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나 삶에서 최대의 적은 무엇일까?
두려움과 공포.
두려움과 공포는 움츠리게 하거나 역으로 공격적으로 만듭니다.
변화를 잘 관찰하고 순응하면 두려움으로 공격할 일도 움츠릴 일도 없지 않을까요.
손톱에 박힌 가시 하나도 우연이 없듯이.
2021년에도 어김없이 씨앗 발아로 시작해 열매를 맺어 몸체에서 떨어져
수 천 수 만개의 씨앗으로 거듭나 만물이 조화롭듯이.
회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의 건강과 평온함을 기원합니다.
토종씨드림 대표 변현단 드림.
*지난 12월에 넘긴 원고(녹색평론 신년 1-2월호) 요약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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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한 알’의 토종씨앗에서 시작된다.
변 현 단
”왜 토종씨앗 운동을 하나요?“ ”자유롭게 살려고“ 질문한 사람 입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답변일지 모른다. 내가 농부가 된 이유다. 자본주의 상품사회에서 ‘나’를 상품으로 포장해서 시장에 팔지 않으려면 ‘돈이 중심이 되지 않는 삶’, 생태순환적인 생활과 농사가 답이었다. 순천 할머니들은 농산물을 팔러 장에 갈 때 ”돈 사러 간다.“ 고 말한다. 돈도 별 다르지 않는 상품으로 생각한다. ‘나’가 주체가 된 어법이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씨앗 수집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수집을 쉰다면? 시간은 할머니들을 붙들지 못해 요양원에 가시거나 돌아가시면 씨앗을 물려줄 자식이 없으니 그들의 씨앗은 사라진다. 매년 토종씨앗 수집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10월초, 코로나가 주춤하던 틈을 타 경기도 광주와 평택, 전남 담양을 매주 3일, 모텔에서 숙박을 해가며 마을 곳곳을 탐문하여 ‘왜정시대’부터 대물림된 재래종 감자를 비롯해 120품종 800여점을 수집을 했다. 십 수 년의 경험은 토종씨앗이 있을 법한 집과 할머니의 얼굴과 분위기만으로도 토종씨앗 관상쟁이가 되었다. 항상 그러하듯이 할머니의 짧은 대화에서 씨앗 철학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씨앗은 나누라고 있는 거야” “씨앗을 많이 퍼트려 줘.”하며 많든 적든 잘 갈무리된 씨앗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몸에 체현된 나눔의 철학자들이 건네준 씨앗을 통해 소멸해가는 <토종씨앗의 역습>은 진작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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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옛날 팥이야“ 8-90대 할머니들이 토종 팥이라고 내어주는 말이다. 부부관계가 찰지라고 찹쌀과 액을 물리치고 자식을 많이 낳으라고 친정엄마가 팥 씨앗을 시집가는 딸에게 주었다. 현재 보급되는 굵고 빤질빤질한 개량 팥에서는 친정 엄마의 소망을 담은 주문(呪文)은 찾아볼 수 없다. 요즘 도시인들이 먹는 오이와 애호박은 늙지도 않고 씨앗도 받을 수 없다. 공장이나 회사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죽도록 일을 하지만, 늙기도 전에 용도 폐기 당하는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젊은이 세대들의 고통은 대붕의 시야를 가지지 않고 옛것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즉자적인 편리와 풍요를 추구해온 기성세대 스스로 후손의 지속성을 포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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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엔 극심한 가뭄이 있었고, 2019년에는 성숙기와 수확기에 잦은 태풍이 있었으며, 2020년에는 봄 같은 겨울은 지속되었고, 6월에는 때 아닌 우박이 내렸으며, 8월부터 50일 이상의 잦은 비와 폭우가 있었다. 참깨는 종자조차 거둘 수 없었으며, 고추와 콩 가격이 올랐다. 세계적인 기상 변이로 인해 식량을 수출하는 국가에서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곡물 수출금지를 내렸고,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에서는 식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식량자급을 소홀히 한다면 당연히 식량위기를 가져온다. 그래서 식량과 종자주권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식량과 종자주권을 하위로 두는 대표적인 국가 중에 하나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팔아서 식량을 사오면 된다는 생각을 해온 지 오래다.
