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앤 피플: 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사 유석종 씨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눈이자 날개입니다”
음악 소리가 들린다. 왼쪽에 휴대폰 상점이 있다는 방증이다. 안도한다. 맞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어온다. 나무 향기로 짐작건대 이건 공원이 가깝다는 뜻이다.
하지만 음악의 흥겨움도, 도심의 싱그러움도, 즐길 여유는 없다. 시각장애인에게 ‘걷기’란 분석과 헤아림의 연속이다.
그런데 저만치서 누군가가 수더분한 개와 함께 다가온다. 개는 보조를 맞추듯 속도를 늦추고, 자전거나 수레가 나타나면 주인을 이끌어 살짝 피하기도 한다. 노란 조끼를 입고 등에는 하네스를 찬 리트리버. 바로 시각장애인의 ‘눈’과 ‘날개’로 불리는 안내견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삼성화재안내견학교의 유석종 선임훈련사가 있었다.
Q. 삼성화재안내견학교를 소개해주세요.
A. 세계안내견협회에 정식으로 등록한 기관으로, 1993년 설립 이래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무상으로 분양하고 있어요. 현재까지 200여 마리를 분양했습니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Q.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선천성 녹내장을 앓았던 저는 대학생 때인 2002년 안내견을 처음 분양받았어요. 지금은 전맹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빛을 지각할 수 있을 정도였죠. 맹학교에 다닐 때와는 달리 대학에 입학하니 아무래도 의기소침해지고 소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그런데 안내견과 함께하면서부터는 부당한 일에 당당히 맞서고 주변 환경에 대한 변론 능력 또한 향상되는 저를 발견했어요. 졸업 후 안내견학교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안내견학교의 전문화된 시스템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입사 후에는 맹학교 학생들이 안내견학교에서 숙식하며 배우는 프로그램을 제안하기도 했죠. 이곳에서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렸고요.
Q. 분양자에서 훈련사가 된 과정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A. 안내견을 통한 제 삶의 변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꾸준히 알렸어요. 현재 저는 선임훈련사로서 상담 업무와 홍보 및 기획, 교육 등을 맡고 있습니다. 안내견 분양을 희망하거나 고려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 ‘퍼피워킹’을 신청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납니다. 각종 복지기관이나 예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1박 2일 안내견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학교나 기업 등을 방문해 안내견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한 인식 개선 교육도 맡고 있습니다. 안내견 훈련 과정에 참여해 안내견과 함께 생활하며 보완할 점을 체크하기도 하죠.
Q. 안내견 훈련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나 전공이 있는지요.
A. 관련 전공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사회복지학이나 동물학 관련 전공, 특수교육 등을 배우면 업무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요. 입사 후 안내견들이 기숙하는 ‘견사’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게 진짜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일을 좋아하고 애정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죠. 훈련사가 즐거워야 안내견도 즐겁거든요. 훈련사의 가장 큰 덕목은 안내견의 성격을 파악하고, 안내견이 지금 하는 일을 즐기면서 자발적으로 그 행동을 잘 선택할 수 있게끔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것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이것을 좋아하는가’라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안내견 양성 과정과 분양 조건이 궁금합니다.
A. 교육은 생후 7주부터 1년까지 자원봉사자의 집에서 ‘퍼피워킹’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요. 사회성을 기르고 식사나 배변 등 예의범절을 배우는 기간이죠. 훈련사가 정기적으로 학습 진행 상황을 체크합니다. 그 뒤 안내견학교로 돌아와 6~8개월 정도 집중 훈련을 받고 체력·품행 등의 항목이 포함된 세 차례의 시험을 통과해야 정식 안내견이 됩니다.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합격 기준이 엄격해요. 30% 정도가 시험을 통과하고 나머지는 일반 가정에 분양됩니다. 그리고 10년가량 활동을 하다 은퇴해요. 시각장애인에게는 대기하고 있던 다른 안내견이 분양되고, 기존 안내견은 분양을 희망하는 가정으로 보내져 남은 시간을 보내는 거죠. 분양 조건은 전맹이 아니더라도 가능해요. 약시를 갖고 있지만 단독 보행이 불편할 만큼 시력이 안 좋은 분들도 많거든요. 하지만 흰지팡이 보행이 가능해야 하고, 누군가를 돌볼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분양이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역할을 봅니다. 출퇴근이나 통학, 장보기 등 안내견이 꾸준히 활동할 수 있을 만큼의 자립적인 사회 참여가 있어야 하거든요.
Q. 일하면서 아쉽거나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A. 간혹 안내견 때문에 갈등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요. 요즘은 안내견을 몰라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안내견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개라서 안 된다’는 의식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안내견과 함께 어딘가를 가고, 어떤 시설을 이용할 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잖아요. 이와 관련한 갈등이 생길까 봐 안내견 분양을 망설이는 분들도 꽤 있어요. 이때 필요한 건 그런 사건은 단지 일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기며 스스로를 독려하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훈련사로서, 안내견 관련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Q.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눈’이나 ‘날개’로 비유합니다.
A. 맞는 말입니다. 안내견과 함께 걸을 때는 온몸으로 특정 정보를 찾지 않아도 되고, 그저 오른쪽이나 왼쪽처럼 방향만 잡아주면 되거든요. 걸으며 새소리를 감상하거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셈입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는다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내견의 존재 자체가 시각장애인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거든요. 특히 보살피는 입장이 된다는 게 큰 계기라고 봅니다. 하루 중 안내견의 도움을 받는 건 1~3시간 정도에 불과해요. 그보다는 놀아주고 먹이고 씻기는 등 관리하는 시간이 더 많죠.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각장애인도 누군가를 보살피고 마음을 주며 교감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지킬 것이 있기에 더 강해질 수 있어요. 자존감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날개’라고 볼 수 있죠.
Q.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A. 어떤 식으로든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좀 더 주도적이고 자립적인 활동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해요. 제도적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시각장애인 스스로도 껍데기를 깨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처럼 안내견을 매개로 변화하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의 동행이 늘어난다는 건, 저와 같은 감정을 교류하는 동료가 생긴다는 의미니까요. 새롭게 도약하며 조금 더 성숙한 자신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유석종 선임훈련사는 “사람들은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을 가이드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가이드하고 책임진다”면서 “그래서 안내견을 분양받으면 더욱더 당당하고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고 했다. 안내견 분양자에서 안내견 훈련사가 되기까지 그도 숱한 난관을 겪었다. 그때마다 그를 강하게 만들어준 건 늘 발맞춰 함께 걷는 리트리버였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7월 손끝으로 읽는 국정 141호 - 피플 앤 피플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