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좀 무모해지고 천진해지고 싶다. 체면을 챙기거나 나중을 따지느라 좋은 순간에 뒷걸음질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돌아보면 낭만은 언제나 반 발짝 앞에 있었다. 고작 반 발짝인데 거의 전부인 반 발짝이어서, 거기 서기 전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 있었다. 그러니 언제나 반 발짝의 용기를. (p. 75)
휴식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쉼과 멍이 이음동의어 같다. 멍의 순간에는 어떤 조급함도 끼어들 틈이 없다. 느린 호흡과 느린 시선과 느린 마음으로만 이루어진 세계. 이 세계가 나를 감싸고 있다고, 내가 할 일은 이대로 '존재'하는 것밖에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중략) 하나의 풍경을 오래 바라볼 줄 아는 사람. 그 시간이 지루하지도 무용하지도 않다고 여기는 사람. (중략) 무엇이든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본다. 어제와 달라진 점을 찾는다. 바라보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풍경을 가진다.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린다. 이상하다. 멍의 시간을 갖는 것뿐인데 왜 다시금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기분이 들까? (pp. 109-110)
"인생 뭐 있나.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가고 싶은 데 가고, 보고 싶은 사람 보며 사는 것. 그게 인생이지." (p. 115)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다는 '자율성', 어떤 것을 배워가면서 더 나아진다고 느끼는 '성취감', 마음 맞는 사람이 나를 알아주는 '연결감'. (p. 203)
세상은 재미난 곳입니다. 하늘을 나는 놀라운 애들도 있고 아주 작고 작은 애들도 있어요.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들도 있고 흥미로운 냄새가 나는 것들도 있죠.
이맘때면 덥기도 하지만 바람이 불면 시원해져요.
바람은 먼 곳의 냄새도 데리고 오죠.
...... 때로 궁금해요.
왜 더 많이 밖에 나오지 않아요?
세상이 늘 이렇게 있고 꼬박꼬박 매일이 주어지는데 왜 이것들을 더 많이 누리지 않죠?
– 도대체, <태수는 도련님> 중에서 (p. 235)
지나간 기록을 들춰볼 때마다 생각한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고, 볼 때마다 새로이 알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지금 막 도착한 여행자의 마음으로 걷고 싶다고.
느리게 걸으며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다 보면 나도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진다. 나 이상이 되려고 애쓰는 대신 충분히 나로 존재하기.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아마 머리 위로 툭 떨어지는 버찌를 닮고, 자맥질을 배우는 새끼 오리를 닮는 일일 것이다. 걷는 사람의 마음에 고요가 깃든다면 그건 걷는 시간이 자연스러움을 배우는 시간이어서가 아닐까. (중략) 만약 당신이 산책자라면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걸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산책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날이란 없다.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 영혼에 맡겨진 순간순간을 잘 활용하고 싶다. 그것이 내게는 걷는 일이다. (pp. 237-238)
망할까 봐 두려워서 아무 선택도 하지 않거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을 스스로 '실패'라 부르는 대신, 계속해 보고 싶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좋은 실패, 실은 좋은 경험을.
그럼에도 좌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땐 '열린 결말'이라 생각해 보기로.
이 경험이 나를 어떤 길로 이끌어갈지, 어디까지 데려갈지 지켜보는 마음으로 걷고 싶다. 덜 낙담하면서 더 씩씩하게,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한 편의 이야기 속을. (p.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