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고전독서-시카고플랜] 5 마키아벨리 - 《군주론》
정치와 도덕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풍요의 시절로 생각하기 쉬우나 정치적으로는 갈등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당시 프랑스와 독일은 통일국가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내분을 겪고 있었던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독일의 침략까지 받는 처지였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당시 피렌체는 덕망을 겸비한 로렌초가 메디치 가문의 독재 전통을 잇고 있었다. 그러나 로렌초가 죽고 프랑스의 침략까지 받은 혼란의 상황에서,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쫓겨난다.
피렌체의 정체가 공화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마키아벨리는 제2서기장에 오른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정치인이 체사레 보르자이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단호함과 대담함 그리고 세심함을 모티브로 《군주론》을 집필한다. 스페인군이 피렌체를 점령하고, 스페인에 망명해 있던 메디치 가문이 다시 집권하면서 전 정권에서 녹을 먹었던 마키아벨리는 투옥되었다가 작은 농장에 칩거한다. 마키아벨리는 이 칩거 기간 동안 집필에 몰두했고, 관직을 얻고 싶어 《군주론》을 헌정했으나, 메디치 가문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인자함도 서투르게 발휘하면 못쓴다. 예컨대 체사레 보르자는 잔인한 인간으로 통했었다. 그러나 그의 이 잔인함은 로마냐의 질서를 회복하고 이 지방을 통일하여 평화를 지키고 충성을 다하도록 하였다. 군주는 자기의 백성을 결속시키고 이들이 충성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잔인하다는 악평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군주에게는 절대 권력이 필요하며,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무방하다. 정치에는 도덕적 요소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도덕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하루빨리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이만한 정치술도 없었다. 그러나 군주의 자격 또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군주에겐 국민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하다. 때문에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총명함과 조국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군주란 야수의 성질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지만, 이런 경우 특히 여우와 사자의 성질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사자는 책략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힘에 있어서 여우는 늑대를 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함정을 알아차리는 데는 여우라야 하고, 늑대의 혼을 빼려면 사자여야 한다. 그저 사자의 용맹만을 내세우는 자들은 졸렬하기이를 데 없다.
이는 군주 이전에 인간에 대한 통찰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란 본디 선하지 않은 존재임을 전제한다. 다스리는 군주나, 다스려지는 군중이나…. 그는 대중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는 쉽게 현혹되지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쉽게 등을 돌리는 변덕스러운 존재로 규정한다. 그 변덕스러운 대중을 지배하기 위해 군주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반인반수가 되어야 한다. 필요에 따라선정(善政)을 베풀기도 하고, 폭정을 가하기도 하는, 선과 악을 모두 시행하는 강력한 존재로서의 군주만이 대중을 복종시키고 다스릴 수 있다.
마키아벨리즘
프랑스의 법학자 이노센트 젠틸레는 《군주론》에 담긴 정치사상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고, 이후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술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역사의 여러 독재자들에게는 복음서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였다. 그 자신도 공화정 체제에서 벼슬을 했었던 마키아벨리는, 단지 조국의 어려운 실정을 극복할 수 있는 효율성에 대해 논했던 것이다. 《군주론》은 군주제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는 경우이다. 즉 이왕 군주제가 되었다면, 군주가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놓은 것이지, 모든 정체(政體)에 해당하는 지침은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대중이 공화제를 운영할 수 있을 만큼 깨어 있지 못한 국가라면 차라리 군주제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군주제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은 국민들 스스로가 자초한다는 것. 따라서 《군주론》은, 군주제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국민 개개인의 정치의식을 고양시켜야 한다는, 민중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거짓말쟁이가 되십시오. 혼란을 일으키십시오. 두려움에 떨게 하십시오. 권력은 오랫동안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인간들이란 다정히 대해 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소한 피해에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는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 덜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불리할 땐,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 합니다. 군주는 능숙한 거짓말쟁이여야 합니다. 자유에 익숙한 자들을 지배하기 위해선 내분을 조장하거나 주민을 분산시키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자유의 기억을 망각할 것입니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적혀 있는 군주의 자격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에 대한 루소의 평가는 왕을 가르치는 척만 했다는 것이다. 군주란 원래 이런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그가 진정으로 일깨우고자 했던 이들은 바로 민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