토종농사를 짓는 나로서는 기후변화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토종씨앗의 메주콩은 수백 가지다. 내가 사는 곡성에서는 큰 콩알보다 작은 콩 수확량이 괜찮았고, 고창 회원 농가에서는 작은 콩보다 알이 큰 콩이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푸른 콩류는 고창이든 곡성이든 수확량에는 변함이 없었고, 일조량과 토양에 의한 변형-지역 적응성-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곡성은 작은 콩으로, 고창은 큰 콩을 재배하면 된다. 지역에 맞는 콩으로 심으면 된다. 잦은 비와 수확기의 가뭄은 토란과 생강이 예년보다 수확량이 증가되었다. 토란 값이 뚝 떨어졌다. 예부터 토란은 감자나 고구마와 같은 구황작물로 쓰였다. 토란은 탄수화물이 많아 찌고, 굽고 갖가지 반찬을 한다. 종자조차 건지기 어려웠던 참깨는 먹지 않아도 인간의 에너지원에 탈이 없다.
잦은 비와 일조량 부족에도 잘 되는 작물이 있고, 가뭄에 잘 되는 작물이 있으니 우리는 음식의 변화를 꾀하면 된다. 기후는 변하는데 소비하는 음식을 바꾸지 않으면 기후변화는 인간에게는 ‘위기’다. 자연이 변하면 우리의 몸도 변하고 음식도 변하기 마련이다. 지역과 농가마다 선호하는 종자가 달라 다양성이 보존된 토종씨앗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상업적 종자만을 고집할 때 비로소 ‘위기’를 초래한다. 스스로 기후와 지역의 변화를 몸소 겪지 못한 일회성 종자와 수확량만 고집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현대농업에 기후변화는 토종씨앗의 다양성과 전통적인 농사법에 주목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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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앗에는 해당 지역과 농부의 언어가 살아있다. 똑같은 모양의 동부를 화성에서는 개에 달라붙은 파리처럼 생겼다고 개파리 동부. 평택에서는 지저분하게 생겼다고 동냥치동부. 순천에서는 밭 가장자리에 심는다고 밭갓동부라고 한다. 홍천에서는 울타리에 심는 강낭콩을 줄콩, 전북에서는 울콩이라 부른다. 전라도에서는 강낭콩도 동부, 돈부라고 부른다. 토종씨앗에는 획일적인 표준어가 없다. 지역과 농가의 정서가 씨앗 이름에 살아있다. 토종씨앗 할머니들은 교잡을 ”벌이 역사한 것이제“ 라며 자연의 이치를 시적인 감수성으로 표현한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배우지 않아도 씨앗을 받다보면 퍼렁콩과 검은콩을 섞어놓은 선비잡이콩 같은 것이 나오면 선발 고정하는 것도 잊지 않아 씨앗의 다양화를 꾀하여 왔다.
”상처에 늙은 호박을 짓이겨 넣었는데 나았어“ ”수수 알갱이는 먹고 빗자루를 만들어 쓰제“ 벼 알갱이는 먹고 볏짚으로 오만가지를 만드는 것도 토종볍씨다. 열 일하는 토종씨앗을 제쳐두고 이윤의 극대화를 우선으로 한 일만 하도록 개량시킨 것이 현대 종자들이다.
전통적인 농부는 본능적으로 육종가, 과학자. 철학자, 언어학자, 요리사, 치료사, 공예가. 소목, 대목수이며, 시인이자 소리꾼인 예술가이다. 그들의 본능적인 능력을 분절시켜 엘리트 전문가에게 주고, 오로지 돈에 환장한 다수확 노동자의 역할만 강요한다. 토종씨앗과 전통적인 지혜를 박물관과 도서관에 사장시켜 놓고, 농부들의 살아있는 무한한 상상력을 차단시켰다. 왜? 농부들의 다재다능한 능력을 갈갈이 찢어 헤쳐 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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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산업법을 필두로 국가의 농업 관련 법제도에서는 농부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권력과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전문가’들에게 넘겨주었다. 생태순환적일 수밖에 없는 농부를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만들었다. 된장을 만들고 싶어도 식품허가를 받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다. 국가농업시스템은 농부로부터 수족을 떼어내고 농가 소득을 고민해주는 척 한다. 대량생산의 공장 노동자처럼 수확량만을 좆도록 하니 종자는 종자회사가 추천하는 종자를 매년 사다 써야 하고, 기계로 밭을 매년 갈고, 과도한 퇴비와 제초제. 농약을 과다 살포하는 환경 파괴적인 농업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대규모 농사를 해도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여우가 가져가는 구조다. 국가가 농부권을 보장해줄 리 만무하다. 너무 절망스런 얘기일까? 아니다.
