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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if]-->2014 봄 불교대 경주 남산순례는 전국 불교대생을 대상으로 네차례에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오늘은 그 네 번째 마지막 행사가 진행된 날이었습니다. 대전충청, 광주전라, 대구경북, 부산울산, 경남지역 600여명의 불교대학생들이 이른 새벽길을 달려와 경주 남산아래 모두 모였습니다. ‘세월호사고’로 전국이 애도와 침묵으로 잠겨 있기에 오늘 행사는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불교대생들과 함께 하지 않고 새로운 코스를 점검하기 위해 답사에 나섰습니다. 오늘은 약수골로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스님께서는 지금까지 갔던 길중에 가장 가파르다고 하셨는데, 처음에는 길이 아주 완만하였고 길가의 많은 연달래가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무너진 절터가 보였습니다. 그 절터 앞에는 목이 사라진 석조불상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목을 복원해야겠다면서 석조불상 뒤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셨습니다.
이 석조불상이후부터는 길이 매우 가팔랐습니다. 또 다시 한참을 가다보니 마애여래입상이 아주 큰 바위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앞에 발로 보이는 부분이 떨어져 나간 채로 대충 불상앞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발부분이 떨어져 나갔던 것을 대충 그 자리에 넣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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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있는 불상중에는 가장 큰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이 불상 또한 몸체만 바위에 새겨져 있었고, 머리부분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머리부분은 조각을 해서 만든 것 같은데, 떨어져 나가고 없었습니다. 이 불상의 머리부분에 스님께서 섰더니 원래 부처님의 얼굴보다도 스님의 모습이 훨씬 작은 듯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가셨던 분들이 같이 옆에 섰는데도 왠지 원래 불상의 머리만큼은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 있는 부처님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이 매우 가팔랐습니다. 겨우 정상에 도착해서 기념촬영을 한 후 바로 국사골로 내려갔습니다. 초반에 길을 잘못 들어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다보니 험난한 길을 가다가 중간에 다시 등산로를 만나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다 보니 국사골 제4지 삼층석탑이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다시 산을 올라 탑을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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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유물들이 아직 복원되지 않은 상태에서 탑만 복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탑에 참배를 한 후 바로 내려왔는데도 예상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스님께서는 어제와 같이 대중들이 앉을 자리를 톱과 낫으로 정비하고 난 후 공양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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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여섯 골짜기를 지역별로 각각 나누어 순례를 하고 돌아온 불대생들은 예정된 시간에 맞춰 속속 숲속 너른 숲터로 모여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오셔서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에게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가까이에서 스님을 처음 보는 불대생들은 예상치 못한 만남에 당황해 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행복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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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공양을 마친 후 각 지역에서 온 불대생들 모두가 한자리에 둘러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지역 법당들을 하나하나 호명 하시며 불대생들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전국에서 모여서 그런지 그 지역마다 스님의 소개에 환호하는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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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가 모두 끝나고 남산의 43개의 골짜기 마다 숨어있는 150여개의 절 터, 100여개의 탑 터, 120여개의 불상들이 생겨나게 된 유래들을 역사와 설화를 바탕으로 자세히 설명하신 후 불대 교육과정 중에 왜 남산을 순례하는지에 대한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남산에는 크고 작은 절들이 골짜기 마다 자리하면서 민중 신앙의 요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조각하는 재주가 있으면 직접 가서 불상을 새기고 자기가 절을 하나 짖고 싶으면 돈 조금 주고 조각하는 사람 시켜서 불상 하나 만들고 이렇게 하다보니 굉장히 유명한 조각가는 불국사나 석굴암에 가서 작업하고 남산은 아마츄어 수준정도의 사람들이 와서 새겼기 때문에 불상이 예술적으로 굉장하다는 것은 없지만 해학적이고 친근감 있고, 가까이 갈 수 있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이 저 높은 선반위에 황금빛으로 앉아 있으면 절만 하고 가야 되는데, 여기는 가서 만져도 보고 팔짱도 껴보고 절도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불상이 굉장히 많아 친근감이 있고 부처님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좋은 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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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는 항상 바른 불교, 정법으로써 불교를 중요시 합니다. 그런데 정법으로써의 불교가 약간 치우치면 엘리트 불교가 되기 싶습니다. 또, 생활과 유리된 불교가 되기 쉬운데 바른 불교를 할 때 반드시 엘리트 불교가 아닌 대중 불교를 해야 됩니다. 대중 불교를 할려면 그 바른 불교를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복준다 이러면 쉽긴 하지만 바른 불교는 아닙니다. 바른 불교를 하되, 그 전달방법이 아주 쉬워야 되고, 그것이 내 삶의 문제, 내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해 나가려면 수행을 해서 자기 삶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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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타인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게 보시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토회의 지침이 수행·보시·봉사입니다. 여러분들이 불교대학에서 불교를 배우는 것은 바른 불교를 행하는 것이고 불교대학에서 강의 만 듣지 않고 봉사를 통해 직접 해보고 수행도 직접 해보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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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가 하는 공부도 경주 남산의 민중신앙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경주 남산의 민중신앙, 실천신앙을 현장에서 보고, 기도도 하면서 이곳에 부처님의 정신이 어려 있음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이렇게 모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신라시대 초기 지나치게 엘리트 불교로 치우치던 시대 원효대사의 일화와 경흥국사의 일화를 재미있게 이야기 해주시면서 그 속에서 우리 한국불교와 불자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시켜 주셨습니다.
