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일만 송이, 웃음꽃도 일만 송이
얼마 전 고교 동기들과 삼천도 사천 남일대 해수욕장 인근을 거쳐 고성의 연화산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의령의 한우산을 돌아 대구에 돌아왔다. 거기서 여기저기에 벚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참 좋았다. 대구에 와서 일주일 지나니 집 근처의 두류공원에도 벚꽃이 만발하였다. 또 일 주일이 지나 청도 우리 집으로 가니 가창 댐에서부터 우리 집 근처까지의 길-약 25분 거리-에 벚꽃이 만발하였다.
그때부터 한 주간 아침 저녁 출퇴근 하는 길에 있는 벚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바야흐로 때는 봄이요 따뜻한 온도에 즐겁게 반응한 벚꽃들이 너도나도 그 자태를 뽐내며 아주 한바탕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출근 하는 길에 바쁜(?) 몸이지만 꽃이 좋아 나비가 꽃을 찾듯 벚꽃나무에게 다가갔다. 벚꽃나무의 벚꽃을 감상하고 한 나무에 몇 송이가 피었는지 세어 볼 요량으로. 그러나 설령 장미라면 그래도 몇 송이인지 세어 볼 수 있을 터인데, 벚꽃나무 밑에 선 순간 그 하얀 화사함에 질려 도저히 한 송이 두 송이 헤아려가며 숫자를 붙여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니 세어 보려고 해도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부벽루에 올랐다가 말 문을 잃고, 시를 짓지 못했다는 어느 시인처럼, 저는 벚꽃 송이를 헤아리려 왔다가 눈부신 벚꽃에 압도되어 그저 한마디 영탄의 소리만 내지를 수 있었다. “벚꽃이 내 눈 앞에 만개하였도다!!!!”
그런데 “만개하였구나 만개로구나!!”라고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어떤 생각이 섬광 같이 떠올랐다. 머리 속에서 “벚꽃이 만개하였다”의 만개(滿開)라는 말이 가득할 만(滿), 열 개(開) 해서 만개(滿開)이지만, 머릿속에 써있기는 가득한 만(滿)이로되 일만 만(萬)으로 읽혀지고 개는 열 개 자가 아니라 개체 개(個) 자로 읽혀졌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 눈앞에 있는 벚꽃은 “세어볼 필요도 없이 모두 일만 송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벚꽃이, 만개(滿開)한 벚꽃 송이가 모두 만개(萬個)였다. 그런 식으로 한 나무 한 나무의 벚꽃이 만 송이라고 우기고 한의원에 출근하니 조금 늦었다. 몇 사람의 환자들이 와서 있었는데 한참 재미있는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더불어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봄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병세가 호전되어 그런지, 환자들이 모두 다 환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의 우스개 소리에 웃음이 터진 모양이었다. 그 환자들에게 “이 방에는 웃음꽃이 만발했습니다.”라고 말을 건네다가 방금 보고 온 벚꽃이 생각났다. “밖에는 벚꽃이 만송이 만개하였고, 여기에는 웃음꽃이 만발하고 있구나.”
“밖에서는 만개요 안에서는 만발이라!!!” 웃음꽃이 만발(滿發), 만발이라는 단어 또한 가득할 만(滿)자에 필 발(發)자 해서 만발(滿發)이지만, 저는 그것을 벚꽃 개수를 세었던 것처럼 일만 만(萬)으로 읽고 싶었다. 그래서 웃음꽃 역시 일만 송이가 활짝!!!!
그렇게 한의원에는 웃음꽃이 만 송이 피어나고, 밖에는 벚꽃이 만 송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 그런 벚꽃과 웃음꽃들을 보고 있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또 이 봄날도 갈 것이다. 봄날이 가면 봄에 피는 꽃들은 지는 법, 내 눈 앞에 아침 저녁으로 보이는 화려하게 만개한 저 벚꽃도 어느 날 하루 아침에 꽃비가 되어 떨어져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봄날에 한의원에 피어났던 웃음꽃 만 송이만은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도, 또 그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이 되어도, 계속 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소원 가슴에 품고, 저 화사한 벚꽃 일만 송이 이 글 읽는 모든 분들에게 드리오니, 받아주시기를, 아울러 웃음꽃도 일만 송이….
첫댓글 두류공원에서 어쩌면 마주 칠수도 있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