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증언[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다](증 언 자 : 김길식)

[송골매]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다

증 언 자 : 김길식(남)
생년월일 : 1961. 7. 7 (당시 나이 20세)
직 업 : YWCA 신협근무 (현재 제일신헙 근무)
조사일시 : 1988. 9


개 요

1980년 당시 YWCA 신협에 근무하던 김길식씨는 일찍부터 사회의 모순을 읽어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고 김영철, 박용준씨 등과 교류를 가진다. 5월 27일까지 YWCA에서 경계근무를 서다 붙잡혀 곧 풀려났으나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얘기이다.


헌책 찢으며 공부

나의 아버지는 전쟁고아셨다. 6.25 때 가족을 잃고 혼자서 광주 양림동에서 고아원 일을 돌보며 생활하셨다. 어머니께서는 행상을 하고 고물장사도 하면서 참으로 억척스럽게 우리를 가르치셨다. 위로는 형님과 누나가 계시고 아래로 여동생이 1명이 있다.

우리는 1980년 당시 지원동 산에서 살았다. 가난했기 때문에 친척의 집을 빌어 살면서 선산을 지키는 산지기 노릇을 했다. 아버지께서는 숭의실고 차고에서 차량을 지키는 차고지기로 일하셨고, 어머님은 고물장사를 하고 계셨다.

나는 상업고등학교 야간을 졸업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학비를 벌기 위해서 상고 야간을 다니면서 낮에는 조선대 대학원 교무과에 근무했으며 새벽으로는 신문배달도 했다. 조선대에 근무하면서 나는 대학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 이유는 교수들의 권위적 태도와 상고 야간생이었던 나에 대한 인간적 차별 때문이었다. 늦게나마 입시를 준비하면서 친구들의 헌책을 빌려 보았는데 공부할 때는 한 장씩 찢어가면서 했다. 완전히 외우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8권 정도를 찢었던 걸로 기억한다.


폭풍 전야의 광주

1980년 그해는 내가 성인경상전문대학의 야간에 입학한 해이면서 또 YWCA 신협 에 신입사원으로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해였다. 또한 그해는 내 인생이 죽었다 다시 살아난 해였으며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야 했던 참혹하고 슬펐던 전환기였다.

그해 내 나이 겨우 스무 살이었지만 내 삶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었고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의 봄기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5월이 되면서 다른 대학에서는 시위로 북적대는데 우리 학교는 잠잠했다. 나는 거리에서 주운 '민주회복'이라고 쓰인 리본을 달고 수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도청 앞에서 횃불성회가 있었던 5월 16일은 같은 과 친구들 40여 명을 데리고 스쿨버스로 도청 근처에서 내려 참여했다. 5.16 화형식도 보았고 직접 피킷을 들고 유동 삼거리까지 행진도 했다. 폭풍 전야를 겪은 셈이다.

5월 18일, 그날이 일요일이었으므로 출근하지 않고 지원동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었다. 그곳에서 김대중 씨 등이 잡혀갔다는 방송을 들었다. 심상치 않은 생각도 들고 시내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서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명동 쪽으로 나가보았다. 그때가 오후 4시경. 동명동 쪽 길에는 최루탄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갑자기 청운학원 앞길로 군용 트럭 3대가 질주해 오는 것이 보였다. 트럭에 탄 공수대원들은 곤봉을 머리 위로 쳐들고 휘두르면서 의기양양하고 위압적인 태도로 광주땅에 입성하고 있었다.

길가에 있던 몇몇 노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저것들이 뭐 하러 왔느냐?"

고 말하자 한 공수대원이 노인들에게,

"야! 쌍놈의 자식들아!"

하면서 욕을 해댔다. 또 공수부대원들이 젊은 우리들을 보고,

"저놈 잡아라!"

라고 소리치자, 우리는 놀라서 학동 쪽으로 도망을 쳤다. 학생들이 동명동 일대의 파출소를 세군데 파괴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날은 그대로 소태동 집으로 들어 갔다.


