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지붕 아래에서
하희경
“넌 말하는 게 책 읽는 것 같아”
판자촌에 봉사활동 나온 대학생이 한 말이다. 깜짝 놀랐다. 꼭꼭 숨겨온 속내를 어떻게 알았을까. 단번에 꿰뚫어 보는 그가 어려워 한동안 피해 다녔다. 그 말이 맞다. 내가 말하기를 배운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 나면서부터 익숙하게 들리는 말로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판자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이 이유 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그 말을 버리기로 했다. 아직은 천지분간도 못할 어린나이에 내가 속한 동네와 그 안에서 꼬무락거리는 말들을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관악구 신림동, 내가 자란 곳이다. 관악산을 기둥 삼아 철거민들이 모여 살았다. 그 동네는 한가운데 선을 그은 것처럼 두 가지 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쪽은 경사가 심한 비탈길에 회색 지붕이 내리닫이로 그려져 있고, 다른 한쪽은 빨간 기와지붕들이 양껏 햇살을 받아먹으며 뽐을 내고 서 있었다. 회색과 빨강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마을에서 내가 속한 곳은 회색 동네였다.
그 동네는 회색빛 물감으로 한 번 쓱 그으면 될 정도로 지붕과 지붕이 맞닿아 있었다. 애초에는 까만색이었겠지만 햇볕과 바람에 제 빛깔을 잃어버리고 회색빛이 되어버린 지붕들, 고개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낮은 문, 한낮에도 햇빛에 인색한 작은 창문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나달나달한 벽들이 있었다. 해질녘이면 배고파 우는 아이 울음소리, 술 취한 남편의 주정과 앙칼진 아내 목소리가 난분분한 동네였다.
건너편에 있는 경사가 완만한 동네는 빨간 기와지붕이 있는 주택 단지였다. 작지만 꽃나무가 있는 마당이 있고, 찰랑이는 햇살이 노닥거리는 유리 창문,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추는 레이스커튼, 수시로 목울대를 여는 피아노, 해 질 무렵 배불뚝이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향하던 젊은 엄마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어른들의 나직한 말소리가 있었다. 그곳은 내가 갈 수 없는 사막의 신기루였고 꿈의 궁전이었다. 숨이 턱 막히도록 경사진 길에서 가시 돋친 말들로 배를 채우면서 맞은편 동네를 훔쳐보곤 했다.
빨간 기와지붕들 중 하나에 같은 반 친구 은주가 살고 있었다. 나는 은주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부러웠다. 네 식구가 방 하나에 뒹구는 나와 달리, 이층집에 사는 은주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은주 엄마의 미소와 머리를 쓰다듬는 하얗고 긴 손가락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공주님 같은 은주를 닮고 싶었지만 내가 닿을 수 없는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시샘하면서 내 어린 시간은 옹이 지고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소공녀를 알게 되었다. 공주처럼 살던 세라가 뜻밖의 사고로 하녀가 된 뒤에도 품위를 지켜나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공주가 되기로 했다. 아니, 공주는 못되어도 최소한 판자촌의 막돼먹은 아이로 남지는 않겠다고 작정했다. 제일 먼저, 아침이면 ‘썩을 년’으로 시작해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욕지거리들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나면서부터 들어온 익숙한 말을 대체할 언어를 찾아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활자중독증은 내 삶에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책에서 본 글귀를 현실에 접목하면서, 나는 서서히 회색빛 사람들 사이에서 별종이 되어 갔다. 내게로 향하는 모든 말들에 알맞은 답을 내놓느라고 느리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린 시절에 만난 대학생처럼 누군가 나에게 ‘넌 말하는 게 책 읽는 것 같아’라고 말할까 봐, 두려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난 여전히 말하는 것에 자신이 없다. 그래도 회색 지대를 흔들던 거친 소나기 같은 말이 아니라, 빨간 기와지붕 아래 햇살처럼 반짝이던 말을 선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이지 싶다.
판자촌 그 거친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었다. 책을 통해 부드럽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솟구치는 화를 다스리는 법과 이기적인 사랑을 넘어 이타적인 사랑을 하는 행복도 알게 되었다. 때때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지쳤을 때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빨간 기와지붕이라고 무조건 반짝이는 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삶의 매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사람은 달라진다는 것을. 이제와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아이가 수없이 많은 길에서 책을 친구로 삼기로 한 것은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