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텃밭. 어머님과 아버님이 가꿀때와 비교하면 밭도 아니지만, 그런대로 이것저것 가꿔서 밥상에 올린다.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셔서 옥상텃밭을 둘러보시고는 "고맙다"고 하실 정도였으니, 그저 날나리 옥상텃밭은 아니기도 하다. 올해는 가지가 풍년이었고, 팝씨도 받아서 뿌렸는데 실파를 제법 먹었고, 고추도 잘 되긴 했지만 맛이 별로라서 푸대접을 받고, 부추는 베다 먹고 또 베가 먹어도 잘 자라주고 있고, 상추는 실컫 뜯어먹고 얼마전에 모종을 또 심었더니 가을상추맛이 아삭하고 씁쓰름한 것이 일품이고....
무엇보다도 요즘의 하일라이트, 주인공은 얼마전 안성오일장에서 사다 심은 배추모종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중에 배추벌레가 등장하여 속부분을 갉아먹으니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다. 약을 쳐야할까? 진딧물 약 정도는 치겠는데, 다른 농약은 좀 꺼림직하다. 아침에 물을 주다 배추벌레를 발견,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이전에 배추벌레는 징그러워서 손으로 만지지 못했는데, 오늘은 손으로 열 마리는 넘게 잡았다. 장족의 발전이다. 뱌ㅐ추벌레 한 마리가 먹어치우는 양은 엄청나서 열마리면 한 포기 정도는 구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배추가 자라는 만큼 배추벌레도 쑥쑥 자라난다. 배추벌레도 살자고 그렇게 애쓰는데 나는 그들을 보는 족족 잡아죽이고 있으니 미안하기도 하다. 서로간에 적당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현재로서는 그들과 함께 배추를 나누기란 쉽지 않다.
그리하여 배추벌레퇴치법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니 빙초산을 물에 희석해서 뿌리면 배추벌레를 퇴치할 수 있다는 정보는 고마운 정보다. 당장, 오늘 오후에는 그리해야겠다. 어쨌든 올해는 옥상에 심은 배추로 김장을 하고 싶으니까....
뿌린다고 거두는 것이 아니다. 벼가 농부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은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니다. 농사는 정성으로 짓는 것이지, 그저 뿌려놓았다고 좋은 열매를 주지 않는다. 바라봐 주는 만큼 그들은 쑥쑥 자라고, 그들의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경외감과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무한감사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육체의 양식이 되고, 그리하여 내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행복한 삶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며칠전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의사 한 분이 "지금 당장 행복해 질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라고 자신있게 이야기를 해서 관심을 갖고 들어보았다. 결론은 "감사하십시오"였다.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 의사의 처방이었는데, 이건 성서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과 다르지 않다. 결국, 그 말씀은 행복하라는 말씀이었구나 싶은 깨달음. 이것도 감사한 일이다.
감사의 목록을 적어보는 것도 행복한 삶을 위해 좋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나 둘 적다보면 감사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미안할 정도라고 하는데...지금 이 순간 하나 둘 떠올려보니 감사한 것 투성이다. 심지어는 '아무일도 없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세상은 마음 넓게 포용하면서 보면 나에게도 좋다. 물론,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은 어찌되든지 말든지 나만 혼자 잘살면 된다는 생각이다. 사회적인 부정의와 부패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가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정의의 행동을 하는 것을 감사하야지, 그것에 무관심한 것을 감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사람은 변한다. 누구나 변한다. 그 방향이 옳은 방향이길 바랄 뿐이다. 변하는 것과 변질은 다른 것인데, 많은 이들이 변질된다. 오늘 아침에 문득 변절한 선배(?)를 떠올렸다. 세상 똑똑한 선배였는데 무엇에 눈이 멀어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먹사의 시다발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인생 후반, 더는 자신이 하는 일을 바꿀 수 없는 시점에 평가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제든지 변절할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가?
첫댓글 빙초산 작전은 실패, 연한 배추잎사귀가 전부 말라 죽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