국가가 내동댕이 쳐버린 대대손손 토종씨앗을 꼬깃꼬깃한 약봉지에 씨앗을 담아 ’아오씨‘ ‘갓씨’ ‘씨가시‘ 라고 겨우 깨친 한글로 써서 보관하고, 동네에 나눠주고, 허리가 반쯤 휘어져도 자식에게 주려고 해마다 심어온 나눔의 철학을 실천해온 할머니들이 살아 있고-때론 할아버지가 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씨앗과 지혜를 전달받는 씨앗의 자식, 우리가 <토종씨앗의 역습>을 이미 시작하지 않았는가? 내가 씨앗이지 않은가? 법제도가 없다고 농부권이 사라지지 않는다. 씨앗의 권리를 스스로 실현하면 된다.
농부가 육종가다. 전통적으로 농부가 가졌던 능력을 우리 스스로 회복하면 된다. 현지 보전이란 그런 것이다. 토종씨앗 할머니는 ”씨앗이 밑질까봐“ 씨앗을 조금씩 남겨둔다. 만약 밑져버리면 이웃에서 얻어 심는다. 나눔과 공유의 철학은 농부권을 실현하는 일이다. 법제도화를 외면할 순 없지만 우리 스스로 변하면 저절로 농부권이 법제화 되리라. 수많은 도시인들 식탁에 자가 채종 농산물이 오른다면 어떤 농업인이 외면하겠는가?
농부권은 농부만의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권리이다. 왜냐하면 매일 먹는 생명을 유지하는 밥상과 간식은 씨앗이고 농부가 다루기 때문이다. 당신의 먹는 밥 한 그릇에 몇 개의 씨앗이 있을까? 밥 한 톨은 수 억 만 개를, 우주를 만드는 씨앗임을, 씨앗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밥상머리 교육을 하면 될 일이다. 너무 많이 먹어 병들고 너무 많이 소비해 쓰레기가 넘쳐나는 세상, 지나친 탐욕으로 코로나19의 세상을 맞이한 것이니. 토종씨앗이 소멸한 이유를 알면 토종씨앗과 농부권을 회복하는 길은 간단하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되는 일이다.
기후. 생태환경 변화. 포스트 코로나, 정치사회, 미세하게 얽혀 맞물려 가는 거대한 자연의 질서를 막을 수 있는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니 절망이 앞선다. 너무 쉬운 방법이 있다. 내가 변하는 것이다. 씨앗의 본능, 생명의 지속성과 다양성. 각각의 씨앗이 다양한 기후에 적응해야 지구에 퍼져 나가듯이, 내가 먼저 자유의 씨앗이 되면, 바이러스처럼 급속하게 퍼져 세상이 변하리라. 늘 그래왔듯이 ’나‘는 오래된 미래, 토종씨앗이다.
첫댓글 실천이 중요 하다고 생각 합니다. 건강관리 잘 하세요.
작년 한 해도 엄청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도 잘 챙기시고요
할머니들에 이어 이제 우리가 씨앗을 지켜 나가야겠네요
수고 많으셨읍니다
감사 합니다
실천하며 지키겠읍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오래된 미래, 토종씨앗이다.
잊고 있었는 데요, 가슴 깊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좋은글내용 감사합니다
살아 숨 쉬는 씨앗과 올해도 동행하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했던 수년전에
대표님 책을 두권 읽고
마음의 위로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뒤로 녹색평론이 제 정신적 지주가 되었구요.
제 고향 곡성에 대표님 계신 것으로도 자랑스럽구요.
삶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씨드림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듯 합니다.
행복하고 알찬 새해를 기원합니다.
세상은 작고 연약해서 우스워 보이지만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힘이 있는
작은 씨앗에서 시작합니다...^^
단이님...
새 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풍년 이루세요._()_
토종씨 나눔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단이님 토종농법 유트브 통해서
잘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 녹평에서 단이님 글부터 반갑게 찾아읽었어요. 제때제때 인사도 못드리지만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하고 있어요. 찾아뵙자 몇차례 말은 있었는데 세월만 가네요. 은은가님들 모두 평안하시길요 __()__
제 가치관과 너무나도 동감이 가는 귀한 글입니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눈이 그치면 한번 찾아뵙고싶습니다.
신입회원이라서 게시판마다 제약을 많이 받고 있지만
지기님의 토종씨앗을 지키려고 노력 하시는것을 보면서
감동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모든일이 대박나시길 기원합니다.
변 대표님 = 토종씨 지킴이 = 좋은 몫, 을 택하셨읍니다. 모범을 보여주시니 잘 따르겠어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1.15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