스님을 통해 듣는 역사속 일화들은 손으로 곧 잡힐 듯이 생생하면서도 그 속에 재미가 있어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순식간에 보석같은 지혜들을 버무려 내시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법문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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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법문이 끝난 후 이어서 불대생들이 공부하면서 들었던 의문들이나 생활하면서 어려운점들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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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하고 26년 살았는데 남편하고 사는게 힘이 들고 요즘같은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 미래를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묻는 분, 불교대학 수업을 듣다가 정견과 사견에 대해 이해가 잘되지 않았고 사견중에 상견, 단견에 대한 이해가 어려웠다면서 자세한 설명을 묻는 분, 또,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연등 달기를 했는데 집주인이 기독교인이라 연등을 달지 못하게 해서 불편한 마음이 많이 들었는데 그럴 때 예라고 하는 것이 나은것인지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내어야 되는지 묻는분등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마지막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 해주신 답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분과 대화하고 만나고 한번 안된다면 다섯 번쯤 만나서 연등을 달아야죠.(대중들 큰웃음) 근데 그분이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화가 나면 내문제입니다. 화가 날 때는 나를 봐야 됩니다. 내가 옳다고 고집하구나 하고 나를 보고 고집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지, 자신의 의견을 내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등을 달고 싶으면 이렇게도 이야기 하고, 저렇게도 이야기 하고, 커피도 사주고, 빌어도 보고, 선물도 사주고, 법에 걸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걸 원력이라고 합니다. 화나고 성질나고 내가 미쳤다고 이런 것 까지 하는가 하면 그건 집착입니다. 안될 때 때려 치워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집착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안될수록 더 연구가 되어지면 원력입니다. 원력이라고 백프로 성취 되는건 아닙니다. 이번에 도저히 안 될 수도 있지요 그러면 다음에는 집 구할 때 더 주의를 하게 되고 그걸 통해 샛방살이의 서러움도 알게 되고 그렇습니다. 섯불리 포기하시지 마시고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해보십시오.”라고 답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늘 있는 문제들이 스님을 만나는 순간 판단은 명료해지고 단순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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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는 밝고 씩씩하게 “예, 알겠습니다”라며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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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대생들과의 즉문즉설 시간이 끝나고 다음 행사 장소인 염불사로 줄지어 이동했습니다. 길게 뻗은 순례 행렬들 속에 곱게 피어있는 갖가지 꽃들도 오늘 우리들 마음만큼이나 가볍게 한들거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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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에 도착한 스님과 불대생들은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불대생들에게 정성을 다해 먼저 개인의 자기발원을 하고, 두 번째는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명복을 빌고 실종자들의 무사를 빌며, 세 번째는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길 당부하셨습니다. 600여명이 함께 모여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모습은 경건함 그 자체입니다. 초록이 한껏 익어가는 경주 남산아래에서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간절한 염원들을 품고 계실까 궁금해지기도 하면서 하루빨리 세월호 실종자들의 소식이 전해오길 바래보았습니다.
