추행이 66건 등으로 나타났다.
이를 뒷받침하듯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상일 의원(새누리당)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충남 초·중·고에서 발생한 성범죄는 81건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12년 22건, 2013년 14건, 2014년 35건, 2015년(8월 말) 10건으로 44개월 동안 81건이 발생, 한 달에 평균 1.84건꼴이다. 학교 급별로는 초등학생 성범죄 10건(12.4%), 중학생 44건(54.3%), 고등학생 27건(33.3%)으로 성범죄 발생 연령대가 크게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유형별로는 전체 81건 가운데 성추행이 37건(45.7%)으로 가장 많았으며 성희롱 21건(25.9%), 성폭행 18건(22.2%), 기타 5건(6.2%) 등의 순이다. 이런 추세는 비단 충남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천·전남·광주 지역도 초·중·고 성범죄 발생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교사의 성 관련 비위 징계도 느는 추세. 정무위원회 오신환 의원(새누리당)이 인사혁신처에서 제출받은 ‘2012~2014년 국가공무원 성 관련 비위 징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총 219건 가운데 성폭력·성희롱은 2012년 54건에서 2013~2014년 각 65건으로 늘었다. 특히 교육부의 2012~2014년 성 관련 비위 징계가 110건, 전체 50.2%로 성 비위 징계 최다 기관 불명예를 차지했다. 여기에 2013~2014년 초·중·고 교원의 학생 성추행을 비롯해 성 관련 비위 징계도 93건에 달했다.
성희롱이냐, 성추행이냐?
그렇다면 학교 내 성 추문이 느는 까닭이 무엇일까? 탁틴내일 권현정실장은 “부모 세대만 해도 교사나 동급생의 성추행과 성희롱을 ‘변태’라며 가볍게 치부한 경향이 있다” 고 전한다. 하지만 자녀 세대는 유아기부터 성교육을 받은 사례가 많은 만큼 성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 이를 심각한 사안으로 인식한다. 학교 내에서 학생과 학생 간, 교사와 학생 간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피해 학생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게 권 실장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학생이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도 학교에서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많아,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학교 내 성추행과 성희롱이 더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현상을 줄일 수 있을까.
먼저 성폭력과 성추행, 성희롱이 어떻게 다른지 알 필요가 있다. 성폭력은 넓은 의미로 강간과 성추행, 성희롱을 포함한다. 성추행은 노골적인 성적 의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며, 성희롱은 직위나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이용해 성적 굴욕감과 수치심, 혐오감을 주는 것.
“보통 성추행은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신체 접촉을 하는 경우를 말하며, 성희롱은 강제성은 없으나 피해자가 무방비 상태에서 성적으로 수치심이 드는 말을 듣거나 행동을 겪은 경우입니다.”
권 실장은 어른 간의 성추행은 형사처분을 받지만, 성희롱은 민사상 손해배상을 하는 정도로 사건이 마무리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학교 내에서 학생과 학생 간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발생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되어 벌점을 부여하는 등 교칙에 따른 처분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단 교원의 학생 대상 성추행과 성희롱은 아동복지법 제17조(금지 행위) 2항 ‘○○아동에게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성적 학대 행위’ 조항을 적용해 기소하는 것이 원칙이다.
객관적 증거 확보 필수, 제2의 피해 없도록 학생 보호 우선
전문가들은 학교 내 교원의 학생 대상 성추행과 성희롱은 수장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학생을 원활하게 지도하기 위해 체벌 대신 마련된 상벌제가 피해 학생들의 입을 막는다는 것.
무엇보다 학교에서 교원과 학생의 관계는 힘의 차이가 분명하기에 학생이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겪었다고 해서 교원에게 당당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학교에서 청소년 대상으로 신체 발달에 따른 몸가짐의 중요성에 대해 성교육을 하지만 동급생이나 교원에게 당하는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구체적 대처법을 알리는 교육은 미미한 게 사실이죠.”
권 실장은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사실을 떳떳이 밝히고 가해자가 확실히 처벌받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 학교 내 성추행과 성희롱은 눈에 띄게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먼저 학생 자신이 성적 수치심이 들었다면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분명하다. 이때 ‘불쾌하다, 충격적이다, 그만해라’ 등 거부 의사를 밝혀도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동이 계속 된다며 이는 성추행에 해당한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면 그 상황을 목격한 주변 친구들을 증인으로 확보하고, 가해자가 이런 행동을 반복하면 녹음해서 대화를 증거로 남기는 게 중요하다.
담임교사에게 이 상황을 알려도 학교에서 미온적인 태도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면 성폭력 관련 기관에 중재를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피해 학생에 대한 비밀 보장. ‘장난인데 그까짓 걸 신고하냐?’ ‘쟤 때문에 학교 망신이다’ 등 오히려 피해 학생을 따돌리는 제2의 피해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피해 내용이 학교에 공개됐다면 학교 측이 이 내용을 전교생에게 밝히고, 피해 학생이 더 상처 받지 않도록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학교 내 성희롱, 가슴앓이 말고 전문 기관 찾기
학교에서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했다면 담임교사를 주축으로 학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예상 밖의 난관에 부딪힌 경우 성폭력 상담 전문 기관을 찾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