도리깨질하는 듯한 매타작 소리가

19일 아침에는 정상대로 YWCA 신협에 출근을 했다. 내가 신협에서 상사로 모시고 있던 김영철 씨는 광천동 '들불야학'에 관계하시면서 지역빈민운동에 헌신하고 계시던 분이었다. 무등육아원에서 고아로 자라났던 박용준 형도 신협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그날 따라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오전 9시경 영철 형의 심부름으로 광천동에 운동화를 가지러 갔던 나는 용준 형이 궁금해서 용준 형 집에 들러봤다. 용준 형은 광천동의 빈민아파트인 광천 삼화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내가 갔을 때 용준 형은 감기 때문에 앓아 누워있었다.

용준 형을 비롯해서 무등육아원 출신의 형들과 나는 평소에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모두들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해서 맨몸뚱이로 세상을 헤쳐나가며 고생깨나 하고 있던 형님들이었다. 용준 형은 평상시에 아주 과묵한 성격이었으며 시국관이 매우 명확했고 결단력이 있었다.

"용준형 함께 출근합시다."

라고 말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나왔다. 내가,

"용준형, 요즘 시국이 어때?"

하고 물어봤는데 용준 형은 내 뒷머리를 살짝 치면서

"아무 말 하지 마."

라고만 했다.

금남로 4가 중앙교회 앞까지 왔을 때 시위대들과 공수부대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시민들이 삿대질을 하고 욕을 하면서 돌을 던졌고, 공수부대는 착검을 한 채로 시민들을 쫓아가는, 밀고밀리는 공방전이었다.

그날 오전은 시내가 무척 살벌했다. 공수부대는 닥치는 대로 시민들을 두들겨 패서 끌고 갔으며 충장로 쪽에서는 청년들을 '몰이'해서 잡아갔다. 신협 사무실에도 쫓기던 청년들 10명 가량이 뛰어들어와서 곧바로 셔터를 내렸는데 뒤쫓아오던 공수대들이 다시 셔터를 들어올리고 들어왔다. 학생 3명을 직원처럼 가장해서 자리에 앉혀놓았었지만 결국 학생인 것이 발각되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며 끌려 나갔다. 나는 양복 정장 차림이었던 덕에 학생으로 몰리진 않았다. 학생들이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던 양서협동조합(YWCA 건물의 1층은 신협이었고, 2층은 양서협동조합이었음)의 황일봉 씨가 공수부대에게,

"이런 게 내 조국이야? 왜 때려?"

하며 대들다가 곤봉으로 상당히 두들겨맞았는데 우리 직원들이 간신히 빼내왔다.

바깥에서 도리깨질하는 듯한 매타작 소리가 들리기에 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았다. 도로 바닥에 학생들을 20여 명 가량 엎드리게 해놓고 공수부대들이 발로 지근지근 밟고 다니며 곤봉으로 후려치는 모습이 보였다. 신협의 맞은편 건물이 전남고시학원이었는데 위층에서 창문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학원 학생들이 공수부대를 향해 욕을 했다. 그러자 공수대들은 우루루 학원 건물로 뛰어올라가더니 학생들을 끌고내려와 곤봉과 개머리판으로 두들겨팬 후 허름한 소형 버스(창문은 신문지로 모두 가려져 있었음)에 모조리 싣고 가버렸다.

김영철 형이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할 것이니 일단 퇴근하고 당분간 집에 있으라고 하기에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는 도중 별판 하나가 달린 지프차가 시내를 질주하는 것을 보았다. 순간 이것은 몇몇 군인들이 잘못하고 있는게 아니라 큰 세력들이 관계되어 권력을 장악하려는 계획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일에는 집에 있기가 답답해서 오후에 금남로로 나왔다. 아버지께서는,

"시내에 나가면 죽는다."

고 말리셨지만,

"왜 당신 자식만 소중한 줄 아시느냐?"

고 대들고는 부엌에서 식칼을 대나무에 달아매고 시내 황금동까지 걸어서 갔다.

