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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암 문학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월암
가을에 관한 명화 명시
가을 / 강은교
기쁨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살짝 가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그루 서성서성
뒤에 있는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
산이 말했네.
어서 가보게, 그대의 집으로
가을 / 김광림
고쳐
바른
단청빛
하늘이다
경내는
쓰는 대로
보리수 잎사귀
한창이다
잎줄기에서
맺혀 나온
염주알
후두둑 떨어진다
벼랑 위에
나붓이 앉으신
참 당신
보인다
가을 / 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들녘이 모구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 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가을 / 김종길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가을 / 김현승(1913-1975) 광주.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김현승 시선집> 관동출판사. 1974년
가을 / 드라메어
장미 피었던 곳에 거친 바람 불고
향긋한 풀 무성했던 곳에 찬비 내리고
종달새 즐거이 지저귀던
회색빛 하늘 가파른 곳엔
구름만이 양떼되어 흐른다
너의 머리카락 있던 곳에서 황금빛 찾을 길 없고
너의 손길 있던 곳에선 따스함이 사라진지 오래구나
너의 얼굴을 바라보던 장미 덩굴 아래엔
서글픈 환상만이
너의 망령을 불러들일 뿐이다
너의 목소리 들리던 곳엔 차가운 바람만 스산하고
나의 마음 깃들었던 곳엔 방울방울 눈물이 고인다
또한 한때는 희망이 있던 내 가슴엔
이제는 항상 침묵이 있을 뿐이란다
나의 그리운 사랑아
가을 / 릴케(1875-1926)
나뭇잎이 떨어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듯
저기 아득한 곳에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대지다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가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다른 것들을 보라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이 떨어짐을 한없이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내는 어느 한 분이 있다.
리오 데 자이네루(1763-1960년까지 브라질의 수도)
가을 / 마종기
가벼워진다
바람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곳에
열매들이 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오, 이와도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인지 사라져간다
가을 / 문인수
여러 번 붉게 큰물 지고 나서
어느 날은 차디차게 발목에 감기는
가을
하늘에다가는 달게 감홍시 하나 남겨 놓듯이
누군가는 또 한나절 땅에다가는
그러나 그랬달 덧도 없이
어느 날은 넌지시 징검다리 놓이는
가을 / 박경리
방이 아무도 없는 사거리 같다
뭣이 어떻게 빠져 나간 걸까
솜털같이 노니는 문살의 햇빛
조약돌 타고 흐르는 물소리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러고 있다
세월 밖으로 내가 쫓겨난 걸까
창밖의 저만큼 보인다
칡넝쿨이 붕대같이 감아 올리자 나무 한 그루
같이 살자는 건지 숨통을 막자는 건지
사방에서 숭숭 바람이 스며든다
낙엽을 말아 올리는 스산한 거리
담뱃불 끄고 일어선 사내가 떠나간다
막바지의 몸부림인가
이별의 포한인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하는
원죄로 인한 결실이여
아아 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참혹한 계절이다 이별의 계절이다
가을 / 백남석 작사. 현제명 작곡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
남쪽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모아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노라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
밭에 익은 곡식들은 금빛이구나
추운 겨울 지낼 적에 우리 먹이려고
하나님이 내려주신 생명의 양식
가을 /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넌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긋이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부치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을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현대시> 2008년 4월호 발표
제8회 미당문학상 수상작
가을 / 양주동(1903-1977) 개성.
가 없는 빈들에 사람을 보내고
말없이 돌아서 한숨 지우는
젊으나 젊은 아낙네와 같이
가을은 애처러이 돌아옵니다
애타는 가슴을 풀 곳이 없어
옛뜰의 나무들 더위잡고서
차디찬 달 아래 목놓아 울 때에
나뭇잎은 누런 옷 입고 조상합니다
드높은 하늘에 구름은 개어
간 님의 해맑은 눈자위 같으나
수확이 끝난 거칠은 들에는
옛님의 자취 아득도 합니다
머나먼 생각에 꿈 못 이루는
밤은 깊어서 밤은 깊어서
창 밑에 귀뚜라미 섧이 웁니다
가을의 아낙네여, 외로운 이여
<조선의 맥박>. 문예 공론사. 1932년
가을 / 유안진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보다는 마른 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 감은 채 고즈너기 그려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 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 안에 얼굴 묻고 싶은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가을 / 윤희상
일하는 사무실의 창 밖으로
날마다 모과나무를 본다
날마다 보는 모과나무이지만
날마다 같은 모과나무가 아니다
모과 열매는 관리인이 따다가
주인집으로 가져가고
모과나무 밑으로 낙엽이 진다
나의 눈이
떨어지는 낙엽을 밟고
하늘로 올라간다.
낙엽이 계단이다.
가을
이안
병든 나뭇잎 먼저
더 많은 벌레를 먹인 나뭇잎 먼저
아픔이 먼저
아픔에게 문병 간다.
가을
정호승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가을
조병화
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곳에
어린 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 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 같은거
가을은 구름 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가을 / 조병화(1921-)경기도 안성
이제 일년내 맡고 계시던
그 눈을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당신 뜻대로 가을은 이루어져갑니다.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는 가을을
하나, 하나, 주워 모으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이제, 일년내 맡고 계시던
그 눈을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실로 많은 것들이 끝을 지어갑니다.
대지에선 동식물들이 그 번식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뜻대로 그 열매들이 남아갑니다.
하늘에선 태양과 구름이 그 가뭄과 홍수를 거둬 들였습니다.
그리고 당신 뜻대로 다시, 빈 천지가 마련되어 갑니다.
사람에선 사랑과 미움이 그 스스로의 맺음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뜻대로 고독한 혼자들이 남아갑니다.
그 열매들을 당신 뜻대로 주워 모르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맡으신 그 눈을 이제 돌려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 가득찬 빈 천지에 새 봄을 마련하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맡으신 그 눈을 이제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 고독한 혼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맡으신 그 눈을 이제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맑게 닦아내 주십시오.
흐린 점 하나 없이 맑게 닦아내 주십시오
당신의 입김으로
티 하나 없이 맑게 닦아 내 주십시오.
도시에선 되도록이면 담가로
돌아다니겠습니다.
전원에선 물가로 둑으로 산록으로
되도록이면 잡목림 잡초 속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
밤에는 별에서 쉬겠습니다.
되도록이면 새로운 별을 찾아
좀 떨어진 곳에서 쉬겠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돌아오겠습니다.
빈 손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든 거 다, 당신 뜻대로 살펴 제자리 가려두고
지닌 거 하나 없이 혼자서 돌아오겠습니다.
수고는
봄으로 해 주십시오.
눈을 다시 돌려 드릴 때
수고의 말씀
봄에 받겠습니다.
가을
최승자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가을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가을 헤세
덤불 속에는 너희 새들
너희의 노래 얼마나 퍼덕이는지
누렇게 물드는 숲을 따라 ㅡ
너희 새들아, 서둘러라!
곧 온다 부는 바람이
곧 온다 베는 죽음이
곧 온다 무서운 유령이 그리고 웃는다.
우리 가슴이 얼어붙도록
정원이 그 모든 호화로움을
또 삶이 그 모든 광채를 잃어버리도록
이파리 속의 새들아
작은 형제들아
우리는 노래하자 즐겁자꾸나
머니않아 우리 먼지이다.
첫댓글 가을 새벽
가을에 훔뻑 빠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들렸습니다.
여러 편의 가을 시
흠뻑 빠졌습니다.
고맙습니다.
가을 분위기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