오늘로써 2014년 봄 불대 경주남산 순례행사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자연의 위대함 역사의 위대함 속에서 지금여기의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다시 새겨 보는 의미있는 시간들이 지나갑니다. 전설속의 휘황찬란한 곳이 아닌 일상의 삶속에 고통받는 삶속에 부처님을 만나고 이해했던 값진 시간들이 사월의 남산에서 엮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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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부터는 경주의 서라벌 문화회관에서 희망강연이 있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경주정토회의 2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께서 열심히 준비해 주셨습니다. 강연장 입구부터 밝은 표정으로 570여명 가량의 손님들을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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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는 강연에 앞서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인해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실종자들이 무사히 생환 할 수 있도록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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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에서 “열반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던 이 고락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괴로워지지 않는 방법을 증득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똑같이 힘든 환경에서도 내가 임하는 자세에 따라 삶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래서 힘듭니다’하고 괴로워 할만한 일이 있다면,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꿔야 합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바꿔서 문제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라고 하시며 모든 문제나 불행은 내가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달렸다고 하시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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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앓고 있는 20대 유학생 딸의 문제로 고민이신 여성분, 술버릇이 안좋은 남편 때문에 별거를 시작하신 60대 여성분, 공항장애등 건강상의 이유로 직장생활도 그만두고 앞으로의 삶의 대한 걱정이 많은 20대 여성분, 한집안에서 시부모님의 종교전쟁 때문에 고민이신 종갓집 주부, 알콜중독으로 몇 년째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계신 분등이 스님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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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우울증을 앓고 있는 20대 유학생 딸의 문제로 고민중이신 첫 번째 질문자의 고민에 스님께선 “여기서 질문자가 반성할 부분은 뭐냐면, 우울증환자는 치료를 먼저 해야 하는데 질문자는 딸의 공부를 생각하고 있잖아요. 아픈 사람은 치료부터 해야 하는데 어렵게 공부한 거 포기하는 것을 아까워하고 있지 않아요? 아이가 병이 나면 치료가 우선이지, 다른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 발병했을 때 무조건 치료를 최우선으로 했으면 이렇게 만성으로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가 학업을 완성했으면 하는 부모의 바램이 아이의 불안을 더욱 조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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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중학교 3학년 어린나이에 외국에 나가 유학하면서 불안하지 않았겠어요? 마음의 상처를 입은 걸 알았다면 귀국시켜서 치료를 했어야지, 좋은 학교를 우선해서는 안됩니다. 아직도 엄마입장에서 정상적인 아이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습니다. ‘아이의 건강이 최우선이다’는 목표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울증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자라는 과정에서 정신적 좌절과 상처로 우울증이 나타났다면 정신과 치료를 해야 합니다.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를 살펴보고 약물치료와 동시에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만성이면 지금보다도 조금만 더 개선되면 된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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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조금 호전이 되면 부모는 아이가 ‘못 마친 학업을 계속하면 안될까?’ 하는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엄마는 지금 이 현재 상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 5년이나 치료해야 한다는 것에 두려워하고 있어요. 자식자체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지 ‘병의 완치’와 ‘공부’에 매달리면 안됩니다. 조금씩 개선되는 것에 감사해 하고, ‘고맙다, ‘그만하길 다행이다’ 라고 말해야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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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울 때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였을 것입니다. 아이의 현 상태를 감사하고 지지 해줘야 합니다. 이게 최선의 길입니다. ‘엄마는 다만 현재의 너의 상태로도 만족하고 너를 후원해 주겠다’라고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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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의 인연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기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움츠러들어서 기를 못펴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해방시켜 줘야 합니다. 격려하고 믿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20살이 넘으면 지원을 끊어줘야 합니다. 서른이 넘어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자식의 의지심만 키우게 됩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울 때 무심코 ‘자식 키우는 게 힘들다’ 말하면, 부모를 힘들게 하는 불효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 키우는 것이 행복해요’하면 부모를 행복하게 하는 효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정말 자식이 없었다면 삶의 깊은 맛을 몰랐겠구나.’ 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진짜 진리의 길은 내가 결혼하고 자식이 있기 때문에 더 깊이 깨달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정말 자식을 아끼는 것입니다.”라며 어떤 것이 자식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인지를 다시한번 짚어주시면서 오늘 강연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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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후 사인회를 마치고 오늘 하루 활동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내일은 거제도 애광원 원생들과 경주 나들이와 포항시청 강연이 있습니다.
오늘 경주남산순례는 대구태전법당 권명숙님이, 경주 강연은 정란희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