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한국에서는 한국의 '석등(石燈)'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석등롱(石燈籠)'이라고 한다. 석등과 석등롱은 가리키는 대상이 완전히 같은 물건이다. 의미상 본질적인 차이는 없으며, 단지 각 나라에서 세월이 흐르며 단어를 축약하고 사용하는 방식(언어 습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두 단어 모두 '돌로 만든 등기구'를 뜻한다. 석등롱(石燈籠)은 돌 석(石) + 등불 등(燈) + 바구니 롱(籠)이 합쳐진 말이다. 원래 '등롱(燈籠)'은 촛불이나 등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바구니나 천, 유리가 가려둔 형태의 조명 기구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즉, "돌로 만든 등롱"이라는 원형 그대로의 표현이다. 석등(石燈)은 돌 석(石) + 등불 등(燈) 글자 그대로 "돌로 된 등"이라는 뜻으로, '등롱'에서 마지막 글자인 '롱(籠)'을 생략한 축약어이다.
의미는 같지만, 현재 각 나라에서 이 유물을 바라보는 문화적 맥락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국의 석등은 주로 사찰(절) 중심이다. 부처님의 광명을 상징하는 불교 공양구의 성격이 강하며, 불국사 석등이나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처럼 절 마당 한가운데 웅장하게 서 있는 문화재의 이미지가 강하다.
일본의 석등롱은 사찰뿐만 아니라 신사(神社)와 일본식 정원(庭園)에 아주 흔하게 쓰인다. 특히 안도우모모야마 시대 이후 다도(茶道) 문화가 발전하면서, 밤에 차를 마시러 가는 길(로지)을 운치 있게 밝혀주는 조경용 장식물로 대중화되었다. 그래서 일본의 석등롱은 크기가 작고 아기자기하며 형태가 매우 다양한 편이다.
모리 가문(毛利家) 정원에는 무려 19기의 석등롱들이 서 있다. 규슈 지역은 명문 다인(茶人)들이 활약하고 차 문화가 굉장히 융성했던 곳이라, 정원 곳곳에 다도 정신이 깊게 배어 있다. 정원에서 석등롱의 역할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당시 다인들의 정교한 기획력을 느끼 수 있다.
다실로 이어지는 정원 길을 '로지(露地)'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순히 걸어가는 통로가 아니라 "속세의 때를 벗고 맑은 마음으로 들어가는 수행의 공간"이었다. 밤이나 새벽에 열리는 다회(茶會) 때, 손님이 어두운 정원 길에서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디딤돌(飛石)을 비춰주는 실용적인 가로등이 필요했던 것이다. 불빛이 너무 밝으면 운치가 깨지기 때문에, 석등롱의 불빛을 은은하게 조절하여 몽환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이다.
모리 가문은 다도에 엄청난 조예가 깊었던 다이묘(대영주) 가문이다. 그렇다 보니 정원을 만들 때 돌 하나, 석등롱 하나도 아무렇게나 배치하지 않았다. 정원을 거닐다 꺾어지는 모퉁이, 물이 흐르는 계곡 근처, 혹은 정원 전체를 조망하는 핵심 위치에 석등롱을 세워 시선이 머무는 포인트(경관의 주인공) 역할을 하게 했다.
모리가 정문 앞의 이 석등롱은 일반적인 기하학적이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등롱들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인 유물이다. 이 석등롱은 인공적인 가공을 최소화하고 자연석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만든 '산돌등롱' 또는 '야라쿠등롱(野楽灯籠)' 계열의 변형이자, 개념이 깃든 '설견등롱(雪見灯籠)'의 변주형으로 볼 수 있다.
이 등롱이 가장 인상적인 이유는 자르고 깎아낸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거친 자연석들을 툭툭 쌓아 올린 듯한 형태 때문이다. 지붕돌(笠)은매끄러운 갓 대신, 마치 산이나 계곡에서 굴러온 듯한 울퉁불퉁하고 검스름한 자연석을 그대로 얹었다. 촉촉한 가랑비에 젖어 돌의 거친 질감과 깊은 음영이 한층 더 돋보인다. 화창(화사석)도 불을 켜는 가운데 부분만 둥글스름하게 다듬어 창을 냈는데, 이마저도 완벽한 대칭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조약돌 모양을 하고 있어 묘한 매력을 준다. 인위(人爲)를 거부한 '와비·사비'의 극치이다.