황금동, 지금의 미문화원 앞길에서 시민들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몹시 매웠다.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이 군인들은 전날의 군인들이 아니라 새로 교체된 후속부대라고 했다. 그곳에서 시민들과 함께 바리케이드를 치고 계속 돌맹이를 던지며 시위를 했다. 황금동 술집의 아가씨들이 빈 맥주병을 많이 날라다주어 맥주병도 많이 던졌다.

그날 저녁 MBC방송국과 광주세무서가 불타는 것을 목격했는데, 내가 본 바에 의하면 MBC방송국에 주둔해 있던 군병력이 철수하면서 장갑차 위에서 기관단총으로 MBC 건물을 향해 사격을 했었다. 그날밤은 아버지가 계시는 숭의실고 차량부에 가서 잠을 잤다. 밤새 바깥이 시끄러워서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시내로 나갔다.


아비규환의 도청 앞 광장

그날은 석가탄신일이었다. 딸기가 많이 나오던 때였는데도 사람들은 딸기를 먹을 수가 없다고들 말했다. 피를 너무 많이 봐서 비위가 몹시 상했던 때문이었다.

아침에 상업은행 앞 웬 여자가 은행 앞에서 청바지를 입고 마이크를 든 채로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 앞에는 리어커에 시체 2구가 태극기에 덮여 실고, 피묻은 태극기 아래로 양말이 신겨진 발목이 덜렁덜렁 했다. 어젯밤 광주역 앞 전투에서 죽은 시민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순식간에 십만에 육박하는 군중이 모였다. 얼마나 모였는지 보려고 소년체전을 알리는 홍보용 아치에 매달려서 보니까 금남로 끝이 안 보일 정도였다. 마이크를 잡은 여자를 중심으로 계속 도청 쪽으로 밀고 가서 결국 YMCA와 전일빌딩 앞까지 시민들이 전진했다. 그 상태에서 동구청 뒤쪽으로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다. 나도 그곳에 가서 돌을 던졌고 최루탄도 맞았다. 도청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여자가 광주시장 출두를 요구했다. 시장이 나오더니 '광주시민 만세'를 외쳤다. 시민들은 도청 쪽의 군 저지선을 뚫으려했지만 최루탄이 밀가루처럼 쏟아져내려 군중이 흩어졌다.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넘어지면 그대로 밟혀 죽을 만한 상황이었다. 하늘에서는 헬기가 계속 선회하고 있었고, 시민들은 다시 모여들었다. 약 1시경 어떤 시민들이 버스 3대, 장갑차 1대, 6톤 트럭 4대가 도로를 꽉 메우며 들어왔다. 먼저 계엄군에게 철수할 것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자 얼굴에 수건을 쓴 사람들이 차에 올랐다. 계엄군들도 장갑차 위에서 사격준비를 했다. 나는 전일빌딩(?) 공사장 위로 올라가서 그 광경을 보았다. 1시 20분경 시위대 차량에 탄 사람들이 군 저지선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분수대를 우로 돌아서 계엄군을 향해 전진하자 군인들은 노동청 쪽으로 밀렸고 시민들은 "와"하는 함성을 질렀다. 불과 30여 초도 되지 않아 '타당탕탕' 총소리와 함께 처절한 비명소리로 도청 광장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었다. 그 많던 사람들은 모조리 골목골목으로 숨어 들어갔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10여 명이 조준사격을 받아 쓰러지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그곳에서 내려와 YWCA 2층으로 갔다. 그곳에서 밖을 보니 도로에는 총 맞은 시체들이 널려 있고 전투경찰들이 시체들을 들것에 실어나르고 있었다. 군인들은 계속 쫓아다니면서 사람만 보이면 총을 쏴대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나는 YWCA 건물에서 나와 전여고 근처의 녹두서점으로 갔다. 윤상원 형이 그 서점에 있었는데(이 형은 마지막 항쟁의 날 전사했다), 상원 형뿐만 아니라 박효선, 전용호 형, 전남대 학생들이 모여서 광주의 상황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 내용들은 대항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광주시내에 기름은 얼마나 있는가, 차량 동원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식량은 얼마나 되는가 등의 이야기였다. 그 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투쟁을 결정하고 세부사항을 논의하였다.

