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로 치부하기엔... (제2부 관중은 바보가 아니다) |
7월 23일 강진 스포츠센터에서는 PABA 페더급 잠정 타이틀매치가 벌어졌다. 최근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정재광은 3년 전 조용인(전 OPBF S밴텀급 챔피언)과 격돌한 바 있는 하이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초반부터 강렬한 펀치를 쏟아 부었다.
1R 다운과 함께 강한 자신감을 보이던 정재광은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도전자에게 끌려 다니는 매우 위태로운 경기를 펼쳐야 했다. 정재광은 경기 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도전자의 서밍(엄지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행위)이 고전의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밝혔지만 스피드가 뛰어나고 공수전환이 빠른 상대에게 고전하는 약점을 이번 경기에서도 드러내 그것이 곧 전부일 수는 없었다.
선제다운 이후 오히려 페이스가 급격하게 떨어진 정재광은 8R 도전자의 강력한 레프트훅을 보디에 맞고 주저앉았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가격에 의한 다운이었다. 그러나 주심은 스톱 사인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카운트를 세지 않았다. 이 상황은 보는 각도에 따라 로블로우를 외친 세컨의 콜에 현혹되었다는 오해마저 일으킬 정도로 석연치 않다. 게다가 주심은 다운까지 빼앗은 선수에게 감점까지 주어 무승부가 될 경기를 정재광의 승리로 만들어 놓았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재광은 10R로 접어들면서 페이스가 뚝 떨어지더니 이어진 11R에는 집중타를 맞고 쓰러져 극적인 역전 KO가 아닌 이상 타이틀 보존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두 차례 다운과 두 차례 그로기 아무리 홈 링이라 하더라도 승리를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부심들의 판정은 114-112, 113-112, 111-111로 정재광의 승리였다. 판정이 내려지자 10R 이후 오히려 도전자를 응원하던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을 만큼 이날의 판정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12R 경기에서 판정으로 경기가 종료되었을 때 승자의 점수가 114점 이하라면 얼마나 고전한 경기였는지 알 수 있다. 거기다 야유를 보내던 관중들이 하나 둘씩 경기장을 빠져나가 정재광은 타이틀을 방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축 늘어트려야 했다.
지난 5년 간 국내에서 개최된 경기의 대부분은 큰 무리 없이 치러졌다. 여기서 무리라는 뜻은 판정에 관한 것이다. 그만큼 심판들의 수준이 높아졌고, 공정한 판정을 내리자는 공통분모도 형성되어 겉으로 드러날 정도의 오심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경기는 그 동안 어렵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점은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
판정에 관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들려왔지만 이날처럼 30% 이상의 관중들이 한꺼번에 경기장을 빠져나간 예는 매우 드물었다. 물론 메인 경기가 끝난 상황임을 감안해야겠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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