돌의 종류와 색상을 다르게 써서 층마다 변화를 준 점이 아주 세련되었다. 맨 아래에는 크고 듬직한 밝은 빛깔의 대지석을 두고, 그 위에 붉은빛이 도는 거친 자연석 중간 받침을 넣었으며, 그 위로 다시 어두운색의 지붕돌을 올렸다. 정원의 설계가가 일부러 질감과 색이 다른 돌들을 수집해 이 조합을 완성했을 것을 생각하면, 대명주(다이묘)의 정원다운 엄청난 집념과 세련된 안목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잘 다듬어진 등롱들은 "나 여기 있소" 하고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이 등롱은 주변의 풀숲, 이끼, 나무들과 경계 없이 어우러진다. 키를 낮추어 바닥에 밀착시킨 구조는 앞서 보신 '설견등롱'의 변형된 특징이기도 하다. 수풀 사이에 수줍게 숨어 있는 듯한 이 배치 덕분에, 마치 사람이 가져다 놓은 조경물이 아니라 "이 정원이 생길 때부터 원래 그 자리에 솟아 있던 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등롱의 명칭과 형태에는 아주 낭만적인 조경 미학이 숨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갓(지붕돌)이 양산처럼 아주 넓고 평평하다는 점이다. 이름 그대로 "겨울에 눈(雪)이 내렸을 때, 지붕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기(見)" 위해 고안된 등롱다. 지붕이 넓은 만큼 눈이 두툼하게 쌓이는데, 하얗게 눈을 머금은 석등과 주변 정원의 겨울 풍경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일본 정원 미학의 극치로 꼽힌다. 그래서 이름이 설견석등롱(雪見石燈籠)이다.
일반적인 석등은 수직으로 길쭉한 중심 기둥(간주)이 있지만, 설견등롱은 기둥이 없고 곡선형의 다리(보통 3개 또는 4개)가 지붕과 불을 켜는 화창(화사석)을 바로 받치고 있다. 이렇게 키를 낮춘 이유는 보통 물가(연못가나 개울가)나 나지막한 수풀 사이에 배치하기 위해서이다. 키가 너무 크면 물가 풍경의 균형을 깨뜨리기 때문에, 수면이나 바닥에 낮게 밀착시켜 안정감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 것이다. 물 표면에 이 등롱의 불빛과 실루엣이 은은하게 비치는 정취를 노린 배치이기도 하다.
겨울에 이곳에 눈이 내리면 이 넓은 지붕 위로 하얀 눈 모자가 폭신하게 얹히는데, 당시 모리 가문의 영주들도 겨울이 되면 저택 창가를 통해 이 설견등롱에 눈이 쌓이는 모습을 가만히 감상하곤 했을 것이다. 정원의 사계절 중 '겨울의 멋'까지 미리 계산해서 배치해 둔 조경가들의 세심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유물이다.
첫댓글 한국에서는 한국의 '석등(石燈)'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석등롱(石燈籠)'이라고 한다. 석등과 석등롱은 가리키는 대상이 완전히 같은 물건이다. 의미상 본질적인 차이는 없으며, 단지 각 나라에서 세월이 흐르며 단어를 축약하고 사용하는 방식(언어 습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두 단어 모두 '돌로 만든 등기구'를 뜻한다.
석등롱(石燈籠)은 돌 석(石) + 등불 등(燈) + 바구니 롱(籠)이 합쳐진 말이다.
원래 '등롱(燈籠)'은 촛불이나 등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바구니나 천, 유리가 가려둔 형태의 조명 기구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즉, "돌로 만든 등롱"이라는 원형 그대로의 표현이다.
석등(石燈)은 돌 석(石) + 등불 등(燈)
글자 그대로 "돌로 된 등"이라는 뜻으로, '등롱'에서 마지막 글자인 '롱(籠)'을 생략한 축약어이다.