밖으로 나와보니 시민들이 이미 총을 두려워하지 않고 각목 등으로 차량을 두들겨가면서 몰고 다니고 있었다. "전두환 찢어죽여라"를 외치면서 사람들은 무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화순 무기고로 가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겁도 났고 무서워서 함께 싸우지 못하고 오후 3시경에 집으로 돌아갔다. 해질녘에 들어 오신 어머니께서 기독병원에 시체가 많이 있는 것을 봤다고 하시면서 절대로 시내엔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날 밤은 조대 공전에 다니던 이웃집 형과 함께 그 집에서 잠을 잤다. 가택수색에 대비해 몽둥이와 돌을 벽장에 두고 문을 걸어 잠궜다. 유난히 총성이 심하게 나던 밤이었다.


카빈 소총 1정을 지급받아

다음날 아침(22일) 목요일이었다. 아침에 학동 쪽으로 걸어가보니까 민가와 건물 등에 기관단총 자국이 많이 있었다. 지원동 쪽 다리 근처에 군용 지프차 1대가 부서져 있었고 큰 트럭도 있었다. 사람들 말을 들으니 밤 사이에 계엄군이 시민군들에게 밀려나면서 시민군의 총격을 받아 운전병과 군인들이 죽었다고 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핏자국은 볼 수 있었다. 큰 군용 트럭 안에는 실탄이 실려 있었다.

오후에 광주공원에서 카빈 소총 1정과 실탄을 배급받고 차량(시내버스)에 탑승하여 주월동 사거리 쪽과 지원동과 산수동 일대를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손을 흔들어주고 박수도 치면서 밥을 올려주는 등 환호가 대단했다.

금요일(5월 23일)은 학동 두꺼비사진관 맞은편의 숭의실고 건물로 올라가서 3층에서 경비를 섰다. 외곽으로 빠져나간 계엄군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인원은 맞은편 두꺼비사진관 쪽에 8명, 숭의실고에 7명쯤(정확하지는 않지만)으로 약 15명이었다. 가지고 있던 무기로는 다이너마이트 두 묶음, 수류탄 2개, 총기 10여 정이 있었다. 무기는 변변치 않았지만 만약 계엄군의 탱크가 밀려들어온다면 다이너마이로 폭파시키기로 작정을 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모두가 그밤을 지켰던 걸로 기억한다.

계엄군으로부터 빼앗은 페퍼포그차를 시민군이 몰고 그곳을 지나면서,

"여러분, 오늘 밤에 경비를 잘 서십시오."

라고 방송을 했다. 학동지역 주민들이 저녁에 커다란 비닐자루에 밥이며 김치를 가득 해와서 그것으로 식사를 했다.

밤이 왔다. 초승달이 떠 있었는데 몹시 불안했다. 그래서 맞은편 사진관 옥상에 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곳에 약 40세 가량 들어 뵈는 예비군 형님 한분이 말씀하셨다.

"예비군이 모두 일어나야겠어."

월남전에 참전했던 경험이 있다는 그 형님이 시키는 대로 종이를 태워 얼굴에 바르는 야간위장을 하고서 밤을 새웠다. 교대로 잠을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 광주천 수색을 나갔다. 배가 고파 잠깐 집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데 지원동에서 자동소총 소리가 '따르르르' 소나기 퍼붓 듯 요란하게 들려왔다.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YWCA에 갔더니 전남대 여학생들이 모여 홍보용 전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투사회보'였다. 거기에 씌인 내용들은, "광주시민이여, 끝까지 항거하자, 전두환 도당은 3일밖에 못 간다, 국제적인 여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는 등의 것이었다.


도청 경비팀으로 배속 받아


24일 토요일 비가 왔다. 나는 홍보반에 들어갔는데 저녁쯤 전남대 스쿨버스를 타고 사직공원 쪽에 있는 보성기업까지 갔다가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용준 형과 함께 광천동까지 갔다. 비를 철철 맞으면서 밤길을 둘이서 걸어가는데 기분도 굉장히 착잡하여 용준이형이나 나나 거의 입을 열지 않은 채 걸어갔었다. 용준형은 감기 때문에 자주 콜록거렸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밥도 안 먹은 채 YWCA로 갔다. 그날은 25일 일요일이었는데, 나는 YWCA에서 하루 종일 형님들의 심부름을 하고 다녔다. 형들은 사태에 대해 몹시 걱정스러워하고 있었다. 저녁 7시에 학생들이 1백여 명쯤 모여서 사태수습을 위한 회의를 갖고 난 후 도청으로 들어갔다. "도청에서는 폭도 같은 사람들이 총을 장악하고 있어 인식이 좋지 못하니 학생들이 질서를 회복하자"는 내용의 회의였다.

나도 학생들을 따라가 도청 상황실로 갔다. 김성용 신부님께서 오셔서, "우리 광주 사람은 개돼지 취급을 받았으니까 인간 대접을 받으려면 끝까지 투쟁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말을 들으니 무척 용기가 났다. 상황실에는 전라남도 지도가 있어서 시민군과 계엄군의 대치지점 등과 우리 시민군의 활동범위 등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날 밤은 도청 상황실의 탁자에 기대어 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서 나는 도청 경비팀으로 배속을 받아 자체경비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무기를 회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아들과 양아치 등의 사람들이 절대 무기를 반납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맞섰다.

아침에 계엄군이 탱크를 몰고 오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각자 자기 위치로 가서 싸울 태세를 갖추는데, 김성용 신부께서 오셔서, "월산동까지 오던 탱크를 돌려보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시간이 아침 8시경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도청 앞에서 가족의 시체를 확인하러 온 사람들을 신분증을 확인한 다음 도청 안으로 들여보내는 일을 맡아했다. 주로 나이 드신 분들만 들여보냈다. 신분증 검사를 했던 이유는 상황이 불안했던 터라 간첩도 경계를 했었고, 특히 정보원들을 의식했던 때문이었다.

내가 도청에 있을 때 보았던 것은 도청 지하실에 있던 만원권, 오천원권의 지폐들과 시계 따위의 것들이었다. 기동타격대가 시내를 순찰하다가 도둑을 잡아 훔친 물건을 압수해서 보관하던 것이라고 했다. 도청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돈을 쓸 수 없는 세상이 올 거라는 그런 절박한 심정을 당시의 우리들은 갖고 있었다.

오후에는 외신 기자들이 많이 왔다. 국내의 기자도 왔었는데, 내가 개머리판으로 위협하며, "당신은 취재해 봤자 광주에 불리한 기사만 쓰니까 꺼져!" 라고 욕을 하면서 쫓아버렸다. 일본의 마이니찌신문 기자가 총을 든 내 모습을 찍어갔다.


최후의 날, YWCA 경계근무를 서다

저녁 7시경에 어머니가 도청으로 오셔서 "집으로 오라"고 계속 설득을 하시기에 할 수 없이 YWCA로 내 자전거를 가지러 갔다. 거기에서 일하고 있던 전남대 여학생들이,

"길식씨 가려고? 우리 여자들도 이렇게 투쟁하는데."

라고 말하기에 부끄럽기도 해서,

"아니, 안 가."

"나는 뭣을 했으면 쓰겠어?"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투사회보를 밀려고 하니까 종이를 좀 사오라고 하기에 문방구에 가서 종이를 샀는데, 가게 주인이 돈보다 더 많이 주었다.

그날밤 도청 안에 있던 사람들이 두 파로 나뉘었다는 말을 들었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는 못했지만 들은 바로는 투항하자는 쪽과 총을 들고 싸우자는 두 개의 파로 나뉘었다는 것이었다. 영철 형이 화난 얼굴로 들어와서 내게,

"길식아, 빨리 총 다섯 자루만 갖다놔라, 더러운 자식들!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비겁하게."