과거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기록을 보면 한국에서도 '석등롱'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나라의 언어 정착 방식이 달라졌다.
한국의 '석등'은 글자를 줄여 쓰는 것을 선호하여 '석등'으로 고착되었다.
한국인에게 '등롱'이나 '초롱'이라고 하면 주로 청사초롱처럼 "손에 들고 다니거나 어딘가에 거는 천·종이 재질의 등"을 먼저 떠올린다. 야외에 고정된 돌 구조물은 '등롱'보다는 '등(燈)' 자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의 '석등롱(이시도우로우)'은 원어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 '석등롱'이라고 부른다.
일본인에게 '등롱(도우로우)'은 기본적으로 "야외 고정식 가로등/조경물"의 이미지가 강하다. 들고 다니는 등은 '제등(쵸친, 提灯)'이나 '행등(안돈, 行灯)'이라는 별도의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의미는 같지만, 현재 각 나라에서 이 유물을 바라보는 문화적 맥락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국의 석등은 주로 사찰(절) 중심이다. 부처님의 광명을 상징하는 불교 공양구의 성격이 강하며, 불국사 석등이나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처럼 절 마당 한가운데 웅장하게 서 있는 문화재의 이미지가 강하다.
일본의 석등롱은 사찰뿐만 아니라 신사(神社)와 일본식 정원(庭園)에 아주 흔하게 쓰인다. 특히 안도우모모야마 시대 이후 다도(茶道) 문화가 발전하면서, 밤에 차를 마시러 가는 길(로지)을 운치 있게 밝혀주는 조경용 장식물로 대중화되었다. 그래서 일본의 석등롱은 크기가 작고 아기자기하며 형태가 매우 다양한 편이다.
요약하면, 단어 자체는 똑같은 대상을 뜻하는 동의어이지만 한국은 '석등'으로 줄여 부르고 일본은 '석등롱'이라는 풀네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며, 한국은 불교적 문화재의 느낌이, 일본은 정원 조경물의 느낌이 조금 더 친숙하게 녹아있다.
모리 가문(毛利家) 정원에는 무려 19기의 석등롱들이 서 있다. 규슈 지역은 명문 다인(茶人)들이 활약하고 차 문화가 굉장히 융성했던 곳이라, 정원 곳곳에 다도 정신이 깊게 배어 있다.
정원에서 석등롱의 역할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당시 다인들의 정교한 기획력을 느끼 수 있다.
다실로 이어지는 정원 길을 '로지(露地)'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순히 걸어가는 통로가 아니라 "속세의 때를 벗고 맑은 마음으로 들어가는 수행의 공간"이었다.
밤이나 새벽에 열리는 다회(茶會) 때, 손님이 어두운 정원 길에서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디딤돌(飛石)을 비춰주는 실용적인 가로등이 필요했던 것이다.
불빛이 너무 밝으면 운치가 깨지기 때문에, 석등롱의 불빛을 은은하게 조절하여 몽환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이다.
모리 가문은 다도에 엄청난 조예가 깊었던 다이묘(대영주) 가문이다.
그렇다 보니 정원을 만들 때 돌 하나, 석등롱 하나도 아무렇게나 배치하지 않았다.
정원을 거닐다 꺾어지는 모퉁이, 물이 흐르는 계곡 근처, 혹은 정원 전체를 조망하는 핵심 위치에 석등롱을 세워 시선이 머무는 포인트(경관의 주인공) 역할을 하게 했다.
다도에서는 인위적인 화려함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자연스러움(와비·사비)을 최고의 가치로 쳤다. 정원에 배치된 석등들이 오랜 세월 이끼를 머금고 자연과 동화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모리가 정문 앞의 이 석등롱은 일반적인 기하학적이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등롱들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인 유물이다.
이 석등롱은 인공적인 가공을 최소화하고 자연석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만든 '산돌등롱' 또는 '야라쿠등롱(野楽灯籠)' 계열의 변형이자, 개념이 깃든 '설견등롱(雪見灯籠)'의 변주형으로 볼 수 있다.
이 등롱이 가장 인상적인 이유는 자르고 깎아낸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거친 자연석들을 툭툭 쌓아 올린 듯한 형태 때문이다.
지붕돌(笠)은매끄러운 갓 대신, 마치 산이나 계곡에서 굴러온 듯한 울퉁불퉁하고 검스름한 자연석을 그대로 얹었다. 촉촉한 가랑비에 젖어 돌의 거친 질감과 깊은 음영이 한층 더 돋보인다.
화창(화사석)도 불을 켜는 가운데 부분만 둥글스름하게 다듬어 창을 냈는데, 이마저도 완벽한 대칭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조약돌 모양을 하고 있어 묘한 매력을 준다.
인위(人爲)를 거부한 '와비·사비'의 극치이다.
돌의 종류와 색상을 다르게 써서 층마다 변화를 준 점이 아주 세련되었다.
맨 아래에는 크고 듬직한 밝은 빛깔의 대지석을 두고, 그 위에 붉은빛이 도는 거친 자연석 중간 받침을 넣었으며, 그 위로 다시 어두운색의 지붕돌을 올렸다.
정원의 설계가가 일부러 질감과 색이 다른 돌들을 수집해 이 조합을 완성했을 것을 생각하면, 대명주(다이묘)의 정원다운 엄청난 집념과 세련된 안목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잘 다듬어진 등롱들은 "나 여기 있소" 하고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이 등롱은 주변의 풀숲, 이끼, 나무들과 경계 없이 어우러진다.
키를 낮추어 바닥에 밀착시킨 구조는 앞서 보신 '설견등롱'의 변형된 특징이기도 하다.
수풀 사이에 수줍게 숨어 있는 듯한 이 배치 덕분에, 마치 사람이 가져다 놓은 조경물이 아니라 "이 정원이 생길 때부터 원래 그 자리에 솟아 있던 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형화된 형태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불완전함'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여겼던 일본 다도 정원의 정수를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다.
이 석등롱은 일본 정원 석등롱의 대표적인 양식 중 하나인 '설견석등롱(雪見石燈籠, 유키미도우로우)'이다. 줄여서 흔히 '설견등롱(유키미테이)'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석등롱과 달리 키가 낮고 옆으로 펑퍼짐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등롱의 명칭과 형태에는 아주 낭만적인 조경 미학이 숨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갓(지붕돌)이 양산처럼 아주 넓고 평평하다는 점이다.
이름 그대로 "겨울에 눈(雪)이 내렸을 때, 지붕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기(見)" 위해 고안된 등롱다.
지붕이 넓은 만큼 눈이 두툼하게 쌓이는데, 하얗게 눈을 머금은 석등과 주변 정원의 겨울 풍경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일본 정원 미학의 극치로 꼽힌다. 그래서 이름이 설견석등롱(雪見石燈籠)이다.
일반적인 석등은 수직으로 길쭉한 중심 기둥(간주)이 있지만, 설견등롱은 기둥이 없고 곡선형의 다리(보통 3개 또는 4개)가 지붕과 불을 켜는 화창(화사석)을 바로 받치고 있다.
이렇게 키를 낮춘 이유는 보통 물가(연못가나 개울가)나 나지막한 수풀 사이에 배치하기 위해서이다.
키가 너무 크면 물가 풍경의 균형을 깨뜨리기 때문에, 수면이나 바닥에 낮게 밀착시켜 안정감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 것이다. 물 표면에 이 등롱의 불빛과 실루엣이 은은하게 비치는 정취를 노린 배치이기도 하다.
겨울에 이곳에 눈이 내리면 이 넓은 지붕 위로 하얀 눈 모자가 폭신하게 얹히는데, 당시 모리 가문의 영주들도 겨울이 되면 저택 창가를 통해 이 설견등롱에 눈이 쌓이는 모습을 가만히 감상하곤 했을 것이다.
정원의 사계절 중 '겨울의 멋'까지 미리 계산해서 배치해 둔 조경가들의 세심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