라고 말했다. 그날 밤 용준형은 YMCA에서 고아 출신들끼리 최후의 만찬을 들었다. 죽기로 각오하고 그날밤 싸움에 임했던 것이다. 결국 그 최후의 만찬은 현실이 되고야 말았지만…….

나는 YWCA 입구에서 감시를 했다. 전남매일신문 보급소에 근무한다는 어떤 남자와 고향이 광주라서 내려온 명지대학생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근무를 섰다. 그날밤 근무조는 5개조로 짰다. 두 시간씩 근무를 교대로 서기로 했다. 용준 형은 글씨를 잘 썼기 때문에 필경조에 있었다.

새벽에 땅을 울리는 탱크 소리에 잠을 깼다.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주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모여주십시오."

하고 처절하게 외치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또 다른 여자 목소리로,

"총을 버리고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준다."

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어떤 형이,

"비상!"

이라고 소리쳤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밖을 내다보니 엄청난 숫자의 계엄군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YWCA에는 총이 7자루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겁이 났지만 총을 쥐고 계엄군이 움직이는 쪽을 향해 2방을 쏘았다. 그러나 총알은 건물벽에 부딪혔고 우리가 있는 것을 알고 계엄군들이 총을 갈기면서 건물을 포위해 오기 시작했다. 우리 쪽에서도 응사했으나 카빈총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때 몹시 겁에 질려 떨었는데 손이 떨리는 것이 내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옆에 있던 어떤 형이,

"야, 넌 안 되겠다. 도망가!"

라고 말했다. 내가 기어서 복도로 나갔는데 복도에서 용준 형이 광주경찰서 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경찰서 앞에 군인들 서너 명이 지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용준 형, 조심해."

하고 내가 말했다. 용준형이 나를 돌아보자 나는 다시,

"용준 형, 총 쏘지 말고 도망가요."

라고 말했는데, 그때 용준 형이 유리창에 기대어 총을 겨눈 자세에서 나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자신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기어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는데, 바로 그때 용준형의 몸이 수그러지기 시작했다. 유리창가에 기대고 있던 용준 형은 서서히 쓰러져가더니 결국은 다리를 뻗고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용준혀엉-!"

하고 소리치면서 용준 형 옆으로 북북 기어가서 봤더니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눈을 뜬 채로 죽어 있었다. 순간 그렇게 친했고 좋아했던 형인데도 왈칵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뒷걸음질쳤다. 밑에서는 군인들이 총을 쏘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와 올라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섞여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나는 4층으로 올라갔다. 간호보조원양성소의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가 탁자 아래 숨어서 처음으로 하느님께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를 했다. 짧은 기도였지만 내겐 무척 긴 간구였다. 눈을 떠보니 교실 바닥에 그림 한 장이 떨어져 있어 보니, 성모 마리아가 꽃을 들고 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었다. 웬지 그 그림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는데 교실 벽면의 천정 아래에 선반이 있는 것이 보였다. 2미터 높이의 선반 위로 훌쩍 뛰어 기어올라가 납작하게 엎드렸는데 곧바로 군인들의 총구 2개가 교실로 들어왔다. 총구는 교실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나갔다.


하늘이 살려낸 목숨

아침 7시 30분경 군화발 소리는 여전히 들리고, 좁은 선반과 천정 사이에 오래도록 몸이 끼어 있자니 피가 안 통해 고통스러웠다. 나는 더 버틸 수가 없어서 맞아죽더라도 일단 나가고 보자고 생각하고 군인들을 불렀다. 손을 들고 나오라는 말에 두 손을 들고 밖으로 나가 3층에서 개머리판으로 게거품이 나도록 두들겨맞았다.

YWCA 1층에 꿇어앉혀져 있다가 8시 30분경에 도청 앞으로 끌려갔다. 탱크 2대, 군용 트럭 4대, 헬기 1대가 있었다. 도청 앞은 핏자국으로 어지럽혀져 있었고, 외신기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며칠 전에 나를 사진찍었던 일본 마이니찌신문 기자가 5명의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끌려가고 있는 내게로 오더니 웃으면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마치 희롱당하는 듯하여 치욕감과 분노가 치밀었다.

한 장교가 나를 보더니,

"이 자식 생긴 거 보니 여자애같이 총 한방도 못 쏘게 생겼구나. 야! 떨지 마, 살려줄게."

라고 말하며 다시 YWCA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반성문을 강요받았다. 내가 쓰지 않자 또 두들겨팼다. 황금동을 지나는데 술집 아가씨들이 끌려가는 나를 보고 발을 구르며

"또 학생 한 명 죽는다."

며 울어댔다. 난 아직도 나를 위해 울어주던 그 여자들을 잊지 못한다. 그 여자들이 밉게 생각되지 않고 내 여동생, 내 누나들 같았다. 그 사람들이 진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너덧 명의 군인들이 여자 한 명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것도 보았다.

서광주세무서(당시는 짓고 있었음) 정문 앞까지 끌려가 무릎을 꿇고앉아 있었는데, 죽은 용준 형 생각도 나고 두렵기도 해서 계속 울기만 했다. 중대장 한 명이 와서 내게,

"살려줄테니까, 데모꾼 대학생 세 명만 불어라."

고 했다. 나는, "전 학생이 아니고 YWCA에 있는 직원이라서 모릅니다."라고 했다. 그 군인은, "YWCA에 있는 놈들은 다 김대중 추종자고 빨갱이다."라면서 나를 때렸지만 난 끝내 모른다고 울며버텼다. 난 트레이닝을 입고 있었는데 생김새가 어리고 연약해 보여서인지 두 시간쯤 추궁하다가 그냥 두었다. 계엄군 장교 한 명이 나를 보내주겠다며 아버지에게 확인전화를 했다. 용케 어젯밤에 집에서 나왔다는 내 진술(거짓말이었지만)과 아버지의 대답이 맞아떨어져서 나는 통행증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하느님이 나를 살려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5·18 이후 새로 태어나다

나는 용준형의 죽음을 무등육아원과 신협에 알렸다. 신협 직원들이 상무관으로 찾아가 77번 용준형의 시체를 확인하고 6월 1일 망월동에 안장했다.

27일 새벽 전투에서 잡혀가신 영철형은 고문 끝에 정신이상이 되어버려 지금도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신다. 내가 1980년 8월 YWCA 신협을 그만두고 있을 때 교도소의 영철형에게서 형수님을 통해 편지가 왔는데 광천동 삼화신협에 가서 일을 도우라고 씌어져 있었다. 그 길로 삼화신협으로 가서 일을 했고 신협에 딸린 방, 옛날에 용준형이 사용했던 방에서 생활을 했다. 그 방엔 용준형이 보던 여러 가지 서적들이 꽂혀져 있었는데 밤마다 잠들 때면 용준형의 환상을 보곤 했다.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삼화신협에 오래 있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 후로도 몇군데의 신협을 전전하며 일을 했고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다.

5·18항쟁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나 억울하다. 그 항쟁은 순수한 것이었고 자신과 이웃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막다른 길에 처한 사람들이 떨쳐나선 싸움이었다. 나는 의식있는 사람들이 언행 일치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 1980년도에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은 대학생이나 교수나 인권단체의 이름을 내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 중 극히 일부를 빼고는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못 배운 사람들, 고아, 양아치 등 가진 것 없는 불쌍한 사람들은 몸으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나섰다. 나는 1980년 5·18을 겪은 후부터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시 보여졌다. 미국은 인권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국민에 한하는 것일 뿐 타국민에게는 잔인한 나라임을 새삼 통감했다. 미국은 선진국이 아니라 자기만을 돌보는 폐쇄적인 나라이다. 현정부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면 아직도 민주화는 첩첩 산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대학생들은 다수 대중의 호응을 받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고 5·18을 생각해서라도 군부독재에 기회를 주지 말고 잘 싸웠으면 좋겠다. (조사.정리 김혜형, 주경화) [5.18연구소]

[푸른별]

자료 감사합니다.
행복한